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4 16:07:17

레오니트 슬루츠키(정치인)

Леонид Эдуардович Слуцкий, 1968.1.4 ~

러시아의 정치인으로 현재 자유민주당의 대표. 2022년 갑작스럽게 사망한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의 정치적 후계자로서 현재 촉망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1. 초기 생애

소련 시절 콤소몰 출신으로 모스크바 기계도구학원(현 모스크바 국립기술대학교)을 졸업했다. 당시 소련은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슬루츠키 또한 법에 의거한 엄연한 징집 대상이었지만, 면제를 받아 징집되지는 않았다. 면제 사유는 현재까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

소련 해체 이후 1990년대에는 학업, 은행업, 정치 활동의 쓰리잡을 뛰기도 했다. 은행업계에서 근무하면서도 학업을 계속 이어나가며 각종 논문을 작성했고, 덕분에 여러 학위를 취득했다. 이 시기 유리 루즈코프 모스크바 시장의 고문을 지내기도 했고, 알렉산드르 벤게로프스키 국회부의장의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이렇게 전례 없는 쓰리잡을 뛰는 등 나름 입지적인 인물이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은행업과 학업에 여념하였으며, 정치 활동은 당시 일부 현직 정치인들을 보좌하는 수준이라 실질적인 정치 활동이라 보기 어려운 점에서 사실상 투잡을 뛰는 것에 가까웠다. 그러던 그를 눈여겨본 알렉세이 미트로파노프가 슬루츠키를 자유민주당으로 영입하는 데 앞장섰고, 이 때부터 슬루츠키의 본격적인 정치 활동이 시작되었다.[1][2]

2. 정치 활동

1999년 국회의원으로 선출된 후 국회 내 각종 위원회 의장직을 맡았는데, 문화재 및 종교 시설 복원 문제, 카자크[3] 문제 해결 등에 앞장섰다. 러시아 평화재단을 이끌면서 각종 선행 활동을 하고 있으며, 코로나 19 팬데믹 초반에는 각국에 인공호흡기 및 보호 장치 등을 보냈으며, 의료 장비를 국내외 의사, 자원봉사자 등에게 보내는 등 코로나 19 퇴치를 위해 힘쓰기도 했다.

이러한 행보 덕에 국내외적으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자유민주당의 스타 정치인으로 급부상하였다.

2.1. 지리노프스키의 후계자

70이 넘고도 혈기왕성하고 건강하던 지리노프스키였지만, 수 많은 세계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코로나 19는 "체력 킹왕짱" 그 자체였던 지리노프스키마저 죽음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지리노프스키의 부재로 자유민주당은 혼란에 빠졌다. 애초에 자유민주당 창당에 앞장섰던 인물이 지리노프스키였고, 자유민주당을 30년 넘게 이끌어온 이도 지리노프스키였기 때문에, 지리노프스키는 자유민주당에게 얼굴이자 간판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러한 지리노프스키를 하루 아침에 잃은 자유민주당은 단순 슬픔을 넘어 큰 충격과 혼란에 빠졌고, 이 때문에 지리노프스키의 행보와 카리스마를 이어나갈 참신한 지도자를 급구해야 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리노프스키 1인 없이는 못 사는 자유민주당 그 자체에게, 그럴 만한 인물을 도통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쓰리잡을 거치면서 정치권에 들어왔고, 정치인으로서 각종 두각을 드러낸 슬루츠키는 자유민주당에게 있어서 매력적인 인물이자 지도자감이었다. 도통 후계자를 물색하기 어려워보였던 자유민주당의 앞날에도 빛은 있었던 법. 그리하여 슬루츠키는 자유민주당 원내대표 대행을 거쳐, 공식적으로 자유민주당의 대표로 선출되었다.

