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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Cartney 레논-매카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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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매카트니와 존 레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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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레논-매카트니는 밴드 비틀즈의 맴버인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 사이의 작곡 파트너십을 뜻하는 용어이다.
이 콤비가 다른 작곡 콤비들보다 특히 유명한 이유는 비틀즈라는 전설적인 밴드의 메인 작곡가였던 데다가 짧은 활동 기간(1962년~1969년) 동안 180여 개 곡을 다작했음에도 곡의 질이 매우 뛰어났기 때문이다.
2. 두 사람의 관계
2.1. 작곡 파트너로서
위의 인터뷰에서 존 레논이 언급했듯, 레논-매카트니 듀오는 둘의 능력이 서로의 약점을 가려주고 서로의 강점이 되어주는 보완 관계였다는 점에서 작곡에 큰 시너지가 났다.존 레논은 내면 지향적인 성격이었으며, 상대적으로 어두운 음악을 추구했다. 그에 반해 폴 매카트니는 관계 지향적인 성격이었으며, 밝은 음악을 작곡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나 작곡 방식에서 존 레논은 타고난 창의성 기반의 작사 능력과 곡의 포인트가 될 만한 큰 틀을 잘 만들어낼 줄 알았던[1] 작곡가인 반면, 폴 매카트니는 다양한 악기를 활용하여 곡을 보다 매력적이고 풍부하게 들리게끔 다듬는[2] 편곡 능력이 특출난 작곡가였다. 이렇게 장단점이 확실한 두 사람이 협업을 하여 서로의 단점을 메워주고 장점은 극대화하여 최상의 시너지 효과를 이뤄낸 것이다.
비틀즈의 해체 이후, 레논과 매카트니가 각각 단독으로 발표한 곡들 역시 뛰어난 평가를 받았으나, 비틀즈의 아성을 뛰어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레논의 솔로곡에는 깊은 울림을 주는 가사와 비틀즈 시절의 번뜩이는 작곡 센스가 남아있었지만, 다소 늘어지는 듯한 곡 구성과 아름답고 듣기 좋더라도 어딘가 밋밋한 구석이 있는 멜로디로 인해 당대의 대중에게 쉽게 어필하지 못했고 명성에 비해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반면 매카트니의 솔로곡은 아름다운 멜로디와 깔끔한 곡 구성, 다이내믹한 악기 배치로 당대엔 비틀즈 시절의 곡들 못지 않게 사랑받았으나, 후대에 들어선 많은 곡들이 레논-매카트니 시절 작곡된 곡들에 비해서 청자들에게 주는 울림이 떨어진다고 평가받는다.
2.2. 친구로서
3. 작곡 성향 및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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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존 레논, 오른쪽이 폴 매카트니.[3] |
두 사람은 로큰롤을 기반으로 하되 존 레논은 개인적이고 개성적인 음악을, 폴 매카트니는 대중적이고 듣기 좋은 음악을 지향했다. 이러한 둘의 성향 차이는 서로가 갖고있는 약점을 완벽하게 보완하여 무수한 걸작들이 탄생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러한 대표적인 예로 폴 매카트니가 레코드 가게에서 밥 딜런의 곡을 우연히 듣고 좋다고 생각하여 밥 딜런의 앨범을 사서 비틀즈 멤버들에게 들려주었고 존 레논이 밥 딜런의 가사를 듣고 감탄, 가사에 좀 더 공을 들이기 시작하자 이러한 경향성을 폴 매카트니가 본받은 것이 있다.[4]
밥 딜런 이외에도 이들이 영향을 받은 뮤지션으로는 엘비스 프레슬리, 버디 홀리[5], 척 베리[6], 리틀 리처드[7] 등이 있다.
하지만 레논과 매카트니도 사람인지라 서로의 능력이 비교될 수 밖에 없었는데, 존 레논은 폴 매카트니의 멜로디 메이킹 능력을, 폴 매카트니는 존 레논의 작사 능력을 굉장히 부러워했고, 이 둘은 서로의 능력에 자극을 받아서 많은 노력을 했다. All You Need Is Love, Imagine은 폴 매카트니의 멜로디 메이킹을 본받은 존 레논의 노력의 산물이고 Yesterday, Eleanor Rigby는 존 레논의 작사 능력을 본받은 폴 매카트니의 노력의 산물이다.
