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26 15:59:35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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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1.1. 화합 속의 평행선

1.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한국에서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성 소수자(Sexual Minority)의 성 정체성(gender identity)과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에 대한 실제적인 구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 성 정체성(Sexual Identity)이라고 뭉뚱그려 표현하는 현상에 반발하여 두 용어를 구분하는 이들이 늘고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관심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나 구분하는 것이 현실이다. 둘에 대해 설명하자면, 성 주체성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어떤 성으로 인식하는가'이고, 성적 지향은 '어떤 성에게 애정, 사랑, 성욕을 느끼는가'의 문제이다. 즉, 동성애자는 성적 지향이 동성인 경우, 트랜스젠더는 '자아'가 외부에서 규정 당한 꼬리표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다.

모 출판사의 '생활과 윤리' 교과서에는 ' 성 소수자는 일반적인 사람과 달리 이성을 사랑하지 않는다. 성적 소수자는 동성에게만 사랑을 느끼거나 동성과 이성 모두에게 사랑을 느끼는 사람을 가리킨다. 자신의 생물학적 성을 인정하면서 동성에게 사랑을 느끼는 사람과 자신의 생물학적 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고 서술하여 마치 '(일반적으로 남들이 볼 때) 동성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나타난다고 말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지만 틀렸다. 사랑(혹은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아래에 서술한 대로 MTF 레즈비언, FTM 게이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런 복잡한 경우도 존재한다. #

미국 통계지만 MTF의 경우 '남자만 좋아한다', 즉 이성애자라고 자신을 지칭한 사람은 23%에 불과했다. MTF들 사이에 가장 많은 성적 지향은 양성애자(31%)이고 그 뒤가 여자만 좋아하는 레즈비언(29%)으로 이 둘을 합치면 이성애자의 3배 가까이 된다. 이렇듯 MTF가 남자만 좋아한다는 결론에는 큰 오류가 있다. 그 외 나머지 비율은 무성애자, 기타라고 답변했다. 다만 어디까지나 미국의 사정.

제3자의 눈으로는 '동성을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똑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 동성애자는 자신의 성을 생물학적 성으로 인식한다. 즉, 남성 동성애자(즉, 게이)는 스스로를 여자로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트랜스젠더는 외모 성적 지향과는 관계 없이 생물학적 성과는 반대의 정신적 성을 가졌다.

실제로 흔한 케이스 중 하나로, 자신의 성별 정체성보다 성적 지향이 아무래도 빠르게 자각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자신을 게이 바텀 또는 레즈비언 부치로 여기고 소수자 생활을 시작했다가 나중에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하는 경우가 있다. 한 트랜스젠더가 이성애자라는 가정 하에, '자신이 생물학적으로 남성(여성)인데 남성(여성)에게 성적 호감을 느끼므로 자신은 동성애자일 것이다'라고 정체화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여장(남장)에 손을 댔다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이 이 바닥 학계의 정설이라고 한다.

또한 트랜스젠더인 동시에 동성애자인 경우도 있다. MTF이면서 레즈비언이라거나, FTM이면서 게이거나. 이들의 경우 주위의 몰이해로 '그럼 그냥 그대로 남자(여자)로 사는 게 편하지 않냐' 하는 소리를 듣는다. 심지어 시스젠더 동성애자들이나 같은 트랜스젠더 이성애자들까지 그런 소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의 젠더로서 사랑 받고 사랑하면서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위의 ' 동성애를 하기 때문에 (안 그렇기도 하지만) 트랜스젠더가 되기도 하는 거다'는 사고와 비슷한 논리. 예를 들자면, 성별 정체성은 거울 앞에 섰을 때 자신이 보고 싶은 평범한 모습이고, 성적 지향(정확히는 로맨틱 지향)은 놀이공원 관람차에서 같이 연애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한다.

1.1. 화합 속의 평행선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적 지향 소수자들과 트랜스젠더들이 밖에서 보이기엔 화기애애한 사이 같아도 그렇게 잘 지내는 건 아니다.

성 소수자라는 큰 틀에서 트랜스젠더와 게이 커뮤니티[1]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절대 그렇지 않다. 당장 운동권에서부터 트랜스젠더들이 게이 위주의 활동에 녹아들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사실 이는 서로 다른 범주의 집단이 일반인들에게 같은 것으로 매도되며 서로 연대함과 동시에 대립하게 되었다는 씁쓸한 이유가 있다.

