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4-12 19:29:12

김나박이

김나박이
범수 효신


1. 개요2. 유래와 진화 과정3. 상세4. 해당 가수들의 반응5. 네 사람의 관계6. 여담7. 비판

1. 개요

대한민국의 남자 가수 네 사람, 이하 범수, , 효신, 를 뜻하는 단어.

본래 디시인사이드 가요 갤러리에서 자기들끼리, 당시 용어로 소위 본좌를 뽑는다면서 서로 가리다가 최종적으로 도출된 결과가 공식처럼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국내 대학 서열처럼, 노래 실력 티어로 최상위급을 정한 것. 이후 TV 프로그램에서 언급되거나,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와 유튜브에서 김나박이와 관련된 컨텐츠 게시물과 영상들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독자적인 의미를 확립하게 되었다.

2. 유래와 진화 과정

본래 한국의 4대 보컬을 뜻했다.
김연우, 김범수, 나얼, 박효신.

즉, '김나박'이 원조다. 김연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1999년에 데뷔했다는 공통점도 있고, 나이 대가 비슷하다.

때는 2000년대 초반, 나얼 데뷔 직후 화려한 앨범 기록으로부터 이 불씨가 시작된다.
  • 2001년 '벌써 일년'의 21주 연속 차트 1위
  • 2002년 '점점'의 8주 연속 1위
  • 2003년 '정말 사랑했을까'의 6주 연속 1위 등[1]

단 한 번의 방송 출연 없이 대히트를 거둔 나얼에 대한 대중들의 궁금증이 더해가던 찰나, 베일에 싸여있던 나얼의 라이브 실력이 2004년 첫 콘서트와 함께 공개되었다. 2005년 나얼의 리메이크 1집 앨범 'Back to the soul flight'이 발매되며(타이틀 곡: 귀로) 나얼이 적어도 R&B 분야에선 음원 뿐만 아니라 라이브마저 대한민국 본좌라는 게 알소동이나 디씨에서 정설이 되었다. 배순탁 작가가 '대한민국 리메이크 앨범 통틀어 올타임 넘버원'이라 했으며, 임진모 평론가가 '모든 가수들의 리메이크 앨범의 방향성을 잡아줬다는 앨범'이라고 극찬했던 바로 그 앨범 맞다.

나얼의 독주를 지켜보고 있기엔 심심했던 디씨인들은 vs 싸움과 비교질을 좋아하는 한국인 특성(?)을 잘 이용하여 2006년 어마어마한 폼을 보여주던 윤민수를 나얼에 대항하게 했다. 그 유명한 캐리건 시절. 그렇지만 성대결절로 윤민수는 금방 이 대결 구도에서 물러나게 된다.

짧았던 나 vs 윤 동안에도 당시 기준 대중들에게는 노출이 덜 된재야의 초고수였던 김연우 그리고 김범수, 박효신('보고 싶다'와 '눈의 꽃'의 메가히트가 그 예이다.) 이 꾸준한 라이브 실력과 좋은 앨범 작업물을 보여주었고, 급기야 2009년 디시인사이드 가요갤러리에서 이들을 묶은 '4대 본좌'라는 호칭이 생겼다. 이에 반감을 가졌던 사람들은 이승철은? 임재범은? 등 여러 전설급 보컬리스트 들을 언급하며 '본좌'라는 칭호에 거부감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순화?한 '4대 보컬'이라는 칭호로 불러대다가 그 것도 많은 디스를 받기 시작하자 김나박이라는 표현이 생겨났다. [2]

하지만 이러한 보컬리스트 전체를 대표하는 듯한 칭호에 사람들의 반감이 워낙 심했었고 김나박이란 단어도 이제 보컬리스트로써 전성기에 접어드는 나이였고 전설급이라고 보기엔 애매한 당시 최고의 기량을 가졌다고 판단되었던 보컬들인 나얼, 박효신, 김범수 위주로 언급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이대로 보면 40대로 접어들고 있었던 김연우는 이 언급에서 자연스레 빠지게 되었다. [3] 후에 비슷한 나이대 락발라드 기반으로 최고의 기량을 뽐내던 앰씨더맥스 이수가 팬들의 성화에 힘입어 들어가면서 김나박이가 되었고, '4대 보컬'이라는 표현은 사라지게 되고 현재의 '김나박이'라는 말만이 남게 된다.[4]

