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31 02:20:00

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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杜度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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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대 중국 후한 초기의 서예가이며 자는 백도(伯度)로 본명은 조(操). 옹주 경조군 두릉현 사람.

2. 생애

후한 장제 때의 인물이며 어사대부 두연년의 증손으로 제국상을 지냈다고 한다. 초서에 능해 장제의 총애를 받아 조서를 내려 두도의 장초서로 장계를 쓰도록 명령했다고 하며, 유명한 서예가 최원(崔瑗), 최식의 스승이다.

제자 최원과 함께 장초를 잘 썼기 때문에 두최(杜崔)라 묶어서 부를 정도였는데, 삼국시대의 조위 사람인 위탄은 걸출하면서도 굳센 힘이 있지만 글자의 획이 가늘어 서리 내린 숲에 잎사귀가 없고 폭포수가 난다고 평했다.

그렇지만 위탄에게 두도, 최원 등과 평가받았던 장지는 편지를 통해 주사라는 사람에게 편지를 보낼 때 자신의 초서에 대해 두도, 위침에 비해 부족하다고 했으며, 당나라의 장회관은 두도를 '뛰어나면서도 재빠른 변화가 가득 차 후세의 모범이 된다' 고 평가했다.

당나라의 문장가인 한유가 과도한 피휘 관습을 비판한 글인 〈휘변〉 에서, 부모나 조상의 이름자와 소리가 비슷한 글자까지 함께 피하는 것의 부당함을 논하면서 이 이름을 예시로 들었다. 두도의 자식들은 성씨인 杜가 부친의 이름자인 度와 음이 같으니[1] 자기 성씨까지 못 쓰게 되는 것이냐는 말.[2]


[1] 현재의 한국 한자음으로는 '두'와 '도'로 조금 다르지만, 반절 기준으로는 '徒古(ㄷ+ㅗ)' 와 '徒故(ㄷ+ㅗ)' 로 거의 같고, 현대 중국어로도 둘 다 'dù' 로 동일하다. [2] 물론 위에 적힌 대로 본명은 '操' 여서 두조(杜操)인데, 후대에 위 무제 조조(曹操)의 이름자를 피휘하기 위하여 자를 써서 '度' 로 표기되어 전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