게이들 입장에서는 성 지향과 주체성을 구분할 줄 모르던 전근대 시절부터 강제 거세, 강제 여장/남장을 비롯한 수모를 너무도 오래 겪어와서[2] 그 미친 짓을 제 발로 하겠다는 사람은 제정신이 아니라는 게이 커뮤니티 나름대로의 트랜스포비아가 자리 잡았고, 역으로 트랜스젠더들은 "너 게이구나?" 같은 소리를 미치도록 듣다 보니 ' 게이' 소리를 들으면 경기를 일으키고, 정신과 전문의나 임상심리사를 포함한 많은 타인에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설명을 하면서 이성애 중심적 사상이 듬뿍 함유된 실언을 하면서 시스젠더 성소수자들에게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기도 한다. 심지어 두 범주에 모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는 MTF 레즈비언, FTM 게이들도 ( 성적 지향 성 주체성은 완전히 별개임에도 MTF 레즈비언, FTM 게이 등을 페티쉬적 중증 변태로 취급하는 저급한 이들에게 반발하여) 자기 거부적 호모포비아에 빠지기도 한다.[3] 또 자기의 성 정체성은 받아들이고서 내로남불식으로 게이포비아 성향의 MTF 레즈비언, 레즈보포비아 성향을 보이는 FTM 게이의 경우도 있다.[4] 자기가 관심 없는 사람에게는 전혀 안 그럴 것 같아 보이겠지만 트랜스포빅 게이도 매우 많고[5], 호모포빅 트랜스젠더도 매우 많다.[6] 교집합에 속하지 않는 이상 서로 특별히 존중할 이유도 없고, 반대로 특별히 증오할 이유도 없는 두 '다른' 집단이 사회의 멸시 때문에 성소수자라는 큰 틀의 연대를 이루면서 마냥 잘 화합할 리는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바뀌지 않는 상태에서 인권 신장을 원하는 다른 소수자들과 달리 트랜스젠더는 주로 주류 사회에 편입하고자 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이런 ' 성적 지향 성 주체성의 충돌'을 잘 보여주는 상당수 이성애자 트랜스젠더들의 경험담이 바로 동성애자와의 연애. 이들의 경험담은 대충 말해 ' 김XX라는 지정성별과 다른 김XY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는 김 씨는 성전환 시작 이전 여자를 사귀어봤지만 여자는 김XX를 사랑하지 남자 사람 친구 김XY를 사랑하는 게 아니었고, 결국 김 씨는 여자친구와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로, 이 과정에서 트랜스젠더들은 "난 이대로의 네가 좋아"라는 상대방의 애원 아닌 애원에 너무나 큰 상처를 받는다. 물론 이는 한 가지 유형일 뿐, 주체성뿐만 아니라 지향성 면에서도 소수인 트랜스젠더로 이야기를 바꿔보면 이XY가 박XX와 교제하면서 이XX라고 커밍아웃하고는 우리 계속 사랑할 수 없냐고 했더니 변태 취급만 받고 좌절했다는 경험담 또한 적절한 예시이며, 이 또한 시스젠더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이성애자의 연애담 못지 않게 많은 이들이 겪어본 일이다. 양성애자 범성애자를 만났다는 트랜스젠더들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겠으나 퀴어 커뮤니티를 마구마구 휘젓고 다니지 않는 한 이런 사람들만 만날 수가 있으랴.

또한 인권 운동의 주요 현안에 있어서도 소수 지향성 퀴어들의 주요 의제와 트랜스젠더들의 주요 의제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 물론 퀴어문화축제, 차별금지법 등과 같은 주제에 있어서는 대체로 일치하지만, 트랜스젠더들은 동성결혼, 군형법 92조의6 폐지 같은 주제보다 건강보험 혜택 보장을 비롯한 의료 환경 개선, 고용 환경 개선, 호적상 성별 정정 조건 완화, 자유로운 화장실 이용 권리와 성중립 화장실, 주민등록번호상 성별 구분 철폐 등의 '자신들에겐 시급하지만 시스젠더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에 더 관심을 보이며, 인권 운동에서 이런 주제가 자주 다뤄지지 않는, 심지어 혐오자들의 갖가지 혐오 레퍼토리조차도 동성애 비난에 치우치는 세태에 불만을 보인다. 심지어는 성소수자 모임에서 트랜스젠더를 화장실에서 마주친 소수 지향 퀴어들이 문화충격을 받았다는 경험담도 전해지는 등 성소수자 인권 운동의 주류 문화에서부터 트랜스젠더들은 알게 모르게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여기에 아웃팅 운동권 같은 급진주의자들이 성공적인 패싱을 통해 자기 정체성대로 평화롭게 살던 트랜스젠더를 아웃팅하고는 트랜스젠더들은 좀 더 가시화가 되어야 인권 신장이 가능하다는 이상주의적 공상에 젖은 고집을 부린다거나 하면... 이 때문에 극단적으로는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두고 '그냥 게이 인권 운동이잖아? 나랑은 상관 없어'라는 무관심한 태도를 갖는 이성애자 트랜스젠더들도 적지 않은 형편.[7]

