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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스 헨리크 아벨

닐스 헨리크 아벨
Niels Henrik Abel
파일:lithograph-drawing-Niels-Henrik-Abel-Johan-Gorbitz-1826.webp
출생 1802년 8월 5일
덴마크-노르웨이 왕국 로갈란주 네드스트란
사망 1829년 4월 6일 (향년 26세)
스웨덴-노르웨이 연합왕국 에우스트아그데르주 프롤란
국적
[[노르웨이|]][[틀:국기|]][[틀:국기|]]
직업 수학자
학력 오슬로 대학교 (1822년 학사)
종교 개신교[1]
서명 파일:Niels_Henrik_Abel_signature.png

1. 개요2. 생애3. 5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이 없음을 증명 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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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수학자.

2. 생애

천재적인 수학자였으나 인정받지 못한 채 20대 한창 나이로 죽은 비극적인 인물로, 아벨이 죽은 지 3년 뒤 젊은 나이에 결투로 세상을 뜬 동시대 천재 수학자 갈루아와 비교되기도 한다. 아벨의 시대에 가장 오래된 난제 중 하나는 1차부터 4차 방정식처럼 5차 방정식에도 계수를 이용해 근의 공식을 만들 수 있는지였다. 아벨 역시 처음엔 대수적으로 풀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증명을 시도했으나 후에 생각을 바꾸고 풀 수 없음을 증명했다.[2]

하지만 당시로선 너무 난해하고 추상적이던 아벨의 증명을 누구도 인정하지 않아 자비로 논문을 출판해야 했으며 그나마도 묻혔다. 이 증명은 뒷날 프랑스의 수학자 갈루아에게 영향을 미쳐서, 군(대수학)을 이용한 5차 이상 고차 방정식의 비가해성(insolvability, 풀 수 없음)으로 확장된다.

19세에 아버지를 잃고 가난에 허덕이던 그를 그나마 인정하고 알리려던 사람이 독일 수학자 아우구스트 레오폴트 크렐레(August Leopold Crelle, 1780–1855)[3]였는데 그의 노력으로 아벨에게 베를린 대학 수학 교수직을 얻게 해주었다. 그러나 아벨은 결핵을 앓고 있던 상태라 결국 소꿉친구이자 약혼자였던 크리스티네 켐프(Christine Kemp)의 품에서 26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고 만다. 그리고 아벨이 죽고 난 바로 이틀 뒤에 교수 임명서가 도착했다. 반응이 없다는 대학 측 답변에 이상하게 여긴 크렐레는 편지를 보냈는데 "닐스는 이미 죽었답니다."라고 아벨의 지인이 쓴 답장을 받고서야 뒤늦게 죽은 걸 알게 되었다. 죽은 다음에 장례 문제 때문에 제대로 그의 교수임명서를 확인하지 못했다. 나중에 크렐레는 그의 무덤에 와서 이 천재를 너무나도 빨리 데려갔다면서 슬퍼했다.

다만 비슷하게 5차 방정식을 연구하고 요절한 갈루아와 혼동되는 경향이 있는데,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아벨은 대학생 시절 이미 노르웨이에서 가장 유명한 수학자들 중 하나였으며, 비록 정식 교수직을 받지 못해 생활이 쪼들렸으나 다른 교수들이 도움을 주고 간간이 연구비 지원도 받아 유럽을 여행하며 연구를 계속했다. 병으로 요절했고 사후 그의 연구가 재평가되긴 했어도, 아예 빛을 못 보고 쓸쓸히 죽어간 건 아니다. 이에 반해 갈루아는 비록 당시 노르웨이보다 훨씬 수학 및 과학이 발달한 프랑스 출신이었지만 당대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던 에콜 폴리테크닉 입학시험에 떨어지고, 그 당시에는 에콜 폴리테크닉보다 못했던 에콜 노말에 입학했으며, 에콜 노말의 수학 교수들 정도에게만 수학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당대의 저명한 수학자들과 컨택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자신의 성격적인 결함, 혁명에 동조하던 사상, 매우 나쁜 운, 계속되었던 결투 때문에 아예 자신의 업적을 제대로 출판하지도 못하고 결투하다가 총 맞아 죽었다. 즉 둘 다 불운한 천재였지만, 아벨은 적어도 노르웨이 수학계에서는 원래부터 이름을 날린 인물이었던 반면, 갈루아는 생전에는 빛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이 사람의 이름을 붙인 이론이 상당히 많다. 대표적으로 군론에서 어떤 연산 *에 대해 군에 속하는 임의의 두 원소 a, b에 대해 a*b=b*a처럼 교환 법칙이 성립하는 군(group)을 아벨 군( abelian group)이라 한다.[4] 그 외에도 위상수학, 실해석학 등에도 이름이 붙어 있는 이론이 있고 적분에도 아벨 적분이라는 게 있다.

