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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52B2E> 이름 |
로베르튀스 율리아뉘스 라모트 (Robertus Julianus Lamoo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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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11년 3월 18일 ([age(1911-03-18)]세) | |
벨기에 오스텐더[1] | ||
출생 | 1996년 6월 15일 ([age(1996-06-15)]세) | |
벨기에 | ||
국적 |
[[벨기에|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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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축구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 |
신체 | 키 177cm/ 체중 74kg | |
소속팀 |
KV 오스텐더 (1928-1933) RWD 몰렌베이크 (1933-1938) 로얄 샤를루아 SC (1938-1947) US 상트레 에느상피에르 (1947-19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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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 7경기 2골 ( 벨기에 / 1933~1939) |
[Clearfix]
1. 개요
벨기에의 전 축구선수.2. 생애[2]
2.1. 선수 생활
2.1.1. 클럽
1929년, 라모트는 고향팀 KV 오스텐더(Ostend)에서 데뷔했고 팀은 그 해에 2부 리그로 승격했다. 라모트는 팀에서 곧 자리를 잡았지만 오스텐더는 다시 3부 리그로 떨어졌다가 2부 리그로 올라가는 승격과 강등의 반복이었다.그러다 라모트는 1933년, 로열 다링 클럽 몰렌베이크(Royal Daring Club Molenbeek)로 10만 벨기에 프랑에 이적했고 몰렌베이크에서도 곧 주전 자리를 꿰찼다. 라모트는 몰렌베이크 데뷔 시즌에 24골을 넣으며 리그 득점 2위에 올랐고 소속팀 역시 준우승을 거뒀다.
당시 벨기에 리그에서는 루아얄 위니옹 생질루아즈(Royale Union Saint-Gilloise)가 60경기 무패 행진을 벌이며 리그 3연패를 거두고 있었는데 그 무패 행진을 깬 팀이 라모트의 몰렌베이크였다. 그리고 생질루아즈의 무패 행진이 종료된 이후 몰렌베이크는 리그 우승 2회, 컵대회 우승 1회의 성적을 냈다.
1938년, 라모트는 로열르 올랭피크 클뢰브드샤를루아(Royale Olympic Club-de-Charleroi)의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그 곳에서도 좋은 활약을 선보였지만 전쟁이 앞을 가로막았다. 전쟁이 끝난 후 샤를루아는 1946-47 시즌에 클럽 역사상 최고 성적인 1부 리그 2위의 성적을 냈는데 이것이 라모트의 마지막 1부 리그 기록이다. 그는 1부 리그에서 총 209경기 출전, 77골을 기록했다.
1947년, 36살의 라모트는 3부 리그 소속인 US 상트레 에느상피에르(US Centre Haine-Saint-Pierre)에서 선수 생활의 황혼기를 보냈다. 라모트는 1947-48 시즌에 에느상피에르를 2부 리그에 올려놓았고 1949년에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2.1.2. 국가대표
라모트는 1933년부터 1939년까지 벨기에 대표팀에 소집되었다. 라모트의 데뷔전 상대는 독일이었는데 뒤스부르크 원정 경기에서 벨기에는 1대8로 깨박살이 났다. 그나마 라모트의 골로 영패를 면한 게 위안이었다.그 이후 라모트는 1936년 5월까지 대표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그 사이에 월드컵이 있었지만 라모트는 대회 참가에만 의의를 둬야 했다.
1936년 5월의 3경기와 1937년 4월의 독일전 이후로 대표팀 출전을 못한 라모트는 1939년 5월에서야 다시 경기를 뛸 수 있었다. 라모트는 5월 18일, 프랑스에 1골을 넣었지만 벨기에는 1대3으로 패했고 5월 27일에 3대3으로 비긴 폴란드전이 그의 마지막 대표팀 경기였다.
3. 수상
3.1. 클럽
- 디비지옹 도뇌르 우승 2회: 1935–36, 1936–37(로열 다링 클럽 몰렌베이크)
- 벨지안 컵 우승 1회: 1934-35(로열 다링 클럽 몰렌베이크)
- 디비지옹 도뇌르 준우승 2회: 1933-34(로열 다링 클럽 몰렌베이크), 1946-47(루아얄 올랭피크 클뢰브 드샤를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