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B0D49E><colcolor=#000000> 마그다 루페스쿠 Magda Lupesc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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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엘레나 루페스쿠 (Elena Lupescu) |
출생 | 1899년 9월 15일 |
루마니아 왕국 이아시 | |
사망 | 1977년 6월 29일 (향년 77세) |
포르투갈 이스토릴 | |
배우자 | 이온 탐페누 (1919년 결혼 / 1923년 이혼) |
카롤 2세 (1947년 결혼 / 1953년 사망) | |
아버지 | 니콜라에 루페스쿠 |
어머니 | 엘리제 팔크 |
형제 | 콘스탄틴 |
종교 | 가톨릭 (세례명:헬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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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루마니아 왕국의 국왕 카롤 2세의 정부이자 후처. 카롤 2세가 폐위된 뒤에 결혼했기 때문에 루마니아의 왕비가 되지 못했다.본명은 엘레나 루페스쿠지만 마그다 루페스쿠로 알려지게 되었다. 마그다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기자의 실수라는 설과 매춘부를 뜻하는 속어라는 설이 있다.
2. 생애
개종한 유대계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나 가톨릭 교도로 자랐다. 1919년에 왕립 육군 장교인 이온 탐페누와 결혼했다. 루페스쿠는 몇 차례 바람을 피웠으며, 결혼 생활은 오래 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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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다 루페스쿠와 카롤 2세 |
루페스쿠 본인의 일기에 의하면 루페스쿠는 1923년 3월에 한 자동차 경주 대회에서 유부남인 카롤 2세와 처음 만났다. 루페스쿠는 초록색 눈동자와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요염한 여성이었다. 두 사람은 만난지 2년도 안 되어 진지한 사이가 되었다. 루페스쿠는 물론이고 당시 왕태자였던 카롤 2세는 자신들의 불륜을 숨기지 않고 대놓고 동거를 했다. 루마니아의 언론 검열로 인해 두 사람의 불륜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1925년에 이탈리아의 신문사가 밀라노에서 함께 있는 두 사람의 사진을 찍어서 대서특필하면서 모두 왕태자의 불륜을 알게 되었다. 국민들의 신뢰를 상실한 카롤 2세는 정신을 못 차리고 루페스쿠와 결혼하고자 1928년에 아내 그리스와 덴마크의 엘레니와 이혼했다. 하지만 루마니아의 헌법상 카롤 2세는 루마니아의 평민과 결혼할 수 없었다. 카롤 2세는 왕위 계승권을 포기하고 루페스쿠와 함께 파리로 떠났다.
1927년에 카롤 2세의 아들 미하이 1세가 즉위했다.1930년, 카롤 2세가 돌아와 루페스쿠와 헤어지고 왕비와의 사이를 개선하겠다는 조건으로 의회를 설득해 아들을 밀어내고 자신이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이 모든 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카롤 2세는 루페스쿠와 헤어지지 않았고, 루페스쿠는 루마니아의 왕비처럼 행세했다. 이후 카롤 2세는 의회를 박살내고 독재자로 군림했다. 루페스쿠는 공식적으로는 카롤 2세와 함께 할 수는 없었지만 왕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카롤 2세는 국가 예산을 끌어다가 루페스쿠가 별장을 살 돈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이러한 막장 행보에 루미니아 농민당의 당수는 루마니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악은 루페스쿠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말했다. 당시 목숨의 위협을 받은 루페스쿠가 자신과 체형이 비슷한 여성들을 성형시켜 대역으로 썼다는 말이 있는데, 신빙성이 떨어지는 이야기이다. 다만 그만큼 루페스쿠가 사람들의 미움을 받았다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의붓아들인 미하이 1세는 당연히 마그다를 없는 사람 취급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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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의 결혼식, 1947년 |
1940년 9월, 계속되는 실책으로 카롤 2세는 폐위되었다. 카롤 2세와 루페스쿠는 도망치듯 루마니아를 떠나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전전하다가 멕시코에 자리를 잡았다. 멕시코에서 루페스쿠는 급격하게 건강이 나빠졌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로 이동한 두 사람은 1947년에 한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은 포르투갈로 이주해 6년을 부부로 살았다. 1953년에 카롤 2세가 사망하고 혼자가 된 루페스쿠는 계속 포르투갈에서 살다가 1977년에 숨을 거두었다. 이후 루페스쿠의 유해는 남편 옆에 매장되었다. 2003년에 루마니아 정부의 요구로 두 사람의 시신은 루마니아로 옮겨졌다. 카롤 2세의 시신은 왕실 예배당에 안장되었지만 왕족으로 인정받지 못한 루페스쿠는 그 근처에 있는 묘지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