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 영묘
쿠파 대사원
나자프 (이라크) |
1. 개요
아랍어نَجَف영어 Najaf
이라크에 위치한, 바그다드에서 남쪽으로 170km 떨어진 도시. 유프라테스 강변에 위치하며, 중세 도시인 쿠파 ( الكوفة )를 흡수한 현대 도시이다. 인구는 약 60만명이고, 동쪽의 쿠파와 연담 도시화가 되어있다. 다만 나자프도 그냥 세워진 것은 아닌게, 시아파의 이맘이자 수니파의 4대 칼리파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의 영묘가 먼저 (비밀리에) 조성된 후 그를 중심으로 점차 도시화가 된 것이다. 나자프의 이맘 알리 영묘와 쿠파 대사원 일대는 각각 알리의 무덤과 사망지이기에 사마라, 카르발라와 함께 이라크 시아파 무슬림의 성지 중 하나이다. 그래서 이란에서는 영사관을 설치할 정도로 중시하고 있고, 아슈라나 아르바인 시기에는 카르발라 다음으로 시아 순례객들이 몰리는 곳이다. 엣나자프 국제공항은 쿠파 남쪽 끝에 위치한다.
2. 역사
정통 칼리파 시대 (라시둔 왕조) 관련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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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8000> 정치·국가원수 | <colcolor=#212529,#e0e0e0> 칼리파 |
수도 | 메디나 · 나자프 | |
경제 | 디나르 · 디르함 | |
역대 칼리파 | 아부 바크르 · 우마르 · 우스만 ·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 · ( 하산 이븐 알리) | |
인물 | 알 카카 · 사드 이븐 아비 와카스 · 할리드 이븐 알 왈리드 · 아므르 이븐 알 아스 | |
종교 | 이슬람 | |
문화 | 초기 이슬람 도검 |
사실상 쿠파의 역사이다.
쿠파는 637년, 카디시야 전투 이후 사산 제국의 세략을 메소포타미아에서 축출한 아랍 장군인 사드 이븐 아비 와카스가 병영 도시로 세운 것에서 유래되었다. 이후, 4대 정통 칼리파인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의 시기에 이슬람 공동체 (울루마)의 수도가 되며 (656 ~ 661년) 시아파의 중심지로서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카와리지에 의해 암살당한 알리는 자신의 유해가 적들에게 훼손당할 것을 우려하여, 기존 쿠파 도시 밖에 비밀리에 매장할 것을 유언하였다. 그에 따라 알리의 시신은 쿠파에서 서남쪽으로 5km 가량 떨어진 곳에 조성되었다. 이는 한세기 가량 비밀에 부처졌다가, 우마이야 조가 멸망한 후 본래 쉬아 운동의 일환으로 세워진 압바스 조가 들어서자 알리의 고손자이자 6대 이맘인 자파르 앗 사디크에 의해 위치가 알려졌다. 이로써 일대는 성지가 되었고, 그를 기반으로 세워진 신도시가 바로 현재의 나자프이다. 다만 중세에는 쿠파의 위상에 가려졌다.
2차 피트나에서 쿠파 시민들은 이슬람의 사도 무함마드의 외손자이자 알리의 차남인 후세인 이븐 알리를 강력히 지지하였다. 하지만 680년에 우마이야 왕조 군에 후세인 이븐 알리가 참혹하게 살해되자 ( 카르발라 참극) 그를 추대하려 했던 쿠파 인들은
하지만 이후에도 도시는 그 지정학적 우수성 (히자즈와 이라크 이어줌)으로 번영하였고, 749년에는 성대한 환영과 함께 아바스 혁명군이 입성, 아부 압바스의 칼리파 즉위식이 거행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쿠파는 마디나트 알 살람 (바그다드) 건설 이전까지 아바스 왕조의 수도로 기능하였는데, (749 ~ 762년) 점차 아바스 조가 동맹이었던 쉬아 세력을 탄압하기 시작하며 쿠파 인들의 반감을 샀고, 따라서 자주 시위가 일어났다.
1807년, 사우디 군이 공격했으나 다행히 이전의 카르발라와 달리 함락되는 대참사가 벌어지지 않았다.
3. 관광
- 이맘 알리 모스크 - 알리 영묘. 쉬아 무슬림의 대표적인 성지이다. 786년에 건설이 시작되어 19세기까지 끊임없이 증축과 보수가 있었다.
- 대사원 옆의 7-8세기 옛 암사르 유적 - 과거 쿠파 총독이 머문 아마라 혹은 이다라 건물이 있었다.
[1]
사진에서 보이듯 엄청난 유리, 거울 장식이 돋보인다. 현지인들은 내부 조명이 켜지는 밤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고. 마법의 세계와 같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