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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fff> 대구 연초제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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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565657> 개업일 | 1949년 |
폐업일 | 1999년 7월 8일 |
규모 | 48,000㎡[1] |
위치 | 대구광역시 중구 수창동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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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구광역시 중구 수창동1에 있었던 KT&G의 담배 제조공장. 대구 연초제조창 또는 대구제조창이라고 불리던 공장이다.2. 역사
일제강점기이던 1921년 4월, 조선총독부가 '조선연초령'을 공포해 민간담배공장들을 인수하고 이를 관리할 전매국을 만든 이후 7월 동인동 소재 민간담배공장이던 '동아연초주식회사'의 대구공장을 인수하여 전매국에서 담배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 1923년 지금의 태평로1가인 금정(錦町)으로 전매국 청사, 공장, 창고를 새로 지어 이전해 운영되다가 광복 후인 1949년, 전매청이 경상북도 대구시 수창동에 대구 연초제조창을 이전해 1999년 폐쇄되기 까지 운영했다.특히 6.25 전쟁 당시 서울과 전주 등의 다른 지역의 연초제조창이 전란에 파괴되었어도, 대구 연초제조창은 건재해 격렬한 전투에서 삶과 죽음을 넘나들던 국군 장병들의 지친 마음을 이 곳에서 생산한 화랑 담배로 달래주기도 했다. 또 전시 유일한 세입원으로 엄청난 전비(戰費)를 감당하는 역사적 역할을 해내기도 했다.
전쟁 이후 60년대 부터 80년대 까지 공장을 여러차례 증축하여 지하 1층, 지상 5층 규모의 본관과 별관, 직원 사택 등의 건물을 갖췄고 대구·경북권 담배 생산기지의 역할을 해왔으며 한때는 최대 1,000여명의 직원들이 이곳에서 근무하기도 해 대구의 지역 경제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한국담배인삼공사가 1994년 노후 연초제조창 폐쇄 계획에 이 곳을 포함 4곳이 선정되었고, 이후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계획과 공사의 구조조정 및 시설현대화 사업의 일환으로 대구 연초제조창을 1999년 7월 8일자로 폐쇄하면서 연초제조창 운영이 중단됐다.
대구 연초제조창이 생산한 대표적인 담배로는 40년대의 장수연과 백구, 50년대 건설·화랑·백합, 60년대 아리랑과 파고다·새마을, 70년대 청자·은하수·거북선등이 꼽힌다. 대구 연초제조창은 80년대 한산도와 태양, 환희에 이어 폐쇄 직전까지 솔과 88라이트, 디스를 생산해 왔다.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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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초제조창 역사 속으로 - 대구 MBC 뉴스 |
- 연초제조창이 폐쇄된 이후 한동안 방치되어 도심 속 흉물이 되기도 했으나, 아파트 건설 특혜 시비 등 우여곡절 끝에 2017년 본관 자리에 대구역센트럴자이와 제1수창공원이 들어섰고 별관과 사택 자리에는 복합문화예술공간인 대구예술발전소와 수창청춘맨숀 및 제2수창공원 등이 각각 2013년과 2017년에 들어섰다.
- 해방 이후 대구 연초제조창이 제조한 담배수량은 모두 210억여갑이며 이는 서울과 부산을 1,985차례 왕복하는 길이로, 시가로 환산하면 23조원에 이른다.
[1]
14,520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