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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 Rai – Radiotelevisione Italiana 라디오텔레비시오네 이탈리아나[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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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 1924년 | ||||
본사 | 로마 | ||||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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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의 공영방송이자 국가기간방송으로 유럽방송연맹(EBU)의 정회원이다. 메디아셋 같은 민영방송들 때문에 상황이 어려울 것 같지만 그래도 수신료를 받고, 광고료도 메디아셋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상당한 수준으로 받아먹기 때문에[2] 규모는 커서 유럽 대륙에서 5번째로 큰 방송사로 손 꼽힌다. 2006년부터 한국처럼 전기료에 합산하여 강제징수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전체 매출액의 39%가 광고료다. 수신료가 53% 정도. 다만 2010년대 중반 이후로는 광고수익이 9억 유로에서 5억 유로대로 감소하여서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졌다. 한국에서는 흔히 이탈리아 방송협회로 의역된다.2. 상세
1924년에에 개국한 민영 라디오방송인 'URI'가 전신이다. 초기에는 굴리엘모 마르코니가 방송국 대주주였다. 1927년 부분적으로 국영화되어 잠시 'EAIR'이란 명칭을 사용했다가 1944년 다시 'Radio Audizioni Italiane'(라디오 아우디치오니 이탈리아네)란 명칭으로 변경했으며, 'RAI'란 현 약칭은 여기서 유래했다.전쟁 직후 사업확장을 하면서 3개의 라디오 채널을 지니게 되었다. 1953년에 TV 방송이 개국되면서 정식명칭을 'Radiotelevisione italiana'로 바꾸었다. 1957년에 상업 광고를 개시했다. 당시 RAI의 광고방식은 한국과 미국은 물론이고 독일, 프랑스, 스페인, 유고슬라비아 등을 비롯한 타 유럽국가들과 비교해봐도 독특한 방식을 채택하였다. 우선 광고 한편의 길이가 20초, 30초를 채택했던 타국가들과 달리 2분을 넘겼으며, 또한 광고 앞부분 1분 30초~1분 45초간은 상표명과 기업 이름이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도록 했다는것이었다. 그래서 앞부분은 상황극, 콩트, 애니메이션, 인형극으로 채워놓았는데, 이 광고들을 특정시간대에 4편~5편씩을 묶으면서 TV 프로그램으로 별도 편성하였고, 특히 8시 30분에 방송된 광고프로그램인 카로쎌로는 엄청난 인기와 시청률을 기록하며, 뛰어난 광고효과를 보였다. 1970년대 이전에 유년기를 보낸 이탈리아 기성세대들이 추억하는 대표적인 TV프로그램 중 하나일 정도였다. 물론 칼로셸로뿐만 아니라 다른 시간대에도 광고를 편성했는데, 다른 시간대에 편성된 광고도 별개의 TV프로그램 명칭을 붙였다. 하지만 한정된 광고량으로 광고를 하는데[3] 진입장벽이 높은데다가, 트렌드 변화를 해야된다는 광고주들의 항의가 들어오자, 결국 1977년 컬러방송의 본격적인 시작과 함께 RAI에서 광고방식을 일반적인 블록광고 형식으로 바꾸며 사라졌다. 1961년에 RAI-2TV를 개국했다. 하지만 무솔리니 시절보다 못하지만 정부에 종속되는 문제점은 여전해서 친정부적인 성향을 띄었다.
1960년대 후반 68운동을 기점으로 사회운동이 활성화되어가며 RAI의 지나친 친정부적 성향에 대한 반발감이 커지고 이후에도 기민당 일당독주 체제가 지속되자 이에 대한 대안으로 지역 군소 방송국들(자유라디오 운동)이 대거 개국되면서 RAI의 입지는 축소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자유라디오 운동이 본격적으로 번져나가기 시작하면서 기존 기민당에 위협이 되자, 이탈리아 정치권은 이들 지역 군소방송에 대해 폐쇄조치를 내리는 한편, RAI 운영방식에 변화를 꾀하며, 네덜란드 NPO와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방식으로 RAI의 운영형태를 변화시켰다. 이에 따라 1977년 방송의 본격적인 컬러화와 함께 RAI1은 기민당(우파), RAI2는 사회당(중도파), 새로 개국한 RAI3는 공산당(좌파)이 지배하기로 협약을 맺었다. 이 협약에 따라 TV든 라디오든 채널에 따라 보도국을 나누었고, 채널별로 보도성향이 확연히 달라지게 되었다.
