마이크 비비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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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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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비비 Michael Bibb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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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78년 5월 13일 ([age(1978-05-13)]세) |
뉴저지주 체리 힐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출신학교 | 애리조나 대학교 |
신장 | 188cm (6' 2") |
체중 | 91kg (200 lbs) |
윙스팬 | 190cm (6' 3") |
포지션 | 포인트 가드 |
드래프트 |
1998 NBA 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 밴쿠버 그리즐리스 지명 |
소속 팀 |
밴쿠버 그리즐리스 (1998~2001) 새크라멘토 킹스 (2001~2008) 애틀랜타 호크스 (2008~2011) 워싱턴 위저즈 (2011) 마이애미 히트 (2011) 뉴욕 닉스 (2011~2012) |
지도자 |
섀도 마운틴 고교 코치 (2013~2014) 섀도 마운틴 고교 감독 (2014~2019) 힐크레스트 프렙 고교 감독 (2019~) |
등번호 |
10번 - 밴쿠버 / 새크라멘토 / 애틀랜타 00번 - 워싱턴 |
SNS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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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농구인이자 전 USC 농구부 감독 헨리 비비의 아들. 프린스턴 모션 오펜스로 2000년대 초반을 풍미한 밀레니엄 킹스의 일원이기도 하다.2. 일생
2.1. NBA 입성 이전
1978년에 전술한 헨리 비비의 아들로 태어나 섀도 마운틴 고등학교 입학 후 제리 코너 감독의 가르침을 받아 1996년 애리조나학생스포츠협회(AIA) 5A 클래스 농구 토너먼트 결승에서 코로나 델 솔 고교를 꺾고 우승하면서 USA 미스터 배스킷볼 및 맥도널드 올-아메리칸에 선정된 유망주였다. 애리조나 대학교로 진학 후 루트 올슨(1934~2020)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1학년 때 NCAA 전국대회 우승을 경험하며 Pac-10 올해의 신입생상을 받았고, 2학년 때 Pac-10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였다.2.2. NBA 입성 이후
2.2.1. 밴쿠버 그리즐리스 시절
1998년 NBA 드래프트에 지원한 비비는 1라운드 2순위라는 높은 순위로 밴쿠버 그리즐리스에 입단한다. 신인으로서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올 루키 퍼스트팀에 선정되었고 총 3년을 활약했으나, 팀의 성적은 막장이었고 흥행까지 실패한 그리즐리스는 테네시 주 멤피스로 연고이전을 하였다. 그 과정에서 비비는 제이슨 윌리엄스와 트레이드되어 새크라멘토 킹스로 이적한다.2.2.2. 새크라멘토 킹스 시절
킹스는 98-99시즌을 앞두고 크리스 웨버, 블라디 디박라는 막강한 4-5번을 영입한데 이어 (96 드래프트 당시 지명해둔) 페자 스토야코비치가 합류하여 미래의 영구결번 3인방을 한큐에 모으는 데 성공한 팀이었다. 다만 이들을 묶을 안정적인 포인트가드가 없다는 약점이 있었는데, 제이슨 윌리엄스의 경우 재능은 있었고 눈요기에 있어선 최고였지만 '안정적인' 가드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킹스는 나름 기대주였던 제이윌을 트레이드 에셋으로 삼아 패싱과 게임조립이 안정적이며 뛰어난 3점 슛에 공격력까지 갖춘 비비를 데려왔다. 이에 따라 킹스는 2000년대 초반 서부에서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샌안토니오 스퍼스 등과 리그의 분위기를 나눠가지는 3강 구도를 형성했고, 웨버-디박-페자-비비 4인방은 구단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인 '밀레니엄 킹스'를 이끄는 주축이 되었다.
비록 위 3인에 비하면 네임벨류가 딸리고 영구결번도 되지 못하였지만, 비비 개인으로서도 최전성기에 해당되는 구간이었으며 팀의 메인 핸들러 및 클러치 해결사의 역할을 소화하며 그 기량을 인정받았다.
2.2.3. 말년
킹스의 리빌딩 노선에 따라 애틀랜타 호크스로 트레이드 되었다. 호크스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으나, 전성기에서는 서서히 멀어지는 모습을 보였다.이후 10-11시즌 도중에 트레이드되어 워싱턴 위저즈를 거쳐 마이애미 히트로 가게 되었다. 당시 르브론 제임스- 드웨인 웨이드- 크리스 보시가 이끌던 히트에서 커리어 첫 파이널 무대를 밟았으나 디르크 노비츠키가 이끄는 댈러스 매버릭스에게 패하여 우승은 좌절된다.
2011-12 시즌에 뉴욕 닉스로 이적하여 한 시즌만에 농구화를 벗었다.
2.3. 은퇴 이후
2013년부터 모교인 섀도 마운틴 고교 농구부의 코치를 맡은 뒤 이듬해에 감독으로 승진했다가, 2019년에 2년 전 발생한 성추행 의혹에 연루되면서 해임됐다. 이후 힐크레스트 프렙 고교 감독으로 재직중이다.3. 플레이 스타일
안정감이 매우 뛰어난 포인트가드. 메인 핸들러로서 가져야 할 시야와 패스, 핸들링이 모두 뛰어나고 전술 이해도가 높았다. 리딩 능력에 비해 어시스트 수치 자체는 평이한 축에 들지만, 샷을 빠르게 처리하기 보단 볼회전을 중시하며 특정 선수의 볼 소유 독식을 선호하지 않던 프린스턴 모션 오펜스에는 무척이나 어울리던 선수. 직접적인 A 패스 보다는 볼이 잘 돌 수 있도록 돕는 유형이라는 점에선 천시 빌럽스와 게임조립의 성향이 비슷한 편이다.여기에 단순한 퓨어 포인트가드가 아닌 득점력까지 나름 출중했던 선수이며 시즌 평균 20득점을 넘긴 시즌도 있다. 2:2나 드라이브 인 등의 옵션도 갖추었지만 최대 장점은 슈팅으로, 2000년대 선수치고 3점 슛 시도가 많았으면서 통산 성공률은 3할 후반대를 기록할 정도로 뛰어난 슈터였다. 다만 슈팅 능력과 달리 자유투 성공률은 동급 가드들에 비해 다소 애매한 편.(커리어 통산 80.2%)
강심장이라 클러치 상황에서도 매우 위협적이었는데, 밀레니엄 킹스에서는 웨버-디박-페자라는 더 높은 네임밸류의 선수들을 제치고 클러치 담당을 맡아주곤 했다.
4. 여담
'올스타 경력이 없는 선수'들 중 가장 뛰어난 축에 드는 선수 중 하나로 심심찮게 언급된다. 따지고보면 준 올스타 정도의 기량이었고 최소한 한번은 뽑힐 만 하지 않았냐는 말이 많은 편.또한 밀레니엄 킹스 시대의 4인방 중 유일하게 영구결번이 못되었다는 점을 아쉬워 하는 팬들도 있다. 사실 킹스에서의 근속 기간과 공헌도로 따지자면 블라디 디박에게 그닥 꿇릴 것이 없었으나, 디박은 1회 뿐이지만 올스타 경력이 있고 국제무대에서의 위상으로 리그 내 실적 이상으로 위대한 선수였다는 점이 이러한 차이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