3. 상세

이들이 대한민국 최강의 보컬리스트라 불리는 이유는 비단 3옥타브대의 고음을 진성으로 올려대는 실력 뿐만 아니라, 매우 독특한 개성을 갖춘 음색에 있다. 일단 기본적으로 노래의 난이도 상승 요소의 1순위는 고음이다. 아무리 발성이나 타고난 음색이 좋다고 해도 2옥타브 라 이상 올라가지 못하면 노래를 잘 부른다는 평가를 듣기 힘들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게다가 네 사람의 대표곡들 모두가 고음이 나가는 구절에서는 특히 더 숨을 돌릴 틈이 없다. 그럼에도 그렇게 긴 클라이막스 부분을 훌륭하게 극복할 수 있는 엄청난 폐활량과 심폐지구력이 고음을 뽑아낼 때 목소리를 단단하게 받쳐주고 있는 것이다.

나얼이야 원래 고음 처리는 유명하고 탁월하지만 김범수, 박효신, 이수는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라이브가 안정되거나 곡 난이도가 극악인 곡을 연일 콘서트에서 깔끔하게 라이브로 뽑아낸다거나 하는 기행을 보여주고 있다.

이수를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R&B계 발라드를 주력으로 하는 가수들이지만, 셋의 가창 스타일은 분명 다르다. 가령 이들 각각의 독특한 음색이 대중들 사이 호불호를 유발하면서 김나박이의 서열을 섣불리 가를 수 없는 이유가 된다. 또한 현재는 각자만의 확고한 음악 스타일이 갈려있기 때문에 R&B 발라드 보컬들이라고 한 단어로 정의할 수도 없다. 각각 대략적으로 아래와 같이 요약된다.
  • 김범수는 중음과 파워풀한 고음을 무기로 하며, 이를 기반으로 장르를 깔끔하게 소화해낸다. 또한 칼 같은 박자감과 정확한 음정, 정석적인 발성으로 곡을 소화하기 때문에, 가장 '교과서적'으로 노래를 부른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중에서 그가 구사하는 발성은 대한민국 가수 중에서 가장 정석적이라고 평가를 받는다. 사실 파워, 성량, 안정감 등과 같은 김범수의 보컬적 장점의 대부분은 여기서 기반한다 할 수 있다. 다만 음색이 비교적 개성적이지 못하여 나박이에 비해 히트곡은 적다. 하지만 가장 잘생겼다.
  • 나얼은 국내에서 가장 흑인 소울을 잘 살린다는 평가를 받는 정통 R&B의 적자로, 애절한 감정 표현력과 초고음에서까지 힘을 발휘하는 리드미컬하면서도 정교한 기교가 강점이다. 또한 넷 중 가장 넓은 음역대를 소화해내며, 음색의 희소성으로는 국내에서는 박효신과 양대산맥을 이룬다. 엄청난 공명감을 자랑하는 두성은 단연코 국내 최정상급이다. 실제 라이브를 가서 들은 관객들은 동굴에서 콘서트하는 줄 알았다는 평을 남기기도 한다.
  • 박효신은 특유의 풍성하고 울림이 강한 흉성에서 나오는 호소력을 가졌다. 어떨 때는 맑은 가성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허스키한 진성과 부드러운 가성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야생화에서는 "흩어져 날아가" 라는 가사에서 3옥타브 도 까지의 고음을 뽑아내며 해외에서 엄청난 호평을 받고 있다.또한 나얼과 마찬가지로 독특한 보이스가 큰 강점이며, 뮤지컬 활동을 한 이후로는 단단하고 꽉 찬 소리를 내는 모습도 보여준다. 최고 수준의 기량에 도달했음에도 끊임없이 발전하고 변화하는 모습은 엄청난 연습과 노력의 증거다. 창법 변화를 거듭하는 성장만큼은 박효신이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다. 7집 앨범이 발매되자 바리톤이냐, 테너냐는 유례 없는 성종 논란이 있을 정도.
  • 이수는 드라마틱한 가창력과 소위 말하는 강철 성대를 기반으로 파워풀하고 굵직함이 중요시되는 고음역대의 록발라드를 매우 능숙하게 소화해낸다. 물론 이수가 정통 락을 안 한다는 것은 아니다. ' Returns'에서 정통 락을 보여준다. 이수가 가진 음색이 미성이라는 걸 생각하면 실로 놀라운 수준. 음원을 듣고서 라이브는 조금 힘들지 않을까 싶을 수도 있는데, 당장 유튜브에서 그의 콘서트 라이브 영상을 시청하면 이수가 왜 김나박 대열에 합류하게 됐는지 단번에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김범수의 'One Last Cry' 커버
나얼의 'One Last Cry' 커버
박효신의 'One Last Cry' 커버.
엠씨 더 맥스 그대가 분다