본 단락과 같은 서술이 다소 LGBTAIPQ+ 연대의 '분열을 조장하는' 느낌으로 서술되었다고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으나, 사실 이는 성소수자 인권 운동의 양상에서 상당히 눈 여겨 봐야 할 점이며 이를 뒷받침하는 실제 통계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2014년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설립 20주년을 맞아 SOGI법정책연구회에서 조사한 LGBTI 사회적 욕구조사 통계를 보면 'T(와 존재감 없이 T와 묻어가는 인터섹스)가 처해있는 사회적 현실과 어려움이 LGB+에 대한 차별의 양상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으며, LGB+에 비해 굉장히 구체적이고 제도적인 차별 사례가 다수 존재하는 반면 주류 성소수자 인권단체 활동 속에서는 T의 목소리를 강하게 내지 못한다'는 한계가 관찰된다.

예를 들어 T는 LGB+에 비해 고용 환경이 매우 열악하며 학력, 소득 수준이 매우 낮은 모습이 관찰되는데, 이는 신분증 공개에 대한 부담과 그에 따른 차별이 원인이라 분석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가족 구성권 면에서 동성결혼 보장 등을 비롯한 기존 제도의 개선보다는 기성 제도권 사회로의 편입을 선호하는 의견이 헤테로섹슈얼 트랜스[8] 중심으로 꽤 높았다. 자신들의 인권 보장을 위해 시급한 법령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동성결혼, 군형법상 추행죄보다는 까다롭지 않은 성별 정정 요건의 법제화, 건강보험 혜택 보장 등 시스젠더 LGB+들은 그다지 관심 갖지 않는 내용에 관한 응답이 많았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활동 양상도 친목을 위한 모임이 주를 이루는 LGB+에 비해 T는 정보 공유를 목적으로 한 활동이 다수를 차지한다. 의료 환경의 열악함을 예로 들면, 의료 기관에서의 차별이 작게는 지정성별에 의한 입원실 배정, 탈의 공간의 성차별부터 시작해 크게는 의사가 이해못하거나 진료를 거부 당하는[9], 또는 부당한 검사와 치료를 요구한다거나 성전환 치료가 전액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인 점, 그리고 수술을 비롯한 각종 의료 조치에 있어서의 부모 동의서 요구 등이 트랜스젠더들의 의료 여건상 고충으로 꼽히는데, 이는 시스젠더가 주류인 LGB+에서는 하등 큰 관심을 갖지는 않는 부분이다. 또한 특이한 점은 전반적인 정치적 스탠스가 LGB+에 비해 우파 스탠스에 가깝다는 점이다.

또한 T 커뮤니티는 성소수자 인권 운동의 현재만이 아닌 '역사'에서도 "소수자 속의 소수자"[10][11]에 해당하는 위치에 있었으며, 존재감 없이 묻히거나 배제 당하는 경향이 있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1990년대에 각종 '동성애자 인권운동' 단체들이 생겨나며 이전까지의 대한민국 퀴어 운동사가 1990년대 이전과 이후로 나뉠 정도의 분기점이 형성되었으나, T 커뮤니티는 옛날 옛적부터 그대로 트랜스젠더바와 그에 대한 단속 같은 사회상이 1990년대에도 달라지질 않았으며, 오히려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운동사에서 T에 대한 언급은 게이, 호모 등의 무질서한 용어 사용에 대한 교통 정리의 차원[12]에서 '편입' 내지는 '끌어왔던' 것이 그 시작이라 성소수자 인권운동에 있어 주도적인 입장이 되지는 못했다.[13] 참고로 이런 현상은 한국만이 아닌 외국에서도 비슷하다. 스톤월 항쟁 같은 인권운동사 고찰에 있어서도 흑인, 히스패닉을 비롯한 소수 인종 트랜스젠더들의 활약이 묻히고 화이트워싱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며, 프라이드 퍼레이드가 그냥 '게이 퍼레이드'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곳이 2010년대에도 의외로 많다. 게이 클럽이나 성소수자 인권 활동 기관 등에서도 트랜스젠더가 맘대로 화장실 이용하기엔 눈치를 보는 등의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의 소외 현상은 의도하든 의도치 않았든 T를 '배제'하는 현상으로 보일 수 있고, ' 성소수자 인권운동'이라는 큰 틀의 연대에서 T가 겉도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말 그대로 이와 같은 T의 배제, 타자화 현상은 화합 속의 평행선이라 할 수 있다. 대놓고 이런 혐오적인 감정을 숨기지 않는 이들은 LGBT가 아니라 아예 LGB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또한 이런 트랜스 배제적 운동가들은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본질적인 측면이라고 여기지 않고 호모포비아와 젠더 차별의 결과물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는 문제가 있다. DSM-III에 성정체성 항목이 들어갔을때 어린이에 대한 언급이 있자, 그것은 동성애에 대한 병리화를 우회등록 한것 뿐이라는 당시 동성애 운동가들의 반발이 유명하다. 이런 경향의 사람들은 젠더 이분법이 약해지는 사회가 된다면 트랜스젠더의 존재가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재 젠더 표현에 개방적으로 변한 서구 선진국을 기준으로 억압받으며 숨어살고 있던 그냥 여성적인 남성으로 여기면서 사는 사람들, 논바이너리라고 하는 사람, 자신이 트랜스섹슈얼이라고 하는 사람 등 트랜스 스펙트럼에 속하는 사람들이 모두 계속해서 증가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

