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15 14:48:35

1996년 일본 전국고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결승전

기적의 백홈에서 넘어옴

파일:oisawJh.jpg
[1]

1. 소개2. 대망의 결승전3. 경기 진행
3.1. 1회초, 마츠야마 상고의 확실한 기선제압3.2. 2회 ~ 8회, 차근차근 따라가는 구마모토 공고3.3. 9회말,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다!3.4. 10회말, 교체선수가 만든 기적의 백홈3.5. 11회초, 마츠야마 상고가 날린 KO 펀치3.6. 11회말, 헤이세이의 기념비적인 명승부
4. 여담5. 관련 문서

1. 소개

奇跡のバックホーム
헤이세이의 명승부(平成の名勝負)
1996년 여름 고시엔은 4강팀 전원이 일반 공립고교였다는 사실로도 유명하지만[2][3] 이 대회를 헤이세이 시대의 기념비로 만든 것은 사가키타의 기적과 함께 고시엔 100년 역사상 최고의 명장면이라 불리는, 마츠야마 상고 vs 구마모토 공고의 결승전 10회말에 나온 "기적의 백홈"이었다.

2. 대망의 결승전

결승에서 격돌한 마츠야마 상고와 구마모토 공고는 고교야구계에서도 손꼽히는 명문 공립고교들이었다. 에히메의 마츠야마 상고는 다이쇼 시대와 쇼와 시대 모두 우승을 거둔 바 있으며, 1996년 대회에서는 1986년 이후 10년만에 학교 역사상 8번째로 결승전에 진출한 상태였다. 상대인 구마모토 공고는 1937년 이후 59년만이자 학교 역사상 3번째의 결승 진출이었다.

마츠야마 상고는 팀타율 0.313에 1회전부터 3회전까지 두자릿수 안타를 뽑아낼 만큼 막강한 화력을 자랑하고 있었고, 닛타 히로타카[4]-와타나베 신이치로[5]의 2인 계투 체제로 결승까지 순항했다. 구마모토 공고는 전년도(1995년) 지역예선 1회전에서 패배하며 "'학교 역사상 최악의 팀"'이라고 혹평받기도 했으나, 1996년에는 지역예선 전 경기를 콜드게임으로 제압하며 고시엔에 진출했고, 고시엔에서도 평균득점 10.4라는 압도적인 공격력을 자랑했다. 그 둘이 만난 결승전은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3. 경기 진행

3.1. 1회초, 마츠야마 상고의 확실한 기선제압

1회초부터 마츠야마 상고의 타선은 불을 뿜었다. 1사에서 2번 호시카(星加)의 좌전 안타로 포문을 열고 3번 1루수 캡틴 이마이(今井)의 우전 안타로 연속 안타를 완성, 1사 1-2루를 만들었다. 4번은 우익수로 나온 등번호 1번의 와타나베. 그의 플라이 타구는 우측으로 떨어졌다. 이걸 구마모토 공고의 우익수가 뒤로 흘리면서 2루 주자 호시카는 홈인. 마츠야마 상고가 선취점을 가져갔다.

예상치 못한 에러와 결승전의 압박에 흔들린 구마모토 공고의 투수 소노무라 준이치[6]는 볼넷을 3개나 내주며 밀어내기로 두 점을 더 헌납, 마츠야마는 1회초부터 3점을 선취하고 시작하게 되었다.

3.2. 2회 ~ 8회, 차근차근 따라가는 구마모토 공고

구마모토 공고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2회말, 좌전 안타와 에러로 형성된 1사 1-2루 찬스에서 7번 포수 사카이(境)가 중전 안타를 때려냈다. 마츠야마 상고의 중견수가 잡아 홈으로 송구했지만 2루 주자가 먼저 들어오면서 1점을 만회했다. 그러나 이후 타선이 닛타에게 얼어붙고 소노무라도 마츠야마 상고의 타선을 틀어막으면서 경기는 투수전 형태의 접전으로 흘렀다.

잔잔한 고시엔에 파도가 치기 시작한 것은 8회말부터였다. 구마모토 공고에게 다시 찬스가 찾아온 것. 8회말, 선두 타자로 들어선 8번 타자 3루수 호시코가 좌전 안타를 때려냈고 보내기 번트와 패스트볼, 볼넷으로 만든 1사 1-3루 상황에서 2번타자 사카타(坂田)가 중견수 쪽으로 희생플라이를 기록, 호시코가 홈을 밟으며 1점을 따내 3:2. 이제 한 점 차가 되었다. 그러나 다음 타자의 강습 타구가 1루수 이마이의 다이빙 캐치에 걸리면서 동점까지 가지는 못하고 이닝이 종료되었다.