이들은 한 명이 곡을 쓰면 다른 하나가 가사를 붙이는 일반적인 작곡 콤비와는 다르게 둘이 마주 앉아서 번갈아가면서 노래를 조각 맞추듯 끼워나가거나[8], 둘 중 한 명이 대략적인 구상을 제시하면 가사나 편곡을 일부분 돕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둘이 따로 작곡한 불완전한 형태의 곡을 이어붙이는 식으로 작곡된 곡도 있다. A Day in the Life, Baby, You're a Rich Man, I've Got A Feeling인데 폴 매카트니의 'I've Got A Feeling'과 존 레논의 'Everybody Had A Hard Years', 그리고 잼 세션에서 나온 곡 'Watching Rainbow' 세 곡을 이어붙였다.
Everybody Had A Hard Years |
Watching Rainbows[9] |
결과물 - I've Got A Feeling |
4. 작곡가 논란
대다수의 곡은 작곡 기여도가 높은 멤버가 메인보컬을 맡았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누가 불렀든 저작권자를 레논-매카트니로 표기하는 바람에 몇몇 곡들은 원저작자를 알 수 없게 되었다.
대부분의 비틀즈 곡들은 후대의 연구에 의해 누구의 것인지 밝혀진 반면, 초기 비틀매니아 시절 곡들은 둘의 하모니가 중심이 되어 메인 보컬이 불분명한 곡이 많은지라 몇몇 곡들은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Eight Days a Week, Baby’s in Black, I Don't Want to Spoil the Party 등의 곡이 대표적이다.
사실 Yesterday 발표 당시, 주위에서 이 곡은 100% 폴 매카트니가 작사 및 작곡한 곡인데, 굳이 레논-매카트니로 낼 이유가 있냐는 의견이 대세였을 정도로 이러한 논란은 이미 비틀즈 활동 시절부터 예견되었다. 이에 대해 폴 매카트니는 "비틀즈를 결성할 때부터 존 레논과 서로가 쓴 곡들은 전부 이 이름으로 발표하기로 약속했고, 레논도 이러한 상황이 되면 똑같은 결정을 할 것이다."며 Yesterday를 레논-매카트니 명의로 발표했다.
존 레논도 비틀즈가 불화로 해체될 즈음, 자신의 첫 싱글 ' Give Peace a Chance'를 발매할 때 작사/작곡가를 레논-매카트니라는 명의로 표기했다. 하지만 그 다음 단독 싱글인 ' Cold Turkey'부터는 단독 명의로 표기하기 시작한다. 이후 둘은 비틀즈 활동과 관련 없는 솔로 곡은 각자의 이름으로 곡을 발표하기 시작했다.[10]
이외에도 1976년 매카트니는 자신의 밴드 윙스의 투어 현황 앨범 Wings over America를 낼 때 앨범에 포함된 다섯 개의 비틀즈 곡을 매카트니-레논으로 표기했다. 이 당시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존 레논 사후 Back in the U.S. 앨범에서도 'Paul McCartney & John Lennon' 표기가 이어지자, 존의 부인인 오노 요코가 이의를 제기해 법정 문제로 갈 뻔 했다. 그러나 결국 오노 요코가 소송을 취하하고 매카트니 본인도 레논-매카트니라는 표기는 비틀즈의 트레이드 마크 같은 것이니까 순서를 납득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여튼 확실한 것은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나온 것처럼 서로의 곡을 빼앗은 앙숙 관계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선의의 라이벌에 가까우며 서로를 가장 잘 아는 둘도 없는 파트너였다. 미디어에서 그려낸 허상에 속지 말자. 애초에 서프라이즈라는 프로그램이 고증 따윈 씹어먹고 자극적인 쪽으로 왜곡하기로 유명한 방송이기도하고 피해자가 한 둘이 아니다.
5. 여담
-
이렇게 밴드 내 작곡 콤비에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것은 이후 음악계도 마찬가지로
롤링 스톤즈의
재거-리처즈,
레드 제플린의
플랜트-페이지가 대표적이다. 그보다 더 후대에는
더 스미스의
모리세이-
조니 마,
스웨이드의
브렛 앤더슨-
버나드 버틀러
그리고 핑플의 길모어와 워터스등이 있다. - 존 레논은 말년에 매카트니와의 불화에 관한 질문을 받자 그와의 관계를 형제라고 답변했으며 언론에 알려진 만큼 사이가 나쁘지 않다고 답하였다.[11] 아마도 마치 형제간 다툼이 그렇듯, 언젠간 해결될 일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듯하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둘은 이미 해체 이후 화해를 한 상태였다. 자주 통화도 하고, 서로의 집에도 놀러가는 사이였다고. 1974년에는 같이 찍은 사진도 있다.
