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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에머슨 (Roy Stanley Emers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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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1936년 11월 3일 ([age(1936-11-03)]세) |
퀸즐랜드 주 블랙벗 | |
국적 |
[[호주| ]][[틀:국기| ]][[틀:국기| ]] |
프로데뷔 | 1968년[1] |
신장 | 183cm (6 ft 0 in) |
사용 손 | 오른손 (언노운 백핸드) |
ATP 싱글 랭킹 | 최고 12위[2] |
ATP 더블 랭킹 | 최고 66위 |
단식 통산 성적 | 273승 164패(62.5%)[3] |
복식 통산 성적 | 204승 64패(76.1%)[4] |
단식 타이틀 획득 | 6회[5] |
복식 타이틀 획득 | 20회[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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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호주 국적의 前 테니스 선수. 1960년대 켄 로즈웰, 로드 레이버와 함께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며 호주 테니스의 최전성기를 이끈 선수이다. 2019년 노박 조코비치가 7번째 호주 오픈 우승을 차지하기 전까지 호주 오픈 남자 단식 최다 우승기록(6회)를 보유했던 선수이며 아직까지도 유일한 7년 연속 호주 오픈 결승전 진출자이다.단식과 복식 모두에서 커리어 그랜드 슬램[7]을 이뤄낸 유일한 인물이며, 남자 단식 더블 커리어 그랜드 슬램[8]을 이뤄낸 최초의 선수이다.[9][10]
2. 선수 경력
에머슨은 퀸즐랜드주 블랙벗에서 태어난 후 브리즈번에서 성장한다. 1951년 사우스웨스트 퀸즐랜드 챔피언십에서 15살의 나이로 데뷔하였으며, 1953년 17살의 나이로 퀸즐랜드 챔피언십에서 첫 단식 타이틀을 획득한다.
1959년 윔블던에서 닐 프레이저[11]와 팀을 맺어 첫 그랜드 슬램 토너먼트 복식 타이틀을 획득하였다. 이어 1961년 호주 선수권 대회에서 당시 최전성기를 달리고 있던 로드 레이버를 꺾고 첫 그랜드 슬램 토너먼트 단식 타이틀을 획득하였다. 또한 US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다시 한 번 레이버를 제압하여 커리어 두 번째 단식 타이틀을 추가하였다.[12]
1963년 피에르 다르몽을 꺾고 커리어 첫 프랑스 오픈 단식 우승을 기록하며 커리어 그랜드 슬램에 있어 윔블던 우승만을 남겨두게 된다.
켄 로즈웰은 진작에 프로 무대로 진출하였고, 자신의 거의 유일한 적수였던 레이버 또한 1963년 프로 무대에 진출함에 따라 적수가 없게된 에머슨은 1964년 최고의 모습을 보였다. 1964년 무려 55연승을 기록하였고 프랑스 오픈을 제외한 3개의 메이저 대회를 석권하며 그랜드 슬램 결승 5연승을 이어나감과 동시에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다. 1964년 최종적으로 115경기 109승, 승률 94.8% 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기록하며 최강자의 면모를 보인다.
그랜드 슬램에서의 지배력이 레이버나 로즈월 수준으로 오르자 프로에서 에머슨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하였다. 하지만 에머슨은 금전적인 측면에서의 부족함을 문제점으로 지적하였고 계속해서 아마추어 무대에서 활약하는 것을 선택한다. 1967년 프랑스 오픈 우승을 끝으로 오픈시대 이후 단식 그랜드 슬램 타이틀을 획득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는 오픈 시대 이후 복식 무대에서 우승 2회, 준우승 3회의 성적을 남겼고 특히나 1971년 로드 레이버와 함께 윔블던 남자 복식 우승을 기록하며 마지막 그랜드슬램 트로피를 거머쥔다. 이는 그의 통산 28번째 메이저 타이틀이였다.
이후 그랜드 슬램 대회 참가 없이 몇몇 대회에서 소소한 활약을 보이며 1983년 은퇴를 선언한다.