9회초, 마츠야마 상고의 선두 타자 9번 후카호리(深堀)의 타구가 가운데로 향했다. 구마모토 공고의 중견수 니시모토가 다이빙 캐치를 시도했지만 실패하며 후카호리는 2루까지 들어갔다. 이후 마츠야마 상고는 후카호리를 3루에 보냈고, 2사에서 3번 이마이가 나섰으나 1루 땅볼로 물러나며 쓰리아웃, 찬스가 무산되었고 마츠야마 상고는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했다.

3.3. 9회말,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다!

9회말, 여전히 마츠야마 상고의 마운드는 2학년 닛타가 지키고 있었다. 구마모토 공고는 4번 타순부터 시작하는 공격. 그러나 닛타는 굳건했다. 4번 니시모토(西本)와 대타로 나온 5번 마츠무라(松村)[7]까지 연속 삼진으로 잡아버린 것. 마츠야마 상고가 27년만에 통산 5번째 우승을 달성하기 일보직전이었다. 적어도 이때까지는.

결국 주자 없는 2사까지 몰린 구마모토 공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다음 타자는 6번 좌익수, 신입생 사와무라 코메이(沢村幸明)[8]였다. 4강까지 17타수 3안타, 이날 3타수 1안타(내야안타)를 기록중인 이 타자가 아웃되면 모든 것이 끝나는 상황. 그러나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였다. 닛타의 초구 실투[9]에 신입생이 힘차게 배트를 돌렸다. 타구는 좌측 담장을 라인드라이브로 넘어갔다.

신입생 사와무라가 일으킨 대형 사고. 타구를 확인한 닛타는 마운드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 기사회생 동점 솔로포에 힘입어, 구마모토 공고는 지옥의 문턱에서 극적으로 살아 돌아왔다. 승부는 연장으로 돌입했고 10회초, 마츠야마 상고가 득점을 기록하지 못한 채 10회말로 향했다.

3.4. 10회말, 교체선수가 만든 기적의 백홈

10회말, 구마모토 공고의 공격. 선두로 타석에 들어선 8번 타자는 등번호 5번의 3루수, 호시코 타카시(星子崇)였다. 4강까지 10타수 5안타 2도루로 활약했고, 첫 타석 병살타를 제외하면 5회에는 펜스를 직격하는 우중월 2루타를,[10] 8회에는 좌전 안타를 만들고 희생 플라이 때 득점하여 1점차로 추격, 이날도 3타수 2안타를 기록하며 대회 내내 맹타를 휘두르고 있었다. 여전히 마츠야마 상고의 마운드에 있던 닛타는 호시코를 상대로 3볼에서 풀카운트까지 끌고 갔으나 6구 슬라이더가 가운데로 몰린 게 화근이었다. 호시코는 이를 놓치지 않고 좌중간을 완전히 갈라버렸다. 구마모토 공고는 사요나라 주자가 2루 득점권에 나간 셈이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마츠야마 상고는 여기서 우익수를 맡고 있던 등번호 1번, 3학년 투수 와타나베 신이치로(渡部真一郎)를 마운드로 부르고, 그 자리에 닛타를 보내는 투수 교체를 단행했다. 직후 나온 9번 타자 투수 소노무라는 3루 쪽으로 보내기 번트를 시전하여 호시코를 3루에 보내놓았다. 이로써 1사 3루. 구마모토 공고는 사요나라 우승 찬스를 잡았다. 희생플라이만 나와도 패배하는 상황에서 마츠야마 상고는 1번, 2번 타순에 고의사구를 선택하여 1,2루를 모두 채우는 만루 작전을 폈다. 이렇게 1사 만루.

이 때 포수 이시마루(石丸)가 타임을 요청했고, 마츠야마 상고의 사와다 카즈히코 감독(沢田勝彦)은 혹시라도 나올 희생 플라이 상황에 대비해 우익수를 교체했다.[11] 새로 투입된 선수는 등번호 9번의 야노 카츠시(矢野勝嗣). 이 야노는 어깨는 좋았지만 컨트롤이 워낙 제멋대로라 연습에서 매일 실수를 연발하는 바람에 감독에게도 허구헌 날 혼나고 동료들로부터도 은근히 무시당하던 선수였다. 이러니 시합에는 좀처럼 써먹을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마츠야마 상고는 이 열등생에게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희망을 걸어본 것이었다.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서 타석에는 3번 1루수, 혼다 다이스케(本多大介)가 들어섰다. 혼다는 잘맞은 타구가 6회말 타석에서 투수 닛타의 글러브에, 8회말 타석에서는 1루수 이마이의 다이빙 캐치에 빨려들어가는 등, 잘 맞는 타구에 비해 운이 따르지 않아 이날 4타수 무안타[12]를 기록중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이 타석에 들어서면서 '내가 영웅이 되는구나. 내일 신문의 1면에 내가 나오겠구나'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여기서 와타나베의 초구 변화구가 높게 몰렸고, 혼다는 힘을 빼고 이 공을 잡아당겼다.