이 조치로 뉴스 프로그램의 경쟁을 유도하고 채널간의 경쟁도 유발하는 효과가 있었지만 정당에 의해 보도성향이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강해졌다. 1977년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전파의 독점적 이용권리를 사실상 상실하였고, 그에 따라 지역방송이 우후죽순격으로 늘어나면서 RAI의 입지는 급속히 좁아졌다. 거기에다가 1980년대 사회당 주도로 베티노 크락시가 총리직에 등극하면서 이들 지역방송들에 대한 규제를 대대적으로 완화하여 전국적인 규모의 민영방송이 허가되었고, 베티노 크락시와 친분이 있었던 베를루스코니는 이를 이용해 급속도록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RAI의 광고량도 증가되긴 했지만 당시 총리였던 베티노 크락시는 민영방송 규제완화에 집중했고, 그 이후 정권에서도 지속되며 결국 1990년 들어 마지막 남은 장치인 민영방송국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보도 프로그램을 방영할 수 없도록 직시한 법안이 폐지되면서 결국 베를루스코니의 메디아셋이 방송계의 1인자로 거듭났다.
이러한 상황속에서도 RAI는 기존 정치권을 대변하고, 동시에 시청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락프로그램의 비중을 늘리다 보니 공영방송임에도 민영방송과 다를바 없다는 말이 나올정도로 급속도록 상업화되었다. 오성운동의 설립자이자 코미디언인 베페 그릴로가 코미디언으로 이름을 날리다가 1980년대 중반에 방송에 출연할 수 없던 것도 이와 관련이 있는데, 워낙 정치인을 풍자하다 보니까 어떤 채널에서도 출연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나중에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명성을 날리고 오성운동까지 창당하면서 거물급 정치인이 되었다. 1993년 2월 뉴스 앵커인 릴리 그루베르의 지도하에 보도국 기자들은 브루노 베스파 보도국장을 강제 퇴직하면서 정당의 개입이 줄어들어 RAI가 잠시나마 독립적인 존재가 될 걸로 보였지만 상업화는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갔다. 한편 이 시기에 디지털 방송을 준비하기 시작하여 디지털 방송을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베를루스코니가 2기 집권기를 맞게 되면서 RAI 이사장을 교체해 RAI는 다시 정권의 시녀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고, 민영화되기 직전까지 가는 상황이 되었다. 그나마 2006년에 급소한 차이로 좌파가 집권하면서 방송의 개혁이 진행될 거 같았지만, 기존 정치권의 반발과 더불어 2008년 조기총선에서 베를루스코니가 3기 집권에 성공하면서 다시 현실은 시궁창이 되었고 때마침 찾아온 경제위기로 광고수입도 급감했다. 2012년에 아날로그 방송을 종료하고 디지털 전환을 실시하였다. 때마침 베를루스코니가 이때 물러났지만 현재까지도 상황은 영 좋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도 디지털 전환 기념으로 채널을 신설한 걸 보면 의외로 쌓아놓은 게 꽤 되긴 한 모양이지만... (뭐, 한국의 지상파 방송 마냥 케이블과 위성 채널을 운영한 경험이 있긴 하다.)
3. 주요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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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G1(RAI1), TG2(RAI2), TG3(RAI3), TGR(RAI 라디오1): 뉴스프로그램, 참고로 TV는 채널별로 보도성향이 달라서 TG1은
보수파, TG2는
중도주의파, TG3는
진보파를 대변한다. 성향뿐만 아니라 각 방송국마다 상징하는
색도 다르다. 1983년 이래로 RAI1은
파랑, RAI2는
빨강, RAI3는
녹색이 상징색이다. 2000년 이전까지는 RAI1은
구, RAI2는
정육면체, RAI3는
정사면체 같은 식으로 상징도형도 있었다!
RAI가 일본방송이었으면 캐릭터 하나 뽑아낼 기세 - RAI4, RAI5, RAI GR Parlamento(RAI 국회): 각각 TV 시리즈 및 다큐멘터리 채널로 이탈리아 국회와 상공회의소 중계도 맡고 있다. BBC Four겸 BBC Parliament와 비슷한 포지션인데 라디오 전문 채널이라는 점이 다르다. 넘버링이 있는 RAI4와 RAI5는 HD 전환 때 신설된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