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9-29 04:43:01

김혜심

파일:동백장 약장.png
국민훈장 동백장 수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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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018년 형제복지원 재조사를 거치면서 서훈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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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c224> 원불교 교무
김혜심
金慧心 | Kim Hyeshim
파일:중타원 김혜심.jpg
출생 <colbgcolor=#fff,#121212> 1946년 ([age(1946-01-01)]세)
전라북도 익산시
법호 중타원(中陀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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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c224><colcolor=#221f20> 속명 김정희(金貞姬)
출가 1970년
학력 이리여자고등학교 (졸업)
중앙대학교 약학대학 (약학 / 학사)
중앙대학교 대학원 (약학 / 석사수료)
중앙대학교 대학원 (약학 / 박사수료)
원광대학교 대학원 (사회복지학 / 박사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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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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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캡션


약사 출신 원불교 원로 교무. 소록도, 아프리카 등에서 봉사활동을 이어가며 선한 영향력을 보여줬다. 별명은 '꼬꼬 킴'.[1]

2. 생애

전라북도 익산시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 약사 출신 교무다.

중앙대 재학 시절, 서울교당에서 하숙을 했다. 부모님이 독실한 교도였고, 6년 동안 하숙을 하며 교무님과 한 방에서 살았다고 한다.

중앙대 대학원 2학년 재학 시절 어느 날 밤 11시경, 친구에게 받은 전화로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주유차가 들어와서 주유하다 큰 불이 났는데, 뉴스에 나온 집이 김혜심 교무의 집이라는 소식이었다. 부모님이 운영하던 주유소에 화재가 발생한 것. 워낙 큰 화재라 군산비행장에서 헬리콥터를 보내 상공에서 약품을 뿌려 진화작업을 했다. 화재로 인해 친오빠가 화상을 입었는데, 1주일도 안돼 결국 사망해 충격이 컸다고 한다.

친오빠의 죽음을 통해 삶을 다시 보게 됐고, 원기 55년(1970년)에 결국 출가하게 된다. 중앙대 약대 박사과정을 하던 중에 출가를 했는데, 원광대학교 약학과가 생긴 지 얼마 안 된 시기라 약학과 강사를 겸임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신문에서 의료 인력이 부족하다는 소록도 관련 기사를 접하고, 원기 61년(1976년) 여름방학에 소록도에 의료봉사를 하러 간다. 1달만 있으려고 하던게 2달이 되고, 결국 그 해 겨울까지 봉사활동을 했다. 인력이 부족한 소록도에서는 계속 머물러 주기를 원했으나, 교단에서 발령을 받아야 하는 성직자였기 때문에 교단을 설득했고 허가를 얻었다.

원기 62년(1977년), 소록도 개척교무로 발령을 받고, 당시 교화부장(現 좌산 이광정 상사)에게 받은 축소판 전서와 의료봉사와 교화를 이어갔고, 소록도에서 8년을 지냈다. 그 후, 다시 원광대 약학과 교수직을 맡아 학교로 복귀했고, 봉사단을 조직해 방학마다 소록도를 찾아 의료봉사를 했다.

원광대학교 약학대 교수에 이어 학장까지 지내며 약사를 양성하는데 힘쓰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아프리카로 떠나게 된다. 원기 81년(1996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아프리카의 첫 교당을 만들며 교화를 이어갔다.

그 후 남아프리카공화국 옆에 있는 국가인 에스와티니에 조그만 도시인 '카풍아'에 가서 교육과 의료봉사를 이어갔다.

2001년 4월에는 보건소를 설립, 응급환자 치료를 시작했다.

2005년 12월에는 한국국제협력단의 지원으로 에이즈 환자 쉼터를 만들었다. 에이즈 환자들의 면역력 증강을 위한 투약과 에이즈 검사, 청소년 에이즈 예방을 위한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식수공사, 식량구호사업, 송아지 목축사업, 환경보호운동, 아프리카 개발을 위한 국제포럼, 작은 음악회 등 개척 교화를 이어갔다. 현지인들이 붙여준 별명은 원불교에서 온 '꼬꼬 김'.

2010년, 대한민국 해외봉사상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2016년 7월 17일, 소록도병원 100주년 기념식을 통해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1] 아프리카 현지인들이 붙여준 별명으로, 현지어로 '꼬꼬'가 ' 할머니'라는 뜻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