까닭에 음악 좀 듣는다는 사람끼리 모여서 넷의 실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되면 항상 누가 더 위냐는 식의 논쟁이 벌어지고는 한다. 위에 같은 노래를 커버한 영상이 있으니 각자 듣고 판단해보되 병림픽은 자제하자. 상술했듯 애초에 스타일이 전혀 다른 보컬들이니까.

이수는 과거 사건 때문에 방송에서 이 단어가 나올 때는 은근슬쩍 이수의 이름을 뺄 때가 상당히 많다. 이름이 직접적으로 거론되면 인터넷에서 불탈 가능성을 생각해서 다들 언급을 피하는 듯. 예로 놀면 뭐하니? 겨울 노래 구출 작전 당시 김범수가 나왔을 때는 유재석이 '김나박' 3대 보컬이라는 식으로 언급했으나, 그로부터 두 달 정도 후에 방송한 라디오 스타에서는 같은 방송국인데도 이수의 이름과 얼굴 사진까지 그대로 나오기도 했다.

4. 해당 가수들의 반응


현재 박효신 빼고 이에 대한 언급이 나왔다. 애초에 박효신은 신비주의를 고수하는 편이라서 TV에 얼굴을 비추거나 인터뷰를 하는 것을 보기가 힘들다.

한편 당사자인 김범수는 프로젝트 're.MAKE20' 인터뷰에서 김나박이라는 단어에 관심이 많다고 밝혔으며, 대중들이 자신을 리스트로 꼽아준 것에 대해 노래를 하는 입장에서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감사를 표했다. 다만 자신이 다른 가수들에 비해서 어떤 부분이 훌륭한지 잘 모르겠다며 겸손한 모습도 보였다. 또한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도 언급한 바가 있다.

나얼 원더케이 좌표 인터뷰에서 김나박이라는 표현을 알고 있고, 네 명 중에 어쨌든 자신이 껴있으니 기분은 좋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을 그렇게 정의 내리는 것에 감사하기도 하지만 부끄러운 느낌이 있다고 답했다.

이수 엠씨 더 맥스 9집 정규 앨범 'Circular' 음감회에서 부끄럽고 감사하다면서, 해외 포함 국내에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어떤 한 단어로 묶어 표현하기보단, 각자 선호하는 아티스트를 찾아서 듣는 것이 좋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해당 가수들도 김나박이라는 표현에 감사를 표하기는 하지만, 자신들을 그렇게 칭하는 것에 한편으론 부끄러워하는 모습. 특히 김범수는 유튜브 컨텐츠를 올리면서 자신을 빼고 임나박이라는 칭을 쓰는데, 여기서의 임은 임재범이다.

5. 네 사람의 관계

실제 넷, 특히 박효신과 김범수, 김범수와 나얼은 서로 꽤 친한 사이다.