그렇게 자유민주당의 신임 대표로 선출된 슬루츠키는 지리노프스키의 부재로 혼란에 빠진 당 내분을 빠르게 수습하고, 지지층과 당 내 기반을 빠르게 다져가며 2024년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비록 러시아는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을 분점하는 이원집정부제를 표방하고 있지만, 프랑스처럼 실질적으로는 대통령제에 가까운 러시아에서,[4] 대통령 선거는 한 정당의 정치인 혹은 당대표 본인의 능력을 인정 받는 매우 중요한 이벤트이다. 비록 자유민주당이 군소정당이고 지지율이 한없이 낮기 때문에 당선 가능성은 없다시피 하지만, 슬루츠키가 진짜 지리노프스키의 후계자로서 인정을 받으려면 대통령 선거에서 적어도 괄목할 만한 성적을 기록하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하나 있었다.

2.1.1. 미투 논란

슬루츠키가 자유민주당의 당권을 물려받기 전인 2018년, 그는 하나의 충격적인 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바로 당시 전 세계를 휩쓸었던 미투 운동.

2018년 2월, BBC 러시아 지부에서 근무하던 파리다 루스타모바, 도즈드 방송사 프로듀서 다리아 주크, 아나스타시아 카리모바 前 콤메르산트 기자, RTVI 전 기자 예카테리나 코트리카제 4인방은 슬루츠키에 대한 한 가지 "충격적인 사실"을 폭로했다. 그것은 바로 슬루츠키가 여기자들을 상대로 수차례 성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폭로가 터져나오고 전국적으로 큰 파장이 일었으며, 이 문제는 기어이 국회에서도 이슈화될 정도로 사태는 매우 심각해졌다. 옥사나 푸시키나 통합 러시아 국회의원은 RBC와의 인터뷰를 통해 본인은 피해 여기자들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헌데 이 인터뷰에서 그는 이미 성추행이 국회 내부에서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아무도 이를 이슈화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결국 사태가 심각해지자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본인의 페이스북에 "해당 사건으로 정신적 상처를 받은 분들께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하지만 사과의 진정성에 논란이 일었으며, 설상가상으로 이 이슈가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되기까지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증거 불충분"으로 결론을 내리면서 추가적인 논란을 일으켰다.

일단 윤리위원회를 통해 그의 무죄를 입증 받기는 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슬루츠키는 여론의 커다란 질타를 받았다. 적잖은 언론사들이 슬루츠키와 그를 "편들어준" 국회 윤리위원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했으며, 일부는 그의 사임을 종용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공식적으로 "증거 불층분"으로 간주된 덕에 그는 커리어를 꾸준히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고, 지리노프스키의 후계자로서의 입지 또한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 허나 미투 논란으로 인해 그의 이미지가 많이 실추되었으며, 현재까지도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바람에 아직도 러시아에서는 그에 대한 비호감도는 상당한 수준이다.

이런 연유 때문인지 2024년 1월에 공개된 대선 여론조사에서 고작 1.9%라는 처참한 지지율을 기록하고야 말았다. 물론 대선까지 일단 시간은 남았으니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지만, 이러한 논란을 극복하고 지리노프스키의 역대 최저 득표율인 2.7%[5]를 넘느냐가 관건이 되었다. 이것이 사실상 슬루츠키의 유일한 숙제가 되어버린 셈.

3. 여담

  • 리디아 리스코바라는 여성과 결혼하여 1991년 딸 이리나를 두었으며, 2010년 차녀 리디아를 추가로 득녀했다. 둘의 나이차는 무려 19세로, 이쯤 되면 거의 모녀뻘인 수준. 최근에는 손자도 두면서 할아버지가 되었다.
  • 러시아 정교회와 매우 깊은 인연이 있다.
  • 부친이 네덜란드어에 유창했던 영향인지, 레오니트 본인도 네덜란드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다.


[1] 아이러니하게도 미트로파노프는 이후 자유민주당을 탈당해 현재는 공정 러시아 소속이다. [2] 정작 자유민주당의 대표였던 지리노프스키가 영입을 주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이는 지리노프스키 본인이 직접 밝혔다. [3] "코사크"라고도 하며, 카자흐스탄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카자흐와는 무관하다. [4] 애초에 러시아 헌법도 프랑스 헌법을 본따 만들어졌다. [5] 2000년 대선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