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5-25 21:53:14

론 제러미

1. 소개2. 생애
2.1. 성범죄 혐의
3. 특징

1. 소개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60ea5e848ed0e628307874fb64c65a55.jpg

젊은 시절.

파일:external/2.bp.blogspot.com/Ron+Jeremy+as+Super+Mario.jpg

슈퍼마리오 코스프레(...)

1953년 3월 12일 생. [age(1953-03-12)]세.
Ronald Jeremy Hyatt

미국의 포르노 배우. 업계 정보지 어덜트 비디오 뉴스’(AVN)가 선정한 ‘포르노 사상 가장 위대한 배우 50인’ 중 당당히 1위를 차지했고, 지금까지 찍은 포르노물만 2,098편이나 된다. (...) 서양 포르노물이나 야한 뮤직비디오 영화 등에 간간히 얼굴을 비추시는 콧수염 난 털복숭이 땅달보 아저씨가 보인다면 십중팔구 이 분이다(...).

2. 생애

1953년 뉴욕 롱아일랜드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로널드 제레미 하이엇. 아버지는 물리학자였고 전직 정보요원이었던 어머니는 출판사 에디터였다.

퀸스 칼리지에서 특수교육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고등학교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밤에는 오프-브로드웨이에서 배우 일로 부업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연기력은 시망(...)

1970년대 당시에 <플레이걸>이라는 잡지엔 ‘Boy Next Door’ 라는 일상 속의 훈남을 발굴하는 코너가 있었다. 론의 여자친구는 심심풀이로 그의 사진을 보냈고 잡지에 사진이 실리자 여기저기서 팬레터가 날아왔다고 한다. 지금의 뚱땡이 아재 이미지와 달리 젊을 적엔 미남이었다.그런데 역변이 너무 빨리 찾아와서 문제그런데 뜬금없게도 포르노 업계 관계자들이 론을 눈여겨보았고(...) 론은 제안을 받아들여 1978년에 첫 포르노를 찍는다. 당연히 아버지는 "벌거벗고 뒹구는 그 미친 짓을 하고 싶으면 맘대로 해라. 하지만 ‘하이엇’이라는 성을 사용한다면 널 죽여 버리겠다"라고 선언했고, 아버지의 이런 불호령 때문에 그는 ‘론 제레미' 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1980년부터 직접 포르노를 연출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포르노 영화를 300편 가까이 감독했다. 1980년대엔 퍼블릭 엑세스[1]를 통해 심야 누드 토크쇼를 진행하기도 했다. 포르노가 아닌 일반 주류영화에도 60편 가까이 출연했고, < 제리 스프링거쇼>를 비롯해 수많은 TV 쇼에 게스트로 등장했다. 심지어 뮤직비디오 광고계에도 손을 뻗쳤다.

브렛 파이퍼 감독의 호러 코미디 영화 바이트(They Bite,1996. 한국 비디오 제목)에서 전설적인 포르노 배우라고 카메오로 나오기도 했다. 극중 포르노 영화 찍으러 왔다가 괴이한 바다괴물이랑 얽히던 줄거리인데 여기서 내가 왕년에 많이 나왔다고 배우개그를 하기도 했다.

2.1. 성범죄 혐의

2020년 6월 여성 4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되었고, 660만 달러(약 78억 원)의 보석금이 책정됐지만 이를 내지 못해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 이 당시 그의 변호사 스튜어트 골드퍼브는 "제러미는 4,000명이 넘는 여성들의 연인이다. 여성들이 그를 향해 몸을 던진다"면서 성폭행 혐의를 부인하여 파문을 일으켰다.

2004년부터 2020년 1월까지 미성년자가 포함된 12명의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추가 기소됐다. 모두 유죄로 인정되면 최대 250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1996년부터 2000년까지 15~51세 여성 21명에게 34건의 성폭력을 저지른 혐의로 추가 기소되었고, LA 대배심은 모든 혐의에 대해 기소 결정을 내렸다.

3. 특징

그의 가장 큰 특징은 평범한 외모. 168cm의 키에 80kg의 땅딸막한 체구였고, 등과 가슴에 털이 많아 별명이 ‘ 고슴도치’ 였다. 큰 키에 멋진 얼굴에 식스팩을 장착한 ‘몸짱’이 아닌, 평범 이하 외모의 론 제레미가 늘씬한 미녀들과 격한 섹스를 나누는 장면에 일반적인 남성 관객들은 강한 동질감을 느꼈고, 그것은 격한 판타지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여기에 절륜한 정력(...)은 화룡점정이었다. 발기시 25cm에 달하는 그의 음경은, 카메라 앞에서 거의 지루 증세에 가까운 놀라운 지속력을 보여주었다. 1981년 <인사이드 세카 Inside Seka>에서 최초로 오토 펠라치오[2]를 선보인 그는 코미디와 포르노의 결합에 능수능란했고, 섹스 연기만큼이나 하드코어한 입담이 일품이다.

[1] 시청자가 시간대를 맡는 TV 프로그램 [2]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물건을 펠라치오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