3. 커리어
그랜드슬램 대회: 우승 12회[16][17] / 준우승 3회 - 통산 210승 48패(승률 81.40%)
- 호주 오픈: 우승 6회(1961, 1963, 1964, 1965, 1966, 1967) / 준우승 1회(1962) - 통산 46승 9패(승률 83.64%)
- 프랑스 오픈(롤랑 가로스): 우승 2회(1963, 1967) / 준우승 1회(1962) - 통산 43승 11패(승률 79.63%)
- 윔블던: 우승 2회(1964, 1965) - 통산 60승 14패(승률 81.08%)
- US 오픈: 우승 2회(1961, 1964) / 준우승 1회(1962) - 통산 61승 14패(승률 81.33%)
그랜드 슬램 복식 우승 16회 / 준우승 12회
- 호주 오픈: 우승 3회(1962, 1966, 1969) / 준우승 5회(1958, 1960, 1961, 1964, 1965)
- 프랑스 오픈: 우승 6회(1960, 1961, 1962, 1963, 1964, 1965) / 준우승 4회(1959, 1967, 1968, 1969)
- 윔블던: 우승 3회(1959, 1961, 1971) / 준우승 2회(1964, 1967)
- US 오픈: 우승 4회(1959, 1960, 1965, 1966) / 준우승 1회(1970)
기타 대회
- 데이비스 컵: 우승 8회(1959, 1960, 1961, 1962, 1964, 1965, 1966, 1967)
4. 그랜드 슬램
로이 에머슨의 연도별 메이저대회 성적표연도 | 호주 | 프랑스 | 윔블던 | US |
1954 | 1라운드 | 1라운드 | 2라운드 | 3라운드 |
1955 | 2라운드 | 불참 | 불참 | 불참 |
1956 | 2라운드 | 불참 | 3라운드 | 8강 |
1957 | 불참 | 3라운드 | 4라운드 | 4라운드 |
1958 | 8강 | 불참 | 불참 | 불참 |
1959 | 8강 | 8강 | 4강 | 8강 |
1960 | 4강 | 3라운드 | 8강 | 3라운드 |
1961 | 우승 | 8강 | 8강 | 우승 |
1962 | 준우승 | 준우승 | 4라운드 | 준우승 |
1963 | 우승 | 우승 | 8강 | 4라운드 |
1964 | 우승 | 8강 | 우승 | 우승 |
1965 | 우승 | 4강 | 우승 | 8강 |
1966 | 우승 | 8강 | 8강 | 4강 |
1967 | 우승 | 우승 | 4라운드 | 8강 |
1968 | 불참 | 8강 | 4라운드 | 4라운드 |
1969 | 3라운드 | 4라운드 | 4라운드 | 8강 |
1970 | 불참 | 불참 | 8강 | 4라운드 |
1971 | 8강 | 불참 | 4라운드 | 불참 |
1972 | 불참 | 불참 | 불참 | 1라운드 |
5. 평가
에머슨이 달성한 12번의 그랜드 슬램 타이틀 기록이 2000년 피트 샘프라스가 넘어서기까지 약 33년간 1위를 차지했다는 점에서 그의 위상을 엿볼 수 있다. 특히나 1961년부터 1967년까지 7년간 남긴 기록[18]에서 마땅한 적수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커리어가 오픈 시대 이전의 선수라는 점, 특히나 이 시기에는 프로 무대와 아마추어 무대가 별개였고 상위권 선수들의 경우 대부분 프로 무대에서 뛰었다는 점[19]], 오픈 시대 직전인 1967년의 단식 기록과 오픈 시대가 열린 1968년의 단식 기록의 정도 차이가 크고 마땅한 성적을 남기지 못했다는 점에서 약간의 미묘함을 느낄 수 있지만, 아직까지도 유일한 그랜드 슬램 결승 10연승의 기록과 복식 무대에 있어서는 오픈 시대 이후에도 우승 2회, 준우승 3회를 기록하였다는 점, 프로와 아마추어 선수가 섞여 진행했던 국가 대항전 데이비스 컵의 대표로 활약하며 9년간 8번의 우승을 이끌었다는 점 등에서 한 시대를 대표했던 불세출의 전설적인 스타라고 평가된다.
6. 여담
- 1982년 국제 테니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스위스 그슈타드에서 개최되는 그슈타드 오픈의 매인 스타디움이 이 대회에서 5번 우승하는 등의 활약을 보인 에머슨의 이름을 따서 로이 에머슨 아레나로 명명되었다.
- 2000년 호주 스포츠 메달을 수상하였으며, 2001년에는 센테너리 메달을 수상하였다.
- 브리즈번 인터내셔널 오픈 250의 트로피 이름은 에머슨의 이름을 따서 지은 로이 에머슨 트로피이다.