타구는 우측, 그러니까 방금 들어온 우익수 야노의 위치로 펜스 앞까지 깊게 날아갔다. 맞는 순간 와타나베를 비롯한 마츠야마 상고 전원이 얼어붙었고, 구마모토 공고의 벤치는 두 손을 번쩍 들고 예정된 승리에 기뻐하고 있었으며, 열도 전체가 이 희생플라이를 통한 구마모토 공고의 사요나라 우승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게 야노는 플라이볼을 잡았고, 동시에 호시코는 구마모토 공고에 첫 우승을 안겨주기 위한 태그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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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입니다!!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카무라 유지(中邨雄二), 당시 아사히 방송 캐스터

드넓은 고시엔 구장 전체를 가로지르는 야노의 다이렉트 백홈 송구가 높은 위치에서 불던 바람을 타고 포수의 미트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적중, 이게 자연 태그로까지 연결되면서 3루 주자 호시코는 홈에서 아웃되었다.

이것이 바로 사요나라 희생플라이 우승이 더블 플레이를 통한 무득점 이닝 종료로 바뀐... 고시엔 100년 역사상 최고의 명장면, 기적의 백홈(奇跡のバックホーム)이다. 바로 위에 적힌 저 멘트는 지금까지도 기억되는 고시엔의 명대사 중 하나이다. 결국... 우승 일보 직전에서 마지막 몇 센티미터가 모자랐던 호시코도, 끝까지 운이 없었던 혼다도, 구마모토 공고도 모두 이 불운에 울어야 했다. 이제 승부는 마지막 회, 11회초로 향하고 있었다.

당시 영상 1분 13초부터가 야노의 기적의 백홈. 고화질 리플레이

3.5. 11회초, 마츠야마 상고가 날린 KO 펀치

그리고 직전 장면의 주인공인 우익수 야노는 8번 선두 타자로 나와서 구마모토 공고의 투수 소노무라의 초구를 좌전 안타로 연결했다. 이 타구를 좌익수 사와무라[13]가 포구하는 데 실패, 뒤로 흘리면서 야노는 2루까지 들어갔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다음 타자 9번 후카호리는 보내기 번트로 야노를 3루에 보냈고, 1사 3루에서 투수 소노무라는 1번 타자 쿠메를 고의 사구로 걸러 1루를 채웠다. 다음 타자는 2번 호시카. 먼저 1루 견제를 한 번 한 소노무라가 투구 동작으로 들어갈 때, 호시카는 배트를 내렸다. 초구에 기습적인 스퀴즈 번트. 타구는 1루 쪽으로 굴러갔고, 3루 주자 야노는 전력으로 달려 홈을 밟았다. 마츠야마 상고가 다시 앞서가는 순간이었다. 1루수 혼다가 홈을 먼저 보면서 아무 데도 던지지 못하는 바람에 호시카도 1루에 살아나가면서, 마츠야마 상고가 있던 3루 쪽은 용광로처럼 끓어올랐다.

1사 1,2루에서 다음 타자는 3번, 캡틴 이마이. 4강까지 21타수 8안타 1홈런 3타점이었던 그 역시 1회에 때린 우전 안타가 전부였고, 이후 4타석 전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11회초 타석에서 나온 그의 기록은 26타수 9안타로 타율이 3푼 가량 떨어진 상태. 처음부터 여기까지 던진 소노무라는 완연히 지쳐 있었고, 첫 변화구 2개가 연속으로 볼 판정을 받았다. 제3구로 선택한 공 역시 변화구. 이 느린 커브는 가운데로 몰렸고, 카운트를 잡으러 들어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던 이마이는 레그킥으로 파워까지 실어 공을 반으로 쪼개버렸다. 타구는 우측 펜스를 직격했고, 그렇게 마츠야마 상고의 캡틴은 루상의 주자를 싹 쓸어담았다. 6:3까지 벌어진 스코어. 이것은 사실상의 KO 펀치였다. 환호하는 이마이를 뒤로 하고 소노무라는 결국 강판되었고, 추가 득점 없이 승부는 11회말로 향했다.

3.6. 11회말, 헤이세이의 기념비적인 명승부

기세가 꺾였지만 구마모토 공고도 희망이 없지는 않았다. 경기 내내 침묵하던 4번 니시모토[14]가 선두 타자로 나와 출루한 것. 1루 강습 타구를 1루수 이마이가 몸으로 막았고, 공을 주워들어 베이스에 다이빙을 했으나 간발의 차로 니시모토가 세이프 판정을 받으며 실낱같은 희망을 이어갔다.