한편으로는 이런 시선도 있다. '나는 동성애를 반대하지만 다른 성별의 몸에 갇혀 고생하는 트랜스젠더들은 너무 불쌍하더라' 같은 주장이 의외로 흔하다. 즉 트랜스젠더가 겪는 정체성 고민을 '장애'로만 여기는 시선인데, 문제는 트랜스젠더의 의료 접근권과 건강권을 논할 때면 이런 시선으로 접근하는 것이 꼭 부당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 트랜스젠더 스스로가 자신의 '잘못된 육체'를 의료적으로 '치료'하기 원하고 있다. 사실 투약-시술-정신감정-카운셀링 등등 트랜스젠더의 삶은 의료적 요소와 뗄레야 뗄 수 없다.

이는 동성애 선전을 불법으로 간주하면서도 트랜스젠더 중 '성전환 수술을 마친 사람'에 한해서는 법적 성별을 바꿔주기도 하는 러시아, 동성애를 사형으로 다스리면서도 성전환 수술은 국가에서 지원하는 이란 등 세계적으로 꽤 찾아볼 수 있는 편견이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로 극우 보수 세력의 지지를 업고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홍준표가 '성전환 수술을 하면 모를까 그게 아니고서는 동성애자는 싫어요'란 망언을 내뱉은 일이 있으며,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서울시민인권헌장 선포를 저지하는 소동 속에서 유사한 망언으로 비판 받은 바 있다. 이런 정치인들의 망언까지 찾아보지 않더라도 1990년대 이후로 대한민국의 여러 성소수자 이슈 중 성별 정정 요건에 대한 논의는 답보 상태에 머물러있는 여러 인권 이슈들 중에서 유일하게 꾸준한 개선과 발전이 이뤄지는 중이기도 한데, 이것이 '수술을 강요하다니 저 힘든 사람들 불쌍하지도 않냐'는 투의 논리를 답습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이것도 트랜스젠더의 인권 개선에 있어서는 나쁘진 않겠으나, 이러한 근시안적인 접근은 성적 지향에 관한 인식 개선의 노력을 흐릿하게 만들고 트랜스젠더들과 시스젠더 성소수자들의 유리화를 초래한다. 즉, 편견과 몰이해를 고치는 것은 백 번 지당하나 주민번호를 못 바꿔서 취업에 지장이 있는 트랜스젠더는 그 편견을 완벽하게 고치기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다는 이상과 현실의 대립에서 평행선은 길어지기만 한다.


