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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공화국 제44대 대통령 레이날도 베니토 비그노네 Reynaldo Benito Bigno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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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28년 1월 21일 |
아르헨티나 모론 | |
사망 | 2018년 3월 7일 (향년 90세)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 |
재임기간 | 제44대 대통령 |
1982년 7월 1일 ~ 1983년 12월 10일 | |
정당 |
[[무소속(정치)| 무소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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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 닐다 라켈 벨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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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르헨티나 육군 장교 출신으로, 군부 독재자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장군이 일으킨 쿠데타에 참여하여 이사벨 페론 정권을 뒤엎고 군의 실세가 되었고 결국 대통령까지 된 독재자.2. 생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프랑스인 어머니와 지브롤터인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났다.레오폴도 갈티에리 대통령이 포클랜드 전쟁의 패전을 이유로 대통령에서 사임하자 비그노네는 군부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으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이미 잔뜩 악화된 민심은 포클랜드전 패전으로 더 악화되어버렸다. 이에 언론 통제를 약간 풀어주는 등 유화책을 썼지만 유화책은 오히려 군부정권에 대한 반발만 더 크게 만들었다. 특히 군부 내부에서는 무리한 전쟁을 요구하는 군 내부의 간부들과 극우 정치인들에게 실망을 한 나머지 젊은 장교들을 중심으로 독재정권에 등을 돌렸다.
결국 비그노네와 군사정권 핵심 인사들은 악화된 민심을 되돌릴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권력을 내놓는 대신 살아날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우선 비그노네는 1984년 3월에 대통령 선거를 실시해 민정 이양을 약속했고, 여론을 달래기 위해 나중에 이를 1983년 10월로 앞당겼다. 그러나 그는 한편으로 호르헤 비델라 시절부터 저질러온 더러운 전쟁과 관련된 서류를 폐기처분했고, 그리고 호르헤 비델라의 손발이 되어 무고한 사람들을 마대자루에 넣어서 대서양에 갖다 버린 사람들에 대한 특별사면법을 제정했다.
1983년 대선에서는 민주화 운동을 펼쳤던 급진시민연합의 라울 알폰신이 당선되었다. 비그노네와 군부 핵심 인사들은 알폰신에게 대통령직을 순순히 넘겨주는 조건으로 자신들을 사면해달라고 했다. 라울 알폰신은 레이날도 비그노네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약속해놓고는 정작 대통령에 취임하자 없었던 일로 하고, 군부가 제정한 사면법을 폐기하고 호르헤 비델라, 레오폴도 갈티에리, 레이날도 비그노네 등을 전부 체포해서 호르헤 비델라와 레오폴도 갈티에리에게는 아르헨티나 기준으로 법정 최고형인 무기징역[1]을 선고했으며 레이날도 비그노네에게는 징역 25년을 선고하고 전부 법정구속하였다. 이에 따라 레이날도 비그노네도 대통령에서 물러나자마자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런데 징역을 살고 있는 동안 500명의 영유아 유괴 및 아기 인신매매 혐의가 추가로 밝혀지면서 레이날도 비그노네의 형량은 무기징역으로 올랐다. 반정부인사의 자녀들을 강탈한 뒤 그 아기들의 신분을 숨기고 여기저기 입양(사실상 판매)시킨 혐의이다.
2018년 옥중에서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90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