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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도널드 프랜시스 "돈" 슐라 Donald Francis "Don" Shula |
생년월일 | 1930년 1월 4일 |
사망 | 2020년 5월 4일 (향년 90세) |
국적 | 미국 |
출신지 | 오하이오 주 그랜드 리버 |
학력 | 존 캐롤 대학교 |
포지션 | 코너백 |
프로 입단 |
1951년 드래프트 9라운드 전체 110순위 클리블랜드 브라운스 지명 |
소속 구단 |
클리블랜드 브라운스 (1951~1952) 볼티모어 콜츠 (1953~1956) 워싱턴 레드스킨스 (1957) |
지도자 경력 |
버지니아 대학교 디펜시브 백 코치 (1958) 켄터키 대학교 디펜시브 백 코치 (1959) 디트로이트 라이언스 디펜시브 백 코치 (1960) 디트로이트 라이언스 수비 코디네이터 (1961~1962) 볼티모어 콜츠 감독 (1963~1969) 마이애미 돌핀스 감독 (1970~1995) |
1964 NFL 올해의 감독상 (AP/UPI/스포팅 뉴스 선정) | |||||
조지 할라스 | → | 돈 슐라 | → | 조지 할라스 | |
1967 NFL 올해의 감독상 (AP 선정) | |||||
톰 랜드리 | → | 돈 슐라/조지 알렌 | → | 돈 슐라 | |
1968 NFL 올해의 감독상 (AP 선정) | |||||
돈 슐라/조지 알렌 | → | 돈 슐라 | → | 버드 그랜트 | |
1968 NFL 올해의 감독상 (UPI/스포팅 뉴스 선정) | |||||
조지 알렌 | → | 돈 슐라 | → | 버드 그랜트 | |
1968 NFL 올해의 감독상 (Pro Football Weekly 선정) | |||||
수상 시작 | → | 돈 슐라 | → | 버드 그랜트 | |
1970 NFL 올해의 감독상 (스포팅 뉴스/Pro Football Weekly 선정) | |||||
버드 그랜트 | → | 돈 슐라 | → | 조지 알렌 | |
1971 NFL 올해의 감독상 (UPI 선정) | |||||
폴 브라운 | → | 돈 슐라 | → | 척 놀 | |
1972 NFL 올해의 감독상 (AP/스포팅 뉴스/Pro Football Weekly 선정) | |||||
조지 알렌 | → | 돈 슐라 | → | 척 녹스 |
1993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선정 올해의 스포츠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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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애시 | → | 돈 슐라 | → |
보니 블레어 요한 올라브 코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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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미식축구인이자 NFL 역사상 최다승 감독.2. 일생
2.1. 선수 시절
존 캐롤 대학교에서 사회학과 수학을 전공한 그는 잠깐 캔턴 링컨 고등학교에서 교사 겸 미식축구부 코치로 활동하다 1951년 NFL 드래프트 9라운드 110번으로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에 입단, 이후 볼티모어 콜츠-워싱턴 레드스킨스를 거치면서 6년간 선수생활을 했지만, 별로 좋은 실적을 못 내었다.
선수생활 와중인 1952년경에 오하이오 주방위군으로 한국전쟁에 11달간 참전한 바 있다.
2.2. 지도자 시절
2.2.1. 볼티모어 콜츠 시절
은퇴 이후 버지니아 대학교와 켄터키 대학교에서 어시스턴트 코치로 활동하다가 1960년에 디트로이트 라이언스의 수비 코디네이터로 NFL 지도자로 첫발을 내딛기 시작, 1963년에 마침내 볼티모어 콜츠 감독으로 취임하여 감독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쿼터백인 조니 유나이타스를 축으로 변치않는 강호의 위엄을 이어나가면서 1968년 슈퍼볼 준우승, 1970년 슈퍼볼 우승으로 괜찮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
2.2.2. 마이애미 돌핀스 시절
1970년에 돌핀스의 감독으로 취임함과 동시에 밥 그리시, 래리 송카, 러닝백 짐 킥, 와이드 리시버 폴 워필드, 그리고 노네임 디펜스(Noname Defense)라고 불리는 강력한 수비조직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강력한 공수 조화를 앞세워 1972년 14전 전승+슈퍼볼우승으로 NFL 역사상 유일한 퍼펙트 시즌[1]을 만들어냈고 1972년, 1973년 슈퍼볼에서 워싱턴 레드스킨스와 미네소타 바이킹스를 물리치고 2년 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이 노네임 디펜스라는 별명은 당시 마이애미 돌핀스를 처음 상대하던 NFC팀의 헤드코치들이 돌핀스의 수비팀 선수명단을 보고 "왜 마이애미 돌핀스 수비수들은 내가 아는 선수가 없냐"라는 말을 한데서 유래하였다. 마이애미 돌핀스의 공격진이 밥 그리시, 래리 송카 등 당시 최고의 기량과 네임밸류를 가진 반면 상대적으로 수비팀은 스타급 선수들이 없었기 때문.[2]
이렇게 근간을 탄탄히 다지면서 76년을 제외하면 매년 10승 이상을 올린 돌핀스는 1979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밥 그리시가 팀을 떠나면서 쿼터백에 공백이 생기는가 했지만 데이빗 우들리가 나타나 팀을 빠르게 안정시켰고 1982년 제17회 슈퍼볼(Super Bowl XVII)에도 진출한다. 팀은 아쉽게 워싱턴 레드스킨스에 패했지만, 1983년 미국 프로스포츠의 대표적 무관의 제왕으로 꼽히는 댄 마리노를 1라운드 27번째 픽으로 지명하면서 쿼터백 자리를 또다시 명예의 전당 선수로 채운다. 데이빗 우들리 때도 고승률로 플레이오프에 오르던 돌핀스는 마리노가 안정되자마자 1984년 압도적인 공격력을 앞세워 14승 2패로 슈퍼볼에 진출하지만 아쉽게 조 몬태나가 이끌던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에 패한다. 이 경기가 전설 댄 마리노의 유일한 슈퍼볼 진출이며, 이 패배를 시작으로 1997년 제32회 슈퍼볼(Super Bowl XXXII)에서 덴버 브롱코스가 승리할때까지 AFC가 슈퍼볼에서만 NFC에게 13연패를 당한다.
이때부터 지구 라이벌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나 뉴욕 제츠의 전력 상승과 수비력 난조, 공격진에선 매년 주전 러닝백이 바뀌는 러싱의 불안으로 인한 전력 불균형으로 플레이오프권에서 다소 밀려난 마이애미 돌핀스는 수비진의 리빌딩에 박차를 가했고 수비진의 리빌딩에 성공한 돌핀스는 1990년, 1992년 다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만 버팔로 빌스라는 AFC 절대강자의 벽을 넘지 못하고 슈퍼볼 진출에 실패했다.
그럼에도 1990년대 이후 매년 5할 이상의 꾸준한 승률로 플레이오프 컨텐더로써 유지는 했지만, 돈 슐라는 1995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3. 업적
4. 기타
말년엔 자신의 이름을 빌린 스테이크 레스토랑 체인인 'Shula's Steakhouse'를 운영했으나, 2020년 5월 4일 향년 9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1]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2007년 시즌은 정규시즌 16전 전승이지만 슈퍼볼에서 패해 결국 전승준이라 퍼펙트 시즌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2]
그러나 이것이 돌핀스 수비수들을
듣보잡이라고 무시한건지, 아니면 무명 선수들로 강한 수비팀을 만들었다는 칭찬인지는 의견이 분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