- 이후 존이 마크 채프먼의 흉탄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된 폴은 하루종일 멍한 상태로 있다가 비로소 존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내 린다 매카트니의 품에 안겨 아이처럼 울었다고 한다.
- 노엘 갤러거는 민트초코를 두고 개쩌는 것들 두 개가 만났으니 레논-매카트니와 같다며 좋아한다고 표현했다.
-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이카리 신지와 나기사 카오루의 모티브이기도 하다.
- 이들은 둘 다 종교가 없지만 그들이 작곡한 비틀즈 곡들 중엔 가끔씩 기독교적인 성향이 짙은 가사들이 은근 포함되어 있다.[12]
-
해외에서는 레논이 낫냐, 매카트니가 낫냐를 가지고 존 폴 대전이 자주 이루어지곤 하는데, 각기 다른 연예인 550명의 선호도를 모아놓은 영상도 있을 정도.
영상 결과는 존 레논 282표, 폴 매카트니 196표, 기권 50표. 조지 해리슨(15표)과 링고 스타(4표)를 향한 소신 표도 있었으며,
스탈린도 한 표를 받았다물론 어디까지나 선호도 투표인 만큼 재미로 보아야하지만, 주로 배우들이 존 레논을,[13] 음악인은 반반 정도로 나뉘는 점이 꽤 흥미롭다.
[1]
비틀즈의 곡 중에서도 가장 높이 평가받는
A Day in the Life,
Strawberry Fields Forever,
I Want to Hold Your Hand 등의 명곡은 모두 존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2]
Strawberry Fields Forever가 사이키델릭의 정수가 될 수 있게 해준 전체적인 편곡,
A Day in the Life 중반부의 40인조 오케스트라 파트,
Sexy Sadie에서의 피아노 인트로,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에서의 오르간 인트로 등이 대표적이다.
[3]
1968년,
화이트 앨범을 작업할 당시의 사진이다.
[4]
이 전까지 레논-매카트니의 곡 중 절반 정도는 첫 소절에 'You'나 'Your'가 들어갔을 정도로 단순한 사랑 타령 가사가 대부분이었는데
Help! 앨범과
Rubber Soul 앨범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밥 딜런의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 'In My Life'나 'Here, There and Everywhere"의 가사 같은 경우 사랑 노래 가사답지 않게 굉장히 시적이다.
[5]
둘은 버디 홀리의 작곡 능력에 큰 영향을 받았다. 둘이 처음 만나서 커버한 곡이 버디 홀리의 that'll be the day였을 정도
[6]
특히 존 레논이 좋아했다.
[7]
특히 폴 매카트니가 좋아했다.
[8]
1964년까지는 이러한 작곡 방식이 주를 이루었다.
[9]
기타리프 부분을 떼어왔다.
[10]
일설로는 폴 매카트니가 존 레논의 정치색이 짙게 반영된 'Give Peace a Chance'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아서 명의가 분리되었다는 설이 있지만, 출처가 불분명하다. '
Give Peace a Chance'의 작곡가 크레딧이 변경된 것도 1990년대부터의 일이라 폴 매카트니가 발매 직후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것을 꺼렸다는 설의 신빙성도 의심받는다. 오히려 존 레논 본인이 작사와 작곡을 실질적으로 도운 건
오노 요코 쪽인데, 요코 대신 폴을 공동 크레딧에 넣은 걸 후회했다고 밝혔다. 당시 폴을 공동 명의로 넣었던 이유는
The Ballad of John and Yoko의 작업을 도와준 데에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11]
비틀즈를 표적으로 삼은 황색 언론의 가짜뉴스는 60년대부터 수없이 많았으며 그 가짜뉴스들은 지금까지 대중들이 비틀즈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습득하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비틀즈의 멤버들도 한창 불화를 겪고 있을때 실제보다 훨씬 더 과장되게 상황을 설명하고 필요 이상으로 서로에 대한 디스를 주고받은 것도 있다.
[12]
무신론자였던
존 레논은 인간으로서의 예수는 존경한 것으로 보이며, 무신론적 불가지론자인
폴 매카트니도 2012년 인터뷰에서 예수는 영적으로서 믿지는 않더라도 역사적인 인물로서 존경한다고 밝혔다. 반면
조지 해리슨은 독실한 힌두교 신자였던지라 그 흔한 크리스마스 노래조차 한번도 작곡한 적이 없다.
[13]
존이 보다 다층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를 드러냈으며, 다양한 사회 참여적 행동을 보였다는 측면에서 배우들이 레논을 높게 평가하는 모습이 꽤 많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