3. 5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이 없음을 증명

아벨이 역사적으로 최초로 증명한 것으로 인정받는다. 아벨의 증명은 자기 대학교 수학과 교수들이 보고 맞는 것 같다고 검토하고 북유럽 최고의 수학자인 덴마크의 Degen 교수에게도 보냈다. 다만 Degen 교수의 반응은 " 틀린 거 못 찾았는데 250년의 난제가 이리 쉽게 해결이 될 거 같진 않은데... 아벨이라는 학생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똑똑한 거 같으니 5차 방정식 말고 타원함수나 초월수 같은 중요한 거 연구하면 좋을 듯?" 정도였다고 한다.

에바리스트 갈루아와 마찬가지로 가우스에게 논문을 보냈지만 가우스가 읽어보지도 않고 버렸고, 10여 년이 지나고 가우스는 아벨과 갈루아의 이론을 일찍 알아보지 못해 후회스럽다는 심경을 밝혔다고 한다.

그리고 아벨의 증명이 최초인 것과 별개로 현재에는 5차 이상의 방정식의 근의 공식이 없는 걸 증명할 때는 갈루아 이론을 사용한다. 현대의 , 개념과 잘 이어지고, 근의 공식이 없다는 걸 넘어 어떠한 특수한 형태의 5차 방정식이 근의 공식이 존재하지 않음이 증명되었다.

다만, 5차 방정식의 근의 공식이 없다는 것은 일반적인 5차 방정식 [math(a_5 x^5 + a_4 x^4 + a_3 x^3 + a_2 x^2 + a_1 x + a_0 = 0)]에 적용되는 일반화된 대수적 풀이가 없다는 의미일 뿐, 5차 이상의 방정식을 모두 풀 수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특정 조건 하에서는 5차 방정식의 근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주 간단한 예로 [math(x^5 - 1 = 0)]은 고등학교 과정에서 모든 해 5개를 정확히 구할 수 있고, 갈루아 이론 탄생 이전의 프랑스 수학자 방데르몽드(A.-Th. Vandermonde, 1735–1796)는 [math(x^5 + x^4 - 4x^3 - 3x^2 + 3x + 1 = 0)]의 해인 [math(\displaystyle 2\cos\frac{2k\pi}{11} \, (k = 1, 2, \cdots , 5))]를 순환군의 특성을 이용해 사칙연산과 거듭제곱근만으로 구하는 데 성공했다. 그 외에도 방정식/풀이 문서에서 볼 수 있듯, 중근이 존재하거나 드 무아브르(de Moivre) 5차 방정식과 같은 사례에서, 특수한 5차 이상의 방정식이 가해군이 될 때 대수적 해법이 존재한다. 물론 대다수(중근이 없고 실근 3개, 허근 2개인 경우 등)는 가해군이 아니기 때문에 대수적 해법이 없다.

4. 관련 문서



[1] 아버지가 목사로 알려져있다. [2] 여기서 '대수적으로 방정식을 푼다'는 것은 특수한 함수를 도입하지 않고 거듭제곱근과 사칙연산만을 유한 번 사용하여 방정식을 푼다는 의미이다. [3] 수학자보단 공학자로 더 유명해서 건설 및 여러 일에서 진가를 발휘하여 건설부 차관 및 문교부 장관을 역임했다. [4] 아벨군에서만 a를 반드시 소문자로 쓰는 불문율이 있다. 다만 이러한 경칭은 군에만 붙는다는게 요상한 점인데, 일례로 곱셈 교환법칙이 성립하는 가환환(Commutative Ring) 같은 경우는 아벨환이라고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