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9 09:39:08

로살리아 아르테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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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콰도르 경우 임기가 중간에 단절되었다가 다시 집권해도 처음 집권했을 당시의 대수를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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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d700><colcolor=#0038a9> 로살리아 아르테아가
Rosalía Arteaga Serrano
파일:Rosalia Arteaga.png
출생 1956년 12월 5일 ([age(1956-12-05)]세)
국적
[[에콰도르|]][[틀:국기|]][[틀:국기|]]
배우자 페드로 페르난데스 데 코르도바 알바레즈 (이혼)
재임기간 대통령
1997년 2월 9일 ~ 1997년 2월 11일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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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콰도르의 정치인. 에콰도르에서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부통령에 올랐으며, 최초에 여성 대통령에도 올랐지만 단 2일만에 축출당한 비운의 인물이기도 하다.

2. 생애

쿠엥카에서 태어났으며, 에콰도르 교황가톨릭대학교 및 쿠엥카 대학교를 졸업했다.

1994년 식스토 두란 발렌 정부의 교육문화체육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지만, 몇 달도 못 가 경질되면서 첫 판부터 불안한 출발을 알렸다. 1996년 정통공화독립운동의 대선 후보로 선출되어 에콰도르 롤도스당의 압달라 부카람[1][2] 후보와 단일화하는 조건으로 러닝메이트로 출마했으며, 부카람이 당선되면서 아르테아가도 덩달아 부통령에 올랐다. 한때 육상 선수로 활약했으며 비행기 사고로 안타깝게 사망한 매형의 후광까지 얻으며 산뜻하게 출발한 부카람 밑에서, 그것도 최초의 여성 부통령이라는 의미까지 더해져 나름 승승장구하는 듯 싶었으나, 막상 무능과 부패로 지지를 급속히 잃으면서 그녀의 평판도 덩달아 추락하기 시작했다.[3] 결국 부카람과 사이가 벌어지다 결별했으며, 부카람은 1997년 2월 6일 국회 탄핵 표결 끝에 사임하였다. 곧바로 국회는 파비안 알라르콘 국회의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선포했지만, 정·부통령제가 으레 그렇듯이 법적으로는 대통령의 궐위 시 부통령이 승계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에 논란이 되었으며, 3일 후 이 결정을 뒤엎고 아르테아가를 정식 대통령으로 선포했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올랐지만, 선출 과정에서 논란 그 자체였고, 무엇보다도 국회와 군부의 반발까지 겹치면서 혼란까지 더해졌다. 결국 이틀 뒤 국회는 알라르콘을 다시 임시 대통령으로 선포했고, 아르테아가는 대통령에 오른 지 겨우 2일만에 사임했다. 말이 좋아 사임이지, 사실상 군부와 국회의 쿠데타로 축출된 셈.

하지만 대통령직에서 축출되는 과정 또한 적법성에 논란이 있었고, 이후 부통령직에 복귀했지만 막상 본인도 스스로 처한 상황에 한이 크게 맺혔는지(?), 1998년 대선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허나 국민들에게는 부카람 정권의 부역자라는 이미지가 짙어서 아무런 동정심을 받지도 못 했고, 결국 5.1%라는 저조한 득표율로 5위로 떡실신했다. 그나마 꼴지를 면한 게 위안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정치적으로 몰락한 셈이었으며, 선거 결과가 나오자마자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각계 기관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언론인으로 활동 중이다.

이렇게 정계에 입문하고 몰락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4년 뿐인 비운의 정치인이지만,[4] 그래도 에콰도르 최초의 여성 부통령이자 대통령을 지냈다는 역사적 의의를 남겼다.


[1] 당명이 뭔가 사람 이름 같은데, 롤도스는 부카람의 매형으로 민주화 이후 첫 대통령을 지낸 하이메 롤도스에서 따온 것이다. 부카람의 누나 마르타 부카람이 롤도스의 아내였던 것. 롤도스는 1979년 민주화 시대 첫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나 2년 만에 비행기 추격 사고로 사망했다. 여기에 미국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있는데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방영된 적이 있다. [2] 그리고 스페인어를 쓰는 에콰도르의 대통령의 이름이 뭔가 아랍어스러운데, 이는 부카람이 레바논계의 후손이며 이름 또한 "압둘라(Abdullah)"에서 유래한 것이다. [3] 여기다가 부카람 정권이 제대로 된 비전이 없었던 것도 한 몫을 한다. 부카람이 당선된 것도 부카람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롤도스의 후광 때문이다. 아예 "롤도스당"이라고 당명에 매형의 이름을 붙이면서 자신의 매형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이용했는데, 결국 빼도 박도 못 하는 포퓰리즘(사실 남미가 포퓰리즘의 온상이기는 하지만). 여기다가 남미에서 인기가 없는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을 펼쳤고, 이 부작용까지 터져 인기를 잃을 수밖에. [4] 당장 대한민국 국회의원 임기가 4년이다. 적어도 대통령에 오를 정도면 경험이 꽤 필요할 정도인데, 이 안에 교육부 장관, 부통령, 대통령 3개의 직책을 지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불운한지 보여주는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