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달성토성 복원과 달성고분군에서 출토된 금동관
1. 개요
1971년 대구시의 유물 조사 시행 결과 비산동 고분군 제37호분에서 발견된 5세기 중엽 신라시대 환두대도. 현재 국립대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2. 내용
함께 발견된 다른 환두대도들과 함께 전시된 모습.
1971년 출토된 대구 지역의 환두대도로, 비산동 고분군 제37-2호분에서 발견되었다. 유물의 제작 연대는 5세기 중엽(서기 400년대)이다.
비산동 37호분에서는 대구 비산동 출토 금동관 2점을 시작으로, 유리목걸이(琉璃頸飾)·금제굵은고리드리개(金製太環垂飾)·은제허리띠(銀製銙帶) 등의 장신구, 세잎고리자루큰칼(三葉環頭大刀)·세고리자루칼(三環頭刀)·쇠도끼(鐵斧)·쇠낫 등의 이기류, 재갈·말띠드리개·말띠꾸미개(雲珠) 등의 마구류와 각종 토기류 등이 출토되었고, 제2돌덧널에서는 백화수피관모(白樺樹皮冠冒)·금동제조익형관식(金銅製鳥翼形冠飾)·금제가는고리귀고리(金製細環耳飾)·은제허리띠(銀製銙帶)·금동제신발(金銅製飾履) 등의 장신구, 세잎고리자루큰칼(三葉環頭大刀)·세고리자루칼(三環頭刀)·쇠도끼·쇠낫 등의 이기류, 말안장(鞍橋)·재갈·말띠드리개·발걸이 등의 각종 마구류와 각종 토기류 등이 출토되었다.
이렇게 비산동 37호분에서는 쌍환두대도를 포함하여 5세기 중엽 신라시대 유물 약 8천여 점이 쏟아져 나왔다. 큰 환두대도 암수 두 자루가 서로 붙은 모습인데, 각 머리 부분에는 신라 특유의 삼엽문을 넣었다. 부모 환두대도의 옆에는 작은 새끼 칼집을 두 개씩 만들고 그 안에 작은 단도을 하나씩 넣었기 때문에, 이 칼 한 세트에는 도검이 여섯 자루가 장비된 것이다. 원래는 황금으로 칼집 전체를 장식했으나 오랜 세월의 여파로 인해 색을 잃고 떨어져나간 부분이 많다.
5세기 대구 지역의 도검 양식 및 신라의 금속공예술을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