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Rüsselsheim Massacre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4년 8월 26일, 나치 독일의 도시 뤼셀스하임암마인(Rüsselsheim am Main)에서 벌어진 포로 학살 사건. 성난 군중이 추락한 폭격기 승무원 8명을 린치해 그 중 6명을 숨지게 한 사건이다.
2. B-24 격추
슝! 쾅! 고맙습니다 부인!과 그 승무원들 |
1944년 8월 24일, 미 육군 항공대 제854폭격대대 소속 B-24 폭격기 "슝! 쾅! 고맙습니다 부인!(Wham! Bam! Thank you, Ma'm!)"(.....)이 하노버 인근 비행장을 폭격하던 중 대공포에 격추되었다. 슝! 쾅! 고맙습니다 부인!에 타고 있던 승무원 9명[1] 모두 탈출해 독일 영토에 착지했다. 이들은 전부 독일군에게 생포되었는데 파편으로 인해 부상을 입은 항공 기관사 포레스트 W. 브린스툴 하사(S/Sgt. Forrest W. Brininstool)를 제외한 8명은 오버우어젤(Oberursel)의 Dulag Luft에서 심문을 받기 위해 기차로 이송된다.
하지만 8월 26일 뤼셀스하임암마인에 도착한 승무원들은 기차에서 내려 도보로 이동하게 된다. 전날 밤 영국 공군이 도시의 오펠 공장을 노리고 대규모 폭격을 벌였기 때문이었다. 이 폭격이 열차 선로도 파괴했기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3. 학살
전날밤 폭격에 단단히 꼭지가 돌아있던 뤼셀스하임 주민들은 눈이 뒤집힌 채 몰려들었다. 주민들은 승무원들을 에워싼 채 욕설과 저주를 퍼부으며 돌을 던졌다."산산이 박살 내. 패죽여버려. 바로 저 놈들이야! 저 놈들이 어젯밤의 그 놈들이라고! 저 개 놈들 죽여버려. 동정해서는 안돼."
이 언어적 폭력은 빠르게 본격적인 폭력으로 변했다. 무방비 상태의 승무원들에게 달려든 주민들은 벽돌, 막대기, 삽, 빗자루, 그 외 여러가지 것들을 휘둘렀다. 승무원들은 피를 흘리며 벗어나려 했지만 폭행은 계속되었다. 결국 이들은 군중들에게서 도망치지 못하고 길바닥에 쓰러진다. 뤼셀스하임 시민들은 쓰러진 승무원들을 계속 구타했다. 당 임원이자 뤼셀스하임 선전부장인 요제프 하르트겐은 승무원 네 명의 머리를 권총으로 쏴 확인사살을 하기도 했다.
약 두 시간의 린치가 끝난 후 사람들은 승무원들을 손수레에 실어 공동묘지로 운반했다. 린치에서 생존한 윌리엄 M. 애덤스 병장(Sgt. William M. Adams)과 시드니 E. 브라운 병장(Sgt. Sidney E. Brown)은 주민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탈출, 4일 동안 도망쳐다니다 독일군에게 붙잡혀 전쟁이 끝날 때까지 폴란드의 포로 수용소에 수감된다.
나머지 여섯 승무원의 시신은 다음날 공동묘지에 매장되었다.
4. 이후 처리
전후 미군은 뤼셀스하임에서 벌어진 학살을 조사하고 린치에 참가한 것으로 여겨진 11명[2]을 기소한다. 그리고 그 중에서 요제프 하르트겐을 포함한 5명[3]이 교수형에 처해진다.뤼셀스하임에서 포로들을 호송한 두 군인 중 한 명인 오토 헤르만 슈톨츠 역시 이 행위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기소되었다. 슈톨츠에게도 교수형이 선고되었다.[4]
현재 뤼셀스하임암마인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5. 참고 자료
[1]
조종사 노먼 J. 로저스 주니어 소위, 부조종사 존 N. 세쿨 소위, 항법사 및 폭격수 하이구스 투펜카지아 원사, 무전수 토머스 D. 윌리엄스 하사, 항공 기관사 포레스트 W. 브린스툴 하사, 기총 사수 4명: 윌리엄 A. 듀몬트 병장, 엘모어 L. 오스틴 병장, 윌리엄 M. 애덤스 병장, 시드니 E. 브라운 병장.
[2]
요제프 하르트겐, 프리드리히 부스트, 마르가레테 비츨러, 캐테 라인하르트, 아우구스트 볼프, 요한네스 자이펠, 하인리히 바르텔, 게오르크 다움, 요한 오퍼, 칼 푸크만, 필리프 구틀리히.
[3]
하르트겐, 부스트, 자이펠, 오퍼, 구틀리히.
[4]
Case No. 12-3245 (UNITED STATES v. Otto Hermann STOLZ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