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0 12:05:02

동이왕

東夷王
생몰년도 미상

1. 한서에 등장하는 왕
1.1. 정체에 관한 가설
2. 기타

1. 한서에 등장하는 왕

왕망(王莽)이 다시 아뢰었다. “태후께서 권력을 잡고 통치하신 수년 동안 은혜가 차고 넘치며 온화한 기운이 사방을 채워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풍속이 다른 이들마저 그 의를 사모하지 않은 자가 없었습니다.
월상씨(越裳氏)는 중역(重譯)을 하며 와서 흰 꿩을 바쳤으며, 황지(黃支)는 3만 리의 지역에서 무소를 바쳤으며, 동이왕(東夷王)은 큰 바다를 건너와 나라의 보배[國珍]를 바쳤고, 흉노의 선우는 (漢의‘去二名’ 법에) 순종하여 이름을 두 글자로 쓰는 것을 버렸습니다.”
“莽復奏曰: 太后秉統數年, 恩澤洋溢, 和氣四塞, 絕域殊俗, 靡不慕義. 越裳氏重譯獻白雉, 黃支自三萬里貢生犀, 東夷王度大海奉國珍, 匈奴單于順制作, 去二名, 今西域良願等復舉地爲臣妾, 昔唐堯橫被四表, 亦亡以加之.”
한서(漢書) 권99 상, 왕망전(王莽傳)

중국의 역사서 한서에 등장한 동이(東夷)의 왕. 원시 연간( 1년 ~ 5년), 왕망이 태후 왕정군(王政君)[1]에게 올린 글에서 언급된다.

동이왕이 어떤 국가의 왕인지는 불분명하나 아래의 가설들이 제기되어 있다.

1.1. 정체에 관한 가설

  • 허구설: 당시 섭정이던 왕망은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자신을 주공 단에 비유하며 이민족에게까지 교화가 미친다고 선전했기 때문에 왕망 측의 프로파간다였다는 주장이다.
  • 고대 일본의 왜왕이라는 설: 한서 지리지에 왜가 한나라에 계절마다 공물을 바쳤다는 기록[2]과 큰 바다를 건너왔다는 점을 근거로 한다. 일본의 학자 다나카 도시아키(田中俊明: 1952 ~ )가 주장했다.[출처]
  • 한반도 중남부 세력의 수장설: 김남중[4]은 동이왕으로 표현된 점을 볼 때 당시 사신을 보낸 세력을 왜로만 한정할 수 없고, 한반도 중남부 세력에서 사신을 보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진국(辰國)에서 사신을 파견했을 수 있다고 보았다.[출처2] 김지희는 한반도 남부에서 출토된 왕망전(王莽錢)을 근거로 한반도 남부의 수장세력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출처3]

2. 기타

  • 고구려가 5세기 건립한 중원고구려비에서 신라왕을 동이매금(東夷寐錦)으로 지칭한다.
  • 당나라 시인 마대(馬戴: 799~869)의 시 송책동이왕사(送册東夷王使: 동이왕의 사신에게 책을 보낸다)가 있는데, 시기상 신라 발해 사신을 지칭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7]
  • 권근의 응제시 '시고개벽동이주(始古開闢東夷主)'에서 지칭하는 동이왕[東夷主]은 단군을 의미한다.


[1] 왕망의 고모다. [2] 燕地. “樂浪海中有倭人 分爲百餘國 以歲時來獻見云.” - 漢書 卷28下, 地理志8下 [출처] 田中俊明, 三世紀東北アジア國際關係, 朝鮮學報, 230, 2014 [4] 전남대학교 역사문화센터 학술연구교수 [출처2] 김남중, 準王系 韓王에서 목지국 辰王으로의세력 교체 과정, 한국고대사탐구 42, 2020 [출처3] 김지희, 왕망전(王莽錢)_분포_현황으로_본_한반도_남부와_동아시아, 아시아 리뷰 12, 2022 [7] 발해의 경우 구당서, 신당서에서 북적열전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통전에서는 동이로 지칭된 점이 확인된다. 출처: 송영대,『通典』에 기재된 '東夷之地' 의미 분석, 동양정치사 18,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