박효신 4집의 '친구라는 건'에 김범수가 참여하여 역대급 곡을 뽑아내기도 하는 등 원만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5]

김범수와 나얼도 재즈 피아니스트 곽윤찬의 CCM 프로젝트 앨범 <I am melody 2>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종종 만나는 모양.[6]

박효신과 나얼의 경우 2000년도에 결식아동 자선 콘서트에서 공연을 같이 한 인연이 있다.

박효신과 이수의 경우 2000년대 중반부터 가끔씩 듀엣으로 불러본 적이 있는 사이다. 동갑내기로 과거에 서로 종종 교류했던 일이 있었다. 특히 이수의 아내인 가수 의 절친이 박효신이라 교류가 없을 수가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범수와 이수는 서로 음악적으로 만난 적은 없지만 김범수가 이수, 결혼식의 축가를 불러주는 등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사이다.

2021년 3월 5일 김범수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이수의 '어디에도'를 커버한 영상에 이수 본인과 그의 아내이자 유명한 가수인 린이 직접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7] 또한 이수 본인도 '앞으로 '어디에도'는 범수형 노래입니다. 반박시 음알못'이라고 직접 댓글을 달았다.

물론 당사자들 간에도 경쟁 의식이 없으리란 법은 없지만, 그렇다고 누가 더 잘났다에 목 매다는 살벌한 라이벌 관계는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라디오와 같은 매체에서 서로를 칭찬하는 한편, 정작 자신을 그 라인에 넣어주신 팬분들께는 굉장히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하다고 한다. 어차피 넷 다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단연 최강이므로 굳이 우열을 가릴 이유가 없기도 하고.

김범수는 나얼, 박효신, 이수와 모두 접점이 있는 마당발이며, 모두 친하다. 특히 본인 유튜브 채널에서 세 명의 곡을 모두 커버하기도 하는 등 김나박이 기믹에 꽤나 호응해주는 편.

6. 여담

  • 네 사람 모두 테너 성종이다.[8]
  • 네 사람 모두 비슷한 시기에 데뷔했다. 2000년에 데뷔한 이수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은 1999년에 데뷔했다. 나이는 나얼(1978년생)이 가장 많고, 김범수(1979년생)[9], 이수(1981년 4월생), 박효신(1981년생 9월생) 순이다.
  • 넷 중 둘씩이 만나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의 라이브를 보여준 적도 더러 있다. 아쉽게도 넷이 한 자리에 모여서 같은 노래를 한 적은 아직껏 없다.
  • 최근 나박이라는 배리에이션이 생기기도 했다.
  • 김나박이 중 한 명인 김범수는 가수 임창정의 팬이었다고 한다[유튜브] 그래서, 커버곡으로 임창정 곡을 하고 싶다고 하기도 한다.
  • 여성 보컬 쪽에서도 김나박이처럼 최정상급 가창력 4인을 묶은 포지션이 있긴 한데, 박정현, 소향, 거미, 이영현으로 이루어진 박소거이가 있다. 다만 김나박이에 비하면 인지도도 낮고 언급도 잘 되지 않는 편이다.

7. 비판

세상은 넓고 노래 잘하는 가수는 널려있다. 그리고 가창력을 판단하는 기준은 사람들마다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 어떠한 평가를 내리든 그것이 무조건 정답은 아니다. 그런데 특정 가수 몇명을 모아놓고 이들을 기준으로 노래 잘하는 가수와 못하는 가수를 가린다는 것이 과연 올바른 행동일까?
물론 이들 4명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뛰어난 실력을 가진 가수인 점은 누구나 인정하겠지만, 다른 가수들의 실력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결코 안되며, 그러한 기준이 되는 것 또한 말이 안된다.

김나박이라는 표현에는 문제가 굉장히 많다. 표현이 생겨날 당시 김나박이라는 용어는 디시인사이드 가요 갤러리에서 가장 선호되던 R&B 장르의 보컬만이 선정된,[12] 타 장르 가수를 철저히 배제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김나박이 이외의 걸출한 보컬들도 상당수 있음에도 표현이 굳어져 다른 가수들이 은연중에 이 4명보다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마저 존재한다. 당장 가장 큰 미디어 플랫폼인 유튜브의 댓글창만 보더라도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다.

