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28 17:18:11

데릭 윌리엄스

데릭 윌리엄스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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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릭 르론 윌리엄스
Derrick LeRon Williams
출생 1991년 5월 25일 ([age(1991-05-25)]세)
캘리포니아주 벨플라워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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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학교 애리조나 대학교
신장 203cm (6' 8")
체중 109kg (240 lbs)
윙스팬 217cm (7' 1.5")
포지션 파워 포워드 / 스몰 포워드
드래프트 2011 NBA 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지명
소속 팀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2011~2013)
새크라멘토 킹스 (2013~2015)
뉴욕 닉스 (2015~2016)
마이애미 히트 (2016~2017)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2017)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2018)
바이에른 뮌헨 (2018~2019)
페네르바흐체 SK (2019~2020)
발렌시아 BC (2020~2021)
마카비 텔아비브 BC (2021~2022)
파나티나이코스 BC (2022~2023)
등번호 7번 - 미네소타
13번 - 새크라멘토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입성전3. 입성후
3.1. 미네소타 팀버울브스3.2. 새크라멘토 킹스3.3. 뉴욕 닉스3.4. 마이애미 히트3.5.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4.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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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발렌시아 BC에서 뛰고 있는 농구선수. 주로 포워드로 활약하고 있다.

2. 입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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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릭 윌리엄스는 원래 남 캘리포니아 대학교로 진학하려고 했으나, 션 밀러 감독의 권유를 받고 애리조나 대학교로 진학했다. 1학년 때는 평균 15.7득점을 기록하여 같은 해 All-American and the Pac-10에 이름을 올렸다. 2학년때는 평균 19.5득점과 8.3개의 리바운드를 기록하였고, 대학생이면서 미국 농구 대표팀에도 발탁이 되었다. 또 같은 대학교 정규 시즌에 챔피언쉽과 이 해의 Pac-10 선수상도 수상했다. NCAA 남자 농구 대회에서는 멤피스 대학교를 상대로 위태로웠던 블록 슛을 만들어 공격제한 시간 2초를 달하게 했다. 코네티컷 대학교와의 NCAA 토너먼트 결승전에서는 65 대 63으로 불과 2점 차이로 승리하여 NCAA 토너먼트 챔피언에도 등극하였다.

3. 입성후

3.1.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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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릭 윌리엄스는 2011년 NBA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2순위로 미네소타 팀버울브스를 지명하여 그와 동시에 NBA에 입문하게 된다. 게다가 같은 해에는 직장 폐쇄도 있었으나 애리조나 대학교에서는 이미 더 적은 여름 학기 수업을 마치고 학부를 취득하였다. 곧바로 드래프트 된 뒤에는 언더 아머와 계약을 체결하였고, 같은 해 여름에는 몇몇 NBA선수들과 같이 필리핀에서 개최된 시범경기에도 참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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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에는 팀 메이트인 리키 루비오와 함께 2012 라이징 스타 챌린지에 참가하였다. 그러나 윌리엄스는 척팀( 찰스 바클리), 루비오는 샤크팀( 샤킬 오닐)으로 구성이 되어 완전히 라이벌이 된 듯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또 2012 NBA 올스타 슬램덩크 콘테스트에도 참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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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28일에 열린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를 상대로 10개 가운데 9개 슛을 쏘아 3점슛 성공은 4개 가운데 모두 성공하였고, 시즌 최고 27득점을 기록하여 승리했다. 또 2013년 3월 17일에 열린 뉴올리언스 호네츠와의 경기에서는 시즌 최고 기록인 28득점을 기록하였다.

3.2. 새크라멘토 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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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26일에는 룩 음바 아 무테와의 교체 형식으로 새크라멘토 킹스로 이적을 한 윌리엄스는 11월 29일에 열린 로스앤젤레스 클리퍼스와의 홈 경기에서 12득점을 넣어 6개의 리바운드와 4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였지만, 연장전 끝에 94 대 106으로 패하였다. 같은 해 12월 9일에는 댈러스 매버릭스를 상대로 최고 기록인 31득점을 넣어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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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와의 2014-15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서는 22득점을 넣어 122 대 109로 승리했다.

3.3. 뉴욕 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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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6시즌에는 뉴욕 닉스와 계약을 체결하여 10월 28일에 열린 밀워키 벅스와의 개막전에서 24득점을 넣어 122 대 91로 팀의 첫 승리를 가져가게 되었다. 1월 12일에 열린 보스턴 셀틱스와의 경기에서는 15득점을 넣어 10개의 리바운드 그리고 본인의 첫 더블-더블울 기록하여 120 대 114로 승리하였다. 다음날에 열린 브루클린 네츠와의 경기에서 최고 기록인 31득점을 넣어 타이를 만들었으나 패하였다.

3.4. 마이애미 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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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10일에는 마이애미 히트와 계약을 하여 25경기를 뛰었으나, 다음해 2월 6일에 방출되어 버리고 말았다.

