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 김일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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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 이름 | 김일해(金一海) |
출생 | 1906년 12월 20일 |
사망 | 2004년 7월 11일 |
경력 | 1992년 3회 춘사국제영화제 춘사영화예술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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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영화배우이자 영화감독. 본명은 김정석(金正錫).2. 생애
1906년 경기도 수원 남양에서 염전을 운영하던 경주 김씨 가문의 5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 적 부친이 가산을 정리하면서 경성으로 상경했고, 18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중학교를 졸업하고 데이코쿠 키네마와 신코 키네마에서 연기 경력을 쌓았다. 1935년 방한준 감독의 영화 <살수차>를 통해 데뷔하여 특이한 분장과 화장으로 이목을 끌어 '사색의 배우'라 평가받았고, 같은 해 방한준 감독의 <춘풍>과 나운규 감독의 유작 <오몽녀> 등지에서도 열연했다. 일제 말기에는 <집 없는 천사(1941)>, <병정님(1944)> 등지의 친일 군국주의 선전영화에 나온 행적도 있었다.1945년 8.15 광복 후에도 <목동과 금시계(1949)>, <출격명령(1954)> 등지에서 무수히 나오며 조연과 단역을 넘나들었고, 1958년 자신의 영화 인생 30년을 집대성하고자 <인걸 홍길동>을 기획/감독한 바 있다. 1966년 <순애> 이후 공백기를 거쳐 78세 되던 1984년에 이두용 감독의 <장남>에서 아버지 역으로 나와 한국 영화 역사상 최고령 주연이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말년에는 노령 등으로 인해 아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조용히 살다가 2004년 7월 11일에 노환으로 숨을 거뒀다. 그러나 2008년 들어 전술한 군국주의 영화 출연 이력으로 인해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연극/영화부문에 올랐다.
3. 작품 목록
- 살수차(포도의 이단자) (1935)
- 춘몽 (1935)
- 오몽녀 (1937)
- 순정해협 (1937)
- 도생록 (1938)
- 무정 (1939) - 김현수 역
- 국기 아래서 나는 죽으리 (1939)
- 새출발 (1939)
- 수업료 (1940) - 우편배달부 역
- 수선화 (1940)
- 바다의 빛 (1940)
- 집없는 천사 (1941) - 방성빈 역
- 지원병 (1941) - 박창기(지주) 역
- 반도의 봄 (1941) - 이영일 역
- 흙에 열매를 맺는다 (1942) - 기무라 세이콘 역
- 우르러라 창공(원제: 仰げ大空) (1943) - 고물상 역
- 조선해협 (1943) - 세이키의 아버지 역
- 거경전 (1944) - 요도지마(淀島) 전무 역
- 병장님 (1944) - 젠키의 형 역
- 우리들의 전쟁 (1945)
- 수우 (1948)
- 출격명령 (1954)
- 고향의 노래 (1954)
- 구원의 애정 (1955) - 사장 역
- 단종애사 (1956)
- 인걸 홍길동 (1958) - 감독 / 편집
- 산넘어 바다건너 (1958) - 한 전무 역
- 청춘극장 (1959) - 목사 역
-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 (1959) - 우덕순 역
- 나는 고발한다 (1959) - 대학교수 역
- 비극은 없다 (1959)
- 애상 (1959) - 곤도(일본인 형사) 역
- 타향살이 (1959) - 의사 역
- 무지개 (1960)
- 아아 백범 김구선생 (1960) - 안창호 역
- 이복형제 (1961) - 사회자 역
- 어딘지 가고 싶어 (1962) - 홍 의원 역
- 골목안 풍경 (1962) - 최 선배 역
- 애정삼백년 (1963)
- 순애 (1966) - 외무지도관 역
- 장남 (1985) - 아버지 역
4. 수상경력
- 제21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특별상 (1985, 장남)
- 제3회 춘사국제영화제 춘사영화예술인상 (1992)
5. 참고 자료
-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자료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항목
- 다큐멘터리 <스크린의 풍운아, 영화배우 김일해> - 한국영상자료원.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