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2 08:10:00

리디아 리트뱌크

<colbgcolor=#cd0000><colcolor=#ffe400,#ffe300> 리디야 블라디미로브나 리트뱌크
Лидия Владимировна Литвяк
Lydia Vladimirovna Litvyak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60px-Lydia_Litvyak.jpg
출생 1921년 8월 18일
러시아 SFSR 모스크바
사망 1943년 8월 1일 (향년 21세)
소련 우크라이나 SSR 스탈리노주 코제브냐
(現 러시아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샤흐툐르스크군 코제브냐)
묘소 러시아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샤흐툐르스크군 드미트롭카
배우자 알렉세이 솔로마틴
복무 노농적군 공군
1941년 ~ 1943년
최종 계급 중위 (노농적군 공군)
주요 참전 독소전쟁
주요 서훈 소비에트 연방 영웅 (사후 추서)

1. 개요2. 생애3. 매체에서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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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소전쟁 전장에서 활약했던 붉은 군대 여성 전투기 조종사.

66번 전투 임무를 수행하여 총 12기 격추[1]를 달성한 에이스다.

같은 소련군 여성 조종사인 예카테리나 "카탸" 부다노바(Екатерина Васильевна Буданова.Yekaterina Budanova 1916.12.6~1943.7.19)와 함께 세계 단 2명의 여성 에이스다.

2. 생애

모스크바 출신의 비행사로, 15살에 이미 홀로 비행을 한 경력이 있으며 칼리닌 비행클럽(Kalinin Airclub)에서 이미 비행 수업을 하는 조교였다고 한다. 그렇다고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고 독소전쟁이 벌어졌을 때 20살이었다. 그러나 1941년 당시 이미 제자가 15명이 넘었다.

어쨌든 이런 경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소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군에 지원했어도 경력 부족으로 탈락당했다고 한다.

결국 입대하기 위해 비행 시간을 100시간으로 과장해서 여성 조종사로 이루어진 부대인 제586 전투비행대에 입대했다.

이 때 비행대장은 유명한 여성 조종사인 마리나 라스코바였으며 비행단에서 복무할 때 Yak-1기의 조종법을 배웠고 이후 열혈 추종자가 되었다.

이렇게 소련 공군에서 복무를 시작했는데 1942년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에는 제 437 전투비행대로 배치되었다. 여기는 일반적인 부대[2]였는데 혼자 배속된 건 아니고 카티야 부다노바 등 전에 같이 복무했던 여성 조종사, 지상 요원들과 함께 배치되었다고 한다.

남정네들만 잔뜩 있던 부대에서도 특유의 여장부 기질이 죽은 건 아니라서 도리어 저돌적이고 타고난 전투기 조종사라는 평을 받았다고 한다.

여튼 이 부대에 복무하면서 최초로 격추를 기록[3]했는데 일설에 따르면 이게 여성 전투기 조종사가 이룩한 최초의 격추라고 한다.

최초로 그녀가 격추한 적 항공기는 무려 Ju 88 중형 폭격기였고 두 번째는 Bf109 G-2 전투기였다.

이 때 격추당한 Bf109 파일럿은 포로로 잡혀서 그녀와 대면하게 되었는데 여자한테 격추당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한다.[4] 참고로 그녀가 처음으로 격추한 Bf109의 파일럿도 11기를 격추시킨 에이스였다.

이후 제9전투비행대로 비행대를 옮겼는데 사실은 제437 전투비행대가 LaGG-3를 장비했지만 그녀와 다른 여성 조종사, 승무원들은 Yak-1에 특화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재훈련 및 기종 전환 훈련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특이한 상황(여성 조종사)인 데다 LaGG-3 항목에 서술되었듯 설계와 제작에 관여한 주임 설계사가 굴라그에 끌려갈 뻔할 정도로 얼척이 없는 기체라 그랬던 것도 있을 것이다.

제9전투비행대가 P-39 에어라코브라로 기종을 전환하자 Yak를 몰기 위해 부대를 또 옮겼다.

어쨌든 이렇게 왔다갔다 하는 와중에도 훈장을 받고 자유 사냥(Free Hunter) 작전[5]에도 자원하여 참가하였다.

이후에 작전 도중 피해를 입고 불시착한 것도 두 번이나 되는데 부상당한 채 겨우 착륙하기도 하였다.

제73 근위비행대(Gv.I.A.P.)로 부대를 옮긴 후 에이스 파일럿 '알렉세이 프롤로비치 솔로마틴'(Alexei Frolovich Solomatin) 대위와 만나 서로 마음이 잘 맞았는지 연인 관계로 발전하였다.

솔로마틴 대위도 39킬의 에이스로 상당한 실력의 소유자이며 그녀도 종종 연인인 솔로마틴의 윙맨으로서 탑승하여 동승 비행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작전 중 비행 사고로 솔로마틴 대위가 사망하자 그녀는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 일화는 그녀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녀가 당시에 누구 하나 못 믿을 전쟁터에서 완전히 믿고 신뢰할 만한 연인을 잃은 상황의 안 좋은 감정이 잘 드러난다고 전해진다.

그녀의 전투기를 정비하며 그녀를 지켜보던 항공정비사의 증언에 따르면 이 일이 있고 나서 더더욱 전투 임무에 열중하게 되었다고 한다.

