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6 04:46:58

뉴어크 만 열차 탈선 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사고 당시3. 사고 원인4. 사고 이후5. 유사 사고


파일:뉴어크 만 열차 탈선.jpg


1. 개요

1958 Newark Bay Rail Accident

1958년 9월 15일 미국 뉴저지 뉴어크 만에서 일어난 열차 탈선 사고.

2. 사고 당시

당시 CNJ(Central Railroad of New Jersey)소속의 아침 #3314 통근열차가 출발했다. 열차는 기관차 2대(#1531, #1526. 기종은 EMD GP7 NO.1532)에 승객칸 5대가 연결된 형태였다. 운전자는 63세의 미스터 윌번(Mister Wilburn) 옆에 보조로 42세의 미스터 앤드류(Mister Andrew)가 동승했다.

3.2km 길이의 뉴어크 만 승개교[1]를 지나는 구간이 있었는데, 배가 지나가서 다리를 위로 올리면 열차가 가지 못하기에, 양방향으로 여러차례에 걸쳐 신호등으로 경고를 했다. 1.2km 전, 400m 전, 그리고 150m 전 구간에 경고등이 있었다. 경고등을 보면 운전자는 속도를 낮춰야 했다. 또한 다리가 올라가거나 내려갈 땐 자동 탈선 장치가 작동해, 다리가 다 내려가기 전에 오는 열차를 자동으로 탈선시킬수 있었다. 다리가 완전히 내려와 고정되면 자동 탈선 장치는 꺼졌다. 설령 앞서 경고등을 본 운전자가 속도를 낮췄어도 완전히 멈추는데 실패했다면 해당 탈선 장치가 작동되어 열차를 안전하게 탈선시켜 멈출 수 있었다.

사고 당일 오전 9시 45분, 15분 뒤 준설선 한대가 지나갈 예정이라 안내를 했고, 승개교 측에서도 다리 올릴 준비를 했다. 자연스럽게 인근 경고등에도 불이 들어왔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3314 열차는 신호를 보고도 속도를 낮추지 않고 평소 속도 그대로 달려왔다. 오전 10시, 승개교가 완전히 올라가고 배가 지나던 도중 #3314열차가 달려왔다. 열차는 기존 신호를 전부 무시하고 다가오자, 원래 낮은 속도를 기반으로 만들었던 자동 탈선 장치는 소용 없었다. 열차는 그애로 다리 밑으로 추락했다. 다리를 지나던 준설선은 간신히 열차를 피했다. 기관차량 2대와 승객칸 2대가 그대로 추락했고, 남은 승객칸 3대는 아슬아슬하게 다리 위에 남았다. 3번째 칸은 다리 위에 걸쳐졌다.

사고를 목격한 보트에서 즉각 소방서에 신고했다. 다리에 위태롭게 걸쳐졌던 3번째 차량의 승객들은 황급히 움직여 차량에서 벗어났다. 2시간 뒤, 아슬아슬하게 걸쳐졌던 3번째 차량마저 추락했으나 다행히 모든 승객이 대피했기에 피해는 없었다.

사고로 48명이 사망했다. 46명은 승객, 2명은 운전자와 승무원 이었다. 사망자 중에는 뉴욕 양키즈 출신 야구선수 스너피 스턴웨이즈도 있었다. # 유명 수필가 커트 보니것의 매부 제임스 아담스(James Adams)도 사고로 숨졌다.

그 외에 46명이 사고로 부상을 입었다.

3. 사고 원인


처음엔 운전자가 평소 심장질환을 앓고 있었기에 이 때문에 사고가 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었다. 하지만 부검 결과 사인은 익사로 드러났고, 사고 당시 심장에 이상은 없었다.

또한 당시 상당수의 열차는 데드맨 스위치가 있어, 혹여나 운전자에게 이상이 생길경우 다른 승무원이 작동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사고 차량에는 데드맨 스위치가 설치되지 않았다. 운전석에 운전자와 승무원이 같이 타다보니 설치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다면 운전자, 그리고 동석한 승무원 모두가 신호를 무시하거나 못보고 사고를 냈다는 뜻인데, 이 둘이 고의로 했다기엔 그럴만한 정황이 없었고, 둘중 한명이 잘못 보더라도 다른 사람이 막았을 수가 있었기에 아직까지도 사고 원인은 미스터리로 남았다. 그나마 남은 가설은 둘이 집중을 못하다가 사고를 냈다는 설이다.

4. 사고 이후

사고 차량은 이후 인양되고 수리되어 다시 사용되었다.

사고 2일 뒤 커트 보니것의 누나(= 사고로 사망한 매부의 아내)도 암으로 사망하면서 아이들이 고아가 되자 커트 보니것은 아이 4명을 입양해 키웠다. 이후 가장 어린 아이는 친척이 데려가 키웠으나 나머지 3명은 계속해서 커트가 데리고 키웠다. 커트 보니것은 사고에서 모티브를 따온 소설 슬랩스틱을 썼다.

사고가 난 승개교는 1978년 8월 6일까지 열차가 다녔으나 이후 경로를 바꾸면서 열차가 지날 일이 없게됐다. 다리는 1987년에 철거를 시작해 2012년이 되어서야 기둥 뿌리까지 완전히 철거됐다.

5. 유사 사고

서머 스트리트 다리 참사(1916)
[1] 배가 지나갈 수 있도록 다리가 기둥을 타고 위 아래로 올라가는 교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