공신력 있는 단체의 평가와 달리 이런 공고한 서열화는 하나의 신분제처럼 작용한다. 이러한 문제점이 보컬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이 단어는 대한민국 모든 대중들의 인식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는 2000년대 후반 소수의 가갤러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당연히 현재 대한민국 보컬의 실력에 대한 국민들의 보편 정서를 반영하지 못한다.

또한 2010년대 후반부터 쏟아지는 무수한 고음과 가창력을 지닌 발라더들이 등장하면서 이 표현 자체가 더 이상 의미가 있냐는 비판도 많아졌다. 다만, 고음을 단순히 잘 내지만 특출나지 않은 양산형 가수들과 가창력도 뛰어나고 각자의 특유한 발성적인 개성을 뚜렷하게 발전시킨 김나박이가 동급은 아니라는 점에서 반론의 여지가 있다. 김나박이가 고음만 잘 내는 가수들이 아니라 감정 표현에 따른 목소리 톤의 완급 조절까지 완벽하므로 단순히 기계적으로 가창력을 키운 아이돌 가수들과 비교할 수 없다.


[1] 나얼은 3년간 3개의 앨범만으로 무려 200만 장에 가까운 판매고를 올린다. 김, 박, 이 세 가수가 20년 커리어 전체 앨범 판매치가 130만 장도 안 된다는 걸 생각하면... [2] 김연우도 김범수와 같은 김씨이기에 따로 언급되지 않고 김나박으로 불렀다. [3] 정확히 김나박은 2009~2010 기준으로 30대 전후 가장 뛰어난 기량을 뽐내던 보컬리스트들을 뜻하는 단어였다. [4] 김나박이에도 만족하지 못한 디시인들은 하현우를 넣어 김나박이하라고 한다. 다만 김나박이하라는 표현이 자주 쓰이지는 않는다. 하현우의 음역대나 음색자체는 올라운더형이라고 보는 게 맞으나, R&B보다는 락발라드 분야라고 보는 편이 대다수. [5] 이 곡은 2004년 라디오에서 라이브와 2009년 박효신 콘서트 때 김범수가 게스트로 2번 참여하여 총 3번의 라이브를 선보였으며, 특히 2009년 라이브 땐 곡의 마지막쯤 김범수와 박효신의 미친 듯한 애드립, 기교 대결이 일품이다. [6] 나얼은 본인 입으로 김범수와는 친한 사이라고 직접 밝혔으며, 이름을 언급할 때도 '범수'라고 편하게 부른다. [7] 김범수가 사용한 MR은 이수와 제이윤만이 갖고 있던 원곡 MR로, 이수 혹은 제이윤이 김범수에게 직접 준 것으로 추측된다. [8] 이전 버전에서 박효신은 본래 바리톤이었다가 후천적인 테너가 되었다고 서술되어 있었지만 사실은 이런 의견과 소몰이 시절도 인위적으로 굵게 냈을 뿐 원래 테너였다는 의견 이렇게 두 가지 견해가 있다. [9] 빠른 79이긴 한데 2012년에 못친소에 출연했을 때 하하 노홍철이 범수형이라 안하고 범수라고 지칭하는 것을 보면 1978년생과도 친하고 1979년생과도 친한 듯하다. 결정적으로 1978년생인 조정치와도 서로 편하게 말 놓는 사이다. [10] 김재환은 2019시즌이 끝나고 메이저리그 포스팅 신청을 했지만 실패를 했고, 나성범은 에이전트로 스캇 보라스와 계약을 하며 메이저리그 도전을 공공연하게 밝혔고, 박병호는 메이저리그에 갔다가 실패를 경험하고 돌아왔다. 그래서 각각 못 간 놈, 가고 싶은데 결국 2021년까지 못 간 놈, 갔다 온 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유튜브] 범수의 세계 참고 [12] 물론 나중엔 록 장르의 이수가 포함되긴 했지만 어쨌든 시작은 R&B 가수를 서열화하는 데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