달리 말하면 잃을 것이 더 이상 없어져서 전투에 미쳐 버린 사람 같아졌다고 증언했다.

1943년에 제73 근위비행대(73 Gv.I.A.P)의 지휘관이 되었으며 1943년 6월 16일, 폭격기를 격추시켰으나 Bf109에게 피탄당해 활주로에 불시착해야 했으나 의무대로 빠져서 부상 회복을 위해 휴식할 것을 거부하였고 이륙 명령이 하달될 때마다 기회가 되면 그대로 계속 날아올랐다.

며칠 후에는 또 다른 몇 기의 Bf109들을 더 격추하였다.

1943년 8월 1일에 Il-2 폭격 편대를 엄호하는 임무를 받아 그녀는 생애의 마지막 비행을 시작했다.

그녀의 호위 편대와 슈투르모빅 폭격 편대를 포착한 독일 공군은 Bf109 제공 편대를 보내 이들을 저지시키려고 했고 이를 위해 붐앤줌 전술로 공격을 시작하자 호위를 위해 저공에 머물렀던 그녀는 꼬리를 잡힐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은 아니었고 그녀도 실전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고고도에서 강하하여 가까이 접근해 공격해 들어오는 2대의 Bf109를 발견하여 회피 기동을 했으나 필사적인 저지를 위해 그녀의 기체에 조준하여 기총을 소사해 명중타를 내었다.

결국, 독일군 제공 편대에 의해 기체가 파손되어 구름 속으로 사라져 버릴 줄 알았으나 그녀의 편대 시야에 다시 나타난 것은 무려 8대의 Bf109에게 추격당하면서 시커면 연기를 내뿜으며 도주하는 그녀의 Yak-1이었다.

그러나 이내 다시 구름 속으로 사라져 버렸고 동료 조종사들은 그녀의 행방을 다시는 찾을 수 없었다.

이후에 동료들이 그녀를 찾으려 나왔으나 추락하거나 탈출한 흔적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전쟁 포로로 잡혔을 거라는 등의 설이 돌아 전공을 인정받을 수 없게 되어 그녀가 조국을 위해 싸우려고 했던 노력과 공훈은 잊혀질 뻔하였다.

그리하여 전쟁이 끝난 후에 그녀가 포로로 잡히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리트뱌크의 담당 정비병이었던 파스포르트니코바(Pasportnikova)가 추락한 리트뱌크의 Yak-1의 행방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 1979년에 그녀의 것으로 추정되는 야크기를 발견하였고 근처 마을에서 당시 독일군 내지 소련군에게 매장된 유해를 발굴하여 그녀의 사망을 소련 정부에 재입증하였으며 그녀의 죽음으로부터 67년 후에 이러한 재입증 과정을 통해 1990년에 전연방공산당과 서기장 고르바초프에 의해 소비에트 연방 영웅 칭호와 금성메달을 추서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2004년에 출판된 책에 의하면 불시착 후 포로로 잡혔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고 밤의 마녀들 중 하나였던 라스포포바(Raspopova)에 의하면 그녀를 전후 목격했다는 등의 증언을 함에 따라 다큐멘터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소련을 탈출하여 결혼하고 잘 먹고 잘 살았다고'하더라 같은 그녀의 최후를 두고 내놓은 제작진측의 추측성의 비공식 행보를 담았다.

어쨌든 성격이 당시 소련에서도 낭만적이면서도 반항적이었던지라 그녀의 사후에 역사적 재발굴 측면에서 이런 의심을 받았던 것도 있다.

평소에 그녀는 임무가 성공한 뒤 기지에 돌아와서 공중 곡예 비행을 벌이기도 했고 낙하산을 꽃무늬가 되도록 알록달록 염색하기도 했으며 금발 매니아라 정비병에게 부탁해 표백제로 쓸 과산화 수소 용액을 가져와 달라고 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격추가 대다수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스탈린그라드의 하얀 백합'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참고로 이 백합은 러시아어로 'Лилия белоснежная', 영어로는 'Madonna Lily'로 통하는지라 북미, 서유럽에서는 '스탈린그라드의 하얀 장미'로 오역되기도 하였다.

3. 매체에서 등장

  • 프랑스-벨기에 만화 수리부엉이의 주인공 릴리야 리트바스키의 모델이 되었다.


[1] 다만 소스에 따라 11기라는 언급도 있고 13기라는 언급도 존재하는 만큼 총합 10기 이상을 격추시킨 상당한 실력자임에는 틀림없다. [2] 남성들만 잔뜩 모인 우리가 아는 평범한 편제 상 부대 [3] 이 출격에서 첫 실전치고는 2기를 격추시켰다고 한다. [4] 여성 인권이 비약적으로 신장되고 보편화된 현재와 달리 당시는 여성의 활동이 대부분 제약된 시대였고 그런 시대에 '선진적'인 양성평등을 건국 목표 중 하나로 내걸던 소련 정부의 사회 정책이 없었더라면 리트뱌크가 에이스 항공기 파일럿이 될 수 없었거나 다시는 볼 수 없을 이 '일반적'인 독일군 에이스와의 대면을 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5] 이 작전은 서부 유럽 전선 말기에 제임스 둘리틀 준장이 입안한 그것과 비슷한 것이며 전투기 조종사들은 임무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적을 찾아서 전투를 벌이는 것을 허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