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4 11:02:42

김도흠

<colbgcolor=#0047a0> 출생 1887년 9월 23일
함경북도 성진군 학성면 장현리
사망 1933년 4월 14일
함경북도 성진군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 독립운동가.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김도흠은 1887년 9월 23일 함경북도 성진군 학성면 장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성진에서 발발한 3.1 운동에 가담했으며, 1920년 6월 하순부터 간도 국민회에서 국내연락망 확보와 군자금 모집, 조선인의 독립사상 고취 등을 목적으로 성진으로 파견한 황상봉(黃尙鳳), 김학수(金學洙), 황두징(黃斗澄) 등과 관계를 맺고 활동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1920년 8월 함흥지방법원 성진지청으로부터 징역 2월을 받았으나 불복하고 경성복심법원에 공소하여 1920년 10월 11일 무죄로 석방되었다. #

이후 1927년 9월 11일 신간회 성진지회 창립대회에서 성진지회장으로 선출되어 지회 창립에 주력하였고, 이후 12월 24일 신간회 성진지회의 임시집행부 의장으로 선출되었고, 1929년 6월 신간회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출되는 등 1927년부터 1930년까지 신간회 성진지회의 지회장 겸 집행위원장, 신간회 중앙집행위원을 역임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김도흠은 1931년 5월 30일 이규종(李圭宗) 등과 함께 성진농민조합(城津農民組合)을 결성하고 위원장에 선출되어 농민조합운동을 주도하였다. 결성 이후 성진농민조합에서는 소작료 인하투쟁, 채권문서 탈취 및 소각투쟁, 스파이 징벌투쟁, 야학철폐 반대투쟁 등을 격렬하게 전개하였다. 이 같은 투쟁은 성진농민조합의 대중적 기반을 강화하는데 일정하게 기여했으나 그 반대로 간부진의 손실도 초래하였다.

김도흠은 성진농민조합 집행위원장에 선출되어 활동하는 한편으로 사립 장현학교 교장으로 교육사업에도 다년간 노력하였다. 그러나 1931년 10월에 성진농민조합사건 관계로 성진경찰서에 체포되어 이후 1년 동안이나 유치장에서 옥고를 치르고 1932년 9월 19일 청진지방법원 검사국으로부터 불기소 처분을 받고 석방되었다. 석방 이후 병으로 신음하다 1934년 4월 14일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김도흠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