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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그리트 드 플란데런

<colbgcolor=#000034><colcolor=#ffffff> 플란데런 여백작
부르고뉴 공작부인
마르그리트 드 플란데런
Marguerite de Flandre
파일:Margaret_Countess of Flanders.jpg
이름 마르그리트 드 플란데런 (Marguerite de Flandre)
출생 1350년 4월 13일
플란데런 백국 말레 성
사망 1405년 3월 16일
프랑스 왕국 아르투아 아라스
배우자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 1세 (1355년 결혼/1361년 사망)
호담공 필리프 (1367년 결혼/1404년 사망)
자녀 용맹공 장, 마르그리트, 카트린, 본, 앙투안, 마리, 필리프
아버지 루이 2세 드 플란데런
어머니 브라반트의 마르그리트
직위 플란데런 여백작, 부르고뉴 공작부인

1. 개요2. 생애3.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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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플란데런 백국의 여백작이자 부르고뉴 공국 공작부인.

2. 생애

1350년 4월 13일 플란데런 백국 말레성에서 플란데런 백작 루이 2세 드 플란데런 브라반트 공작 장 3세의 딸인 마르그리트의 외동딸로 태어났다. 1357년 5월 14일, 7살 때 아라스에서 당시 11세였던 부르고뉴 공작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 1세와 결혼했다. 그러나 1361년 11월 21일 필리프 1세가 사망하면서 미망인이 되었다. 필리프의 상속 재산 중 부르고뉴 공국은 프랑스 국왕 장 2세에게, 부르고뉴 백국과 아르투아는 필리프 1세의 고모이자 마르그리트의 할머니인 프랑스의 마르그리트에게 넘어갔다.

그녀는 아버지 쪽으로 플란데런, 레텔 및 느베르 절반 일대를, 친할머니 쪽으로는 느베르의 나머지 절반, 부르고뉴 백국, 그리고 아르투아 일대를 상속받는 유일한 인물이었기에, 인기 있는 결혼 후보자였다.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는 플란데런 백국을 자국의 확실한 동맹으로 삼기 위해 넷째 아들인 랭글리의 에드먼드를 마르그리트와 결혼시키려 했다. 플란데런은 잉글랜드와 긴밀한 경제적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루이 2세는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했고, 1364년 10월 10일 마르그리트와 에드먼드의 약혼 계약이 체결되었다. 하지만 에드먼드와 마르그리트는 친족 관계였기에, 그 결혼이 성사되려면 교황청의 특별 허가를 받아야 했다.

프랑스 국왕 샤를 5세는 플란데런 백국이 잉글랜드와 이대로 결혼 동맹을 맺게 하면, 잉글랜드군이 저지대 국가를 확고히 장악해 프랑스에 두고두고 큰 우환이 되리라 여기고 교황 우르바노 5세를 압박한 끝에 마르그리트와 에드먼드의 결혼을 불허하게 했다. 이후 마르그리트의 할머니인 프랑스의 마르그리트가 아들 루이 2세를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샤를 5세가 릴, 두에, 오르키에 시를 플란데런 백국에 양도하겠다고 약속하자, 루이 2세는 마음을 돌려 프랑스와 손잡기로 했다. 1367년 4월 17일, 샤를 5세의 형제이자 새 부르고뉴 공작 호담공 필리프와 마르그리트의 결혼 계약이 성립되었고, 1369년 6월 19일 겐트의 생바본 성당에서 결혼식이 거행되었다.

1371년 첫 아들 용맹공 장을 낳은 이래, 그녀는 1389년까지 8명을 낳았다. 할머니인 프랑스의 마르그리트는 1382년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 루이 2세는 1384년에 세상을 떠나면서, 그녀는 두 사람의 영지와 재산을 그대로 상속받았다. 1385년, 마르그리트는 프랑스와 겐트 반란군 사이의 평화 협정 체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392년 이래 프랑스 국왕 샤를 6세의 정신 질환이 심해지자, 그녀는 프랑스 정부를 최대한 장악하려는 남편의 야심찬 계획을 지지했다. 일부 연대기에 따르면, 그녀는 오를레앙 공작부인인 발렌티나 비스콘티에게 강한 라이벌 의식을 느꼈으며, 프랑스 무관장 올리비에 5세 드 클리송 암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뒤 도주하던 피에르 드 크라옹을 기꺼이 자신의 집에 맞이했다고 한다.

1404년 4월 27일 호담공 필리프가 62세의 나이로 전염성 독감에 걸려 사망했을 때, 마르그리트는 남편이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걸 확인하고 빚을 갚지 않기 위해 공동 재산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녀는 이에 대한 공식적인 표시로 고인의 관에 벨트, 지갑, 열쇠고리를 올려놓았으며, 필리프의 빚을 갚기 위해 팔린 가구의 소유권을 포기했다. 이후 마르그리트는 아라스에서 플란데런, 아르투아, 부르고뉴 백국을 통치했고, 장남 용맹공 장은 부르고뉴 공국과 느베르 백국을 통치했다. 1404년, 마르그리트는 아들 앙투안과 함께 숙모인 브라반트와 림부르크의 여공작 잔 드 브라반트에 의해 브라반트와 림부르크의 상속자로 선택되었다. 1405년 3월 16일, 아라스에서 사망했고, 생 피에르 드 릴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3. 가족

  • 필리프 1세(1346 ~ 1361): 부르고뉴 공작.
  • 호담공 필리프(1342 ~ 1404): 부르고뉴 공작.
    • 용맹공 장(1371 ~ 1419): 부르고뉴 공작.
    • 샤를(1372 ~ 1373): 요절.
    • 마르그리트(1374 ~ 1441): 하바이에른 공작, 에노, 홀란트, 제일란트 백작 빌헬름 4세의 부인.
    • 카트린(1378 ~ 1425): 오스트리아 공작 레오폴트 4세의 부인.
    • 본(1379 ~ 1399): 미혼인 채 사망.
    • 앙투안(1384 ~ 1415): 브라반트 공작. 아쟁쿠르 전투에서 전사.
    • 마리(1380 ~ 1428): 사보이아 공작 아메데오 8세의 부인.
    • 필리프(1389 ~ 1415): 느베르, 레텔 백작. 아쟁쿠르 전투에서 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