[1] 본 문단에 한정하여 '게이'라는 말은 동성애자만이 아닌 '소수 지향성' 전체를 대변한다 생각하고 이해하자. [2] 예를 들어 이란은 이슬람 혁명 이후 이슬람권에서 참으로 보기 드문 성전환 수술 허용 국가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으나 남색 행위 같은 건 문답무용으로 사형이다. 그래서 일반 동성 커플조차도 억지로 성전환 수술을 받는 폐단이 나타나고 있다. 그나마 성전환을 하면 이성으로 인정해주는 건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3] 이유는 간단하다. 트랜스남/녀로서 어릴 적부터 여/남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는 등의 표현이 퀴알못 일반인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이해시키고 인정 받는 데에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 심지어 임상심리사들이나 법관들조차도 이런 사고 방식이 만연하기 때문에 많은 트랜스젠더들은 실제 자신의 지향에 무관하게 이성애자로 행동할 것을 강요 받으며 생존을 위해 좋든 싫든 '흔한' 이성애자처럼 행동하게 되는데, 이는 시스젠더 성소수자들이 상당히 불쾌해하는 현상이다. 실제로 대한민국에서 성별 정정을 하려면 법원에 자신의 성장 환경을 기술하고 심문을 거치게 되는데, 본인의 성적 지향이 어떻든 이성애자라는 내용을 넣을 것을 권유 받는다. 괜히 퀴알못들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내용을 구태여 설명했다가 허가가 안 떨어지면 본인만 손해다. [4] 이런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게, 트랜스젠더는 살아오면서 성전환 전까지 지정성별 사이에 끼어서 그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듣고 겪다 보니 해당 성별에 대한 혐오감이 생기는 경우가 많고, 자신의 정신과 일치하지 않는 해당 성별의 특징을 보이는 스스로의 신체에도 혐오감을 가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해당 성별에 사회적·신체적 혐오감을 갖고 있어 후천적 동성애자(원래 범성애자였으나 성 지향에서 해당 성별이 삭제되었다.)가 되었거나, 원래 동성애자이지만 상대 성별에 대한 혐오가 추가된 사람이 해당 성별끼리의 동성애를 상상한다면 끔찍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본래 게이 레즈비언간에는 서로 별 상관도 관심도 없기 때문에 서로 포비아 성향을 가질 일이 잘 없으나, 트랜스젠더는 필연적으로 원치 않게 직접 겪고 느끼는 부분이 있는 만큼 이런 케이스가 많이 발생하게 된다. [5] TERF 계열 래디컬 페미니즘 진영의 레즈비언들이 대표적. 사회의 '여자 같은' 게이라는 멸시에 반발하여 '여자 같은' 게이를 배척하는 한편 마초맨 근육돼지만을 높게 치는 게이들은 MTF 트랜스젠더를 싸잡아 까기도 한다. [6] 이성애자 트랜스젠더들은 고난의 성전환 과정을 성별 정정까지 마무리한 뒤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아예 떠나버리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그렇게 일반인들과 어울리고 녹아들다가 이따금씩 거론되는 호모포비아에 대해 반감을 표하려 들지 않거나 반감을 표할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물론 이런 현상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보니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이성애자' 트랜스젠더들의 입장에서는 "내가 여자라서 남자를 좋아한 거지 호모라서 남자를 좋아한 게 아니야."라는 식의 발언처럼 올챙이 적에도 난 게이가 아니었다고 게이 인권 운동을 남의 일로 취급했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소수 지향성을 가진 퀴어들에 비해 트랜스젠더들은 결속력이 너무 약하다는 지적을 받으며 성소수자 이슈에서도 강한 목소리를 못 내기도 한다. [7] 전설처럼 전해지는 "내가 여자라서 남자 좋아한 거지 게이라서 좋아한 게 아니거든!"이라는 대사가 잘 표현해준다. [8] 삐딱한 시선으로 보자면 자신의 정체성을 법적으로 인정받는다면 '동성애' 이슈에는 특히 관심 가질 이유는 없는 이들. 좁게 보자면 호모포빅 트랜스젠더, 넓게 보자면 헤테로섹슈얼, 더 넓게 보자면 기타 '동성애가 아닌' 소수 지향성으로 인해 소외 받는 트랜스젠더들까지 포괄할 수 있다. [9] 산부인과, 비뇨의학과 등의 의원에 호르몬 대체 요법을 받을 수 있냐고 물으면 처음에는 가능하다고 답하겠지만 트랜스젠더 HRT라고 하면 불가하다고 하는곳이 대부분이다. [10] 본 문단은 2016년 12월 10일 페미니스트 독서모임 솔여심이 주최한 "소수자 속의 소수자" 포럼 중의 강연 내용을 인용한다. [11] 약 100명 중2-3명 꼴인 동성애자나 양성애자 #와 달리 트랜스젠더의 인구 비중은 많게 잡아도 5000명중 1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12] 그 시절까지 한국에서는 성소수자 중 동성애자에 해당하는 부류를 호모라 부르고 오히려 트랜스젠더, 크로스드레서라 할 수 있는 부류를 게이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3] 예를 들어 그 시절 만들어지고 지금도 활동하는 주요 인권단체 중 '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는 2016년 11월 20주년을 맞았지만 2014년 이전까지는 '동성애자인권연대'라는 이름을 썼고 이 이름에 반발하는 트랜스젠더, 바이섹슈얼(이쪽도 성소수자 커뮤니티 내부의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등 다른 성소수자들과의 마찰로 장기간 홍역을 치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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