3.5.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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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9일에는 10일 계약으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로 이적을 하게 된 데릭 윌리엄스는 바로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와의 경기에서 12득점과 자유투 8개 가운데 6개를 넣었지만 109 대 118로 데뷔경기에서 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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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5일에 열린 친정팀 팀버울브스와의 경기에서는 13득점을 넣어 116-108로 승리를 잡게 된다.

2월 23일 두번째 10일 계약을 맺었고 27일 결국 클리블랜드와 FA 계약을 맺었다. 연고팀이기도 한 댈러스와 경쟁이 있었지만 전반적인 팀분위기에 만족한 듯.

4. 총평

NBA 역사상 가장 존재감 없는 2픽 중 한 명.

사실 2011 드래프트는 1픽이었던 카이리 어빙을 제외하면 나머지 선수 자원들에 대한 기대감이 그닥 높지 않은 해였다. 실제로 드래프트 10위 이내의 선수 중에서 훗날 올스타로 선정될만큼 성공한 선수는 1순위의 어빙과 8순위의 켐바 워커 둘 뿐이고 나머지 선수들은 영 별볼일 없는 선수로 성장했는데, 그 중 화룡점정이 바로 이 데릭 윌리엄스. 사실 2011 드래프트는 10위보다 10위 밖의 선수들이 더 성공을 거뒀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드래프트 실패가 많은 해였는데, 11위의 클레이 탐슨, 15위의 카와이 레너드, 16위의 니콜라 부세비치, 30위의 지미 버틀러 등이 바로 그 주인공들. 그나마 1순위였던 카이리 어빙이 1순위에 걸맞은 선수가 되었기 때문에 2011 드래프트가 흑역사로 기억되지 않는 것뿐이다. 그러나 본 항목의 주인공인 2순위 데릭 윌리엄스만 놓고 보면 흑역사 of 흑역사라고 할 수 있다.

2011년 당시 1순위가 어빙으로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면, 2순위는 데릭 윌리엄스로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어빙과 윌리엄스 사이에 넘사벽이 존재한다는 게 대부분의 평가였지만, 극소수의 사람들 중에선 윌리엄스가 어빙보다 낫다는 의견이 흘러나오기도 했을 정도로 윌리엄스가 확고부동한 2순위였다.

그러나 데릭 윌리엄스는 데뷔 첫해부터 실망스런 활약을 했다. 어느 정도냐면, 데뷔팀인 미네소타 팀버울브스가 두 시즌 만에 실패를 인정하고 다른 팀으로 보내버렸을 정도인데, 그냥 평범한 신인이 아니라 2픽으로 뽑은 신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극히 이례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스카우팅 리포트 중에서 데릭 윌리엄스가 안 풀리게 될 경우 룩 음바 아 무테 정도 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있었는데, 그러한 평가의 당사자인 음바 아 부테와 트레이드 되었다는 것. 어쨌든 이렇게 한번 트레이드 된 이후로는 어느 한 팀에 정착하지 못하고 저니맨으로 20대 초반을 보냈으며, 결국 27세의 젊은 나이에 NBA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해외리그를 알아봐야하는 처지가 되었다.

윌리엄스에게 특별한 부상 같은 건 없었다. 그냥 못했다. 어찌보면 드래프트 이전에 받은, 제2의 룩 음바 아 무테라는 평이 정확했다고 보면 된다. 심지어 공격력은 룩 음바 아 무테인데 수비력은 아 무테보다 낮았다. 사실 윌리엄스로선 억울한 것이, 본인은 자라면서 3번으로 도맡았고 원했던 포지션도 3번이었지만, 소속팀들은 윌리엄스가 4번 역할을 맡기면서 결국 3번도 아니고 4번도 아닌 어정쩡한 트위너가 되어버렸던 것. 근본적인 원인은 데릭 윌리엄스 본인이 신체 조건에 맞지 않는 스킬셋을 갖췄었기 때문. 원래 3번 포지션은 리그에서 날고 뛰는 선수들의 전쟁터인데 윌리엄스가 그들을 상대하기엔 너무 둔했다. 그런데 뒤늦게 정착한 4번으로 뛰기엔 골밑에서의 몸싸움 자체를 끝까지 익히지 못했다. 운동 능력이 뛰어나다지만 포지션이 불안정하다보니 샷 셀렉션 또한 안 좋을 수 밖에 없었고, 슛의 확률 또한 오락가락했다. 그렇다고 퓨어 슈팅력이 좋은 것도 아니어서, 3점은 결국 끝까지 개선되지 못하고 통산 30%에 머물렀다. 수비가 좋은 것도 아니어서, 아니 최악의 수준에 가까워서, 벤치에서 써먹기도 애매했다.

종합하면, 특별한 장점없이 어정쩡한 트위너로서 실패하게 된 전형적인 케이스인데, 그게 하필 2순위라는 특급 유망주였다는 게 남달랐을 뿐이다. 그나마 미네소타 때나 관심을 좀 받았을 뿐, 미네소타를 떠난 뒤에는 빠르게 잊혀지기 시작해서 은퇴할 때까지 존재감이 아예 사라져 버렸다. 사실 위에 기재된 선수경력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다른 해의 드래프트 2순위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내용이 부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