- 그의 고향인 블랙벗에는 로이 에머슨 박물관이 있으며, 브리즈번에는 그의 이름을 딴 테니스 센터가 있다.
- 2012년 테니스 채널이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100인"에서 11위에 선정되었다.
- 로드 레이버와 39번 맞붙었는데 전적은 8승 31패로 완전히 밀린다.
- 켄 로즈웰과는 8승 8패로 호각을 다투었다.[20]
- 로즈웰은 170cm, 레이버는 173cm로 작은 신장이였던 이들과는 다르게 183cm의 신장으로 3인방 중 최장신이였다.
[1]
아마추어 데뷔는 1951년에 하였다.
[2]
오픈 시대 이전 1961, 1964, 1965년에 세계 1위에 등극하였다.
[3]
오픈 시대 이전 성적까지 합치면 1397승 416패, 승률 77.0%
[4]
오픈 시대 이전 단식 성적과는 별개로 복식 성적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에 미기재함.
[5]
오픈 시대 이전 성적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지만, 우선 그랜드슬램 우승 12회를 달성한 것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일부 언론은 그가 110개의 타이틀을 획득했다고 말하지만, 55-60개 정도의 타이틀을 획득했다는 의견에 가장 힘이 실린다.
[6]
로이 에머슨은 그램드슬램 복식 우승을 16회 기록하였다. 이와 더불어 기타 대회에서 약 50-60개의 타이틀을 획득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기에 약 60개 중반-80개 정도의 복식 타이틀을 획득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7]
그랜드슬램 4개 대회를 모두 우승
[8]
그랜드슬램 4개 대회를 2번씩 우승
[9]
에머슨의 뒤를 이어
로드 레이버,
노박 조코비치,
라파엘 나달이 이를 기록하였으며, 조코비치는 2023년 프랑스 오픈에서 남자 테니스 단식 부문 역사상 최초로 트리플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며 새로운 역사를 작성하였다.
[10]
여담으로 복식 부문에서는 트리플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였다.
[11]
호주의 테니스 선수로 1959년 남자 단식과 복식 모두 세계 1위를 기록하였다. 커리어 통산 697승 227패, 승률 75.2%를 기록하였으며, 그랜드 슬램 단식 우승 3회, 남자 복식 우승 11회, 혼합 복식 우승 5회, 데이비스 컵 우승 4회 등을 기록하며 1960년대 호주 테니스 전성기를 이끈 스타였다. 2024년 12월 2일 91세의 나이로 작고하였다.
[12]
1961년에는 에머슨이 그랜드 슬램 무대에서 레이버를 두 번 제압했지만, 1962년에는 반대로 호주 오픈, 롤랑가로스, US 오픈 결승에서 레이버가 에머슨을 모두 제압했다.
[13]
오픈 시대 이전 성적까지 합산할 경우 1397승 416패, 승률 77%
[14]
오픈 시대 이전 타이틀까지 합산할 경우 55-110개
[15]
오픈 시대 이전 타이틀까지 합산할 경우 60-80개
[16]
역대 5위, 1위는
노박 조코비치의 24회. 2위는
라파엘 나달의 22회, 3위는
로저 페더러(20회), 4위는
피트 샘프라스의 14회
[17]
에머슨의 타이틀의 경우 모두 오픈 시대 이전에 획득한 것이기에 5위로 인정해주는 경우가 있고, "오픈시대 이후"라는 수식어를 함께 표기하여 순위에서 제외하는 경우도 있다. 오픈 시대 이후의 선수만 나열할 경우 5위는
비에른 보리의 11회이다.
[18]
7년간 에머슨은 남자 단식 그랜드 슬램 우승 12회, 준우승 3회를 기록하였는데 순수 그랜드 슬램 기록으로만 비교할 경우 이 수준의 슬램 지배력을 보인 선수는 1990년대 샘프라스, 2000년대 페더러, 2000년대 중반 ~ 2010년대 초반 나달, 2010년대 조코비치 밖에 없다.
[19]
실제로 함께 1960년대 호주 테니스를 이끌었던 켄 로즈웰과 로드 레이버는 각각 1957년, 1963년 이후 프로 무대에 진출하여 활약하였다.
[20]
켄 로즈웰의 로드 레이버와의 상대 전적은 8승 24패로 사실 레이버는 동시대 스타였지만 로즈웰이나 에머슨보다 최소 1~2급간 이상의 선수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