구마모토 공고는 5번 타순에 다시 좌타자 키노시타(木下)를 대타로 냈다. 상대가 우투수임을 노린 작전이었다. 그러나 풀카운트 승부 끝에 와타나베의 6구 변화구에 키노시타는 타이밍을 완전히 빼앗겼고, 타구는 1루수 정면으로 향했다. 이마이는 1루 베이스를 먼저 찍는 리버스 더블 플레이를 노렸으나 2루 송구를 유격수가 떨어뜨리면서 1루 주자 니시모토는 2루에 진루.

다음 타자는 9회말 기사회생 동점포와 11회초 치명적인 에러로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하던, 6번 신입생 사와무라. 그러나 그 역시 변화구를 노려친 타구가 멀리 뻗지 못하며 좌익수 뜬공으로 물러났다. 2사 2루에서 다음 타자는 2회말 1타점 적시타가 있는 7번 포수 사카이. 풀카운트 승부에서 와타나베의 가라앉는 6구 변화구에 사카이의 배트가 살짝 끌려나왔고, 이를 거두어들이려 했으나 이미 주심이 헛스윙 삼진을 선언한 뒤였다. 와타나베와 이시마루 배터리는 사카이의 방망이가 나오는 순간 환호했고, 동시에 2루 주자 니시모토는 패배를 직감하고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쓰리아웃, 6-3으로 시합 종료. 마츠야마 상고는 1969년, 결승전 재시합[15] 끝에 우승한 지 27년만에 다시 전국을 제패, 통산 5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1996
甲子園
제78회 전국 고등학교 야구 선수권 대회
第78回全国高等学校野球選手権大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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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전, 8.21, 13:00, 고시엔 구장 48,000명(매진)
선발 1 2 3 4 5 6 7 8 9 10 11 R H E
<colbgcolor=#fff,#191919> 마츠야마 상고 닛타 히로타카 3 0 0 0 0 0 0 0 0 0 3 <colbgcolor=#dcdcdc,#222222> 6 10 2
구마모토 공고 소노무라 준이치 0 1 0 0 0 0 0 1 1 0 0 3 7 0

4. 여담

  • 도시전설처럼 야구팬들 사이에 떠돌아 다니는 이야기로는 당시 사와다 감독은 원래 외야수들의 수비위치만 조정한 후에 돌아가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해당 경기의 얼마 전에 사망한 부친의 목소리로 "외야수는 바꾸지 않을게냐?"라는 소리가 들려서 급히 우익수를 야노로 교체했다는 이야기. 물론 워낙 황당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실제로 타임아웃이 끝나기 직전에 갑자기 우익수가 교체되었고, 야노 본인도 교체투입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수비위치로 달려가면서 팔을 푸는 장면이 보이는 등 기묘한 상황은 확실히 있었기 때문에 재미삼아 꾸준히 돌아다니는 이야기라고 한다.
  • 당시 백홈을 시도하던 야노를 보며 팀원들은 전원 "어이쿠, 야노 저자식 또 저질렀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16] 하지만 야노 본인은 벤치에서 시킨대로 한 것 뿐인데, 어깨는 좋지만 워낙 조준이 엉망이었던 야노에게 백홈을 시도하는 상황을 정해줬었다고 한다. 9회 끝내기를 당할 상황에서, 자신의 수비 정위치보다 뒤에서 공을 잡았을 시에만 홈 송구를 하라고 못을 박았었는데, 그걸 기억하고 있었고[17] 딱 그 상황을 맞이하자 송구를 한것. 실제로 송구 자체는 꽤 높았던 편이었는데 평소라면 속도가 모자랐거나 아예 홈까지 닿지도 않았을 높은 송구가, 오히려 높은 위치에서 불던 바람을 타고 그대로 포수 미트로 빨려들어가듯이 날아가면서 기적이 벌어진 것.[18]
  • 후일 야노는 비슷한 거리에서 송구를 수십 번이나 연습해보았지만, 단 한 번도 적중시키지 못했다고 한다. 결승전을 취재한 아사히 신문에 의하면 그 백홈은 신이 들린 플레이였다고.
  • 이 기적을 일으킨 주인공 야노는 마츠야마 대학에서 선수생활을 지속, 주장으로서 메이지진구 야구대회에도 출전했으며, 졸업 후에는 에히메 아사히TV(EAT)에 취업해 도쿄 지사 영업부를 거쳐 2014년부터 보도 제작국 기자를 거쳐 다시 에히메 본사 영업부에 근무 중이다. 본인은 자신이 기적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으나 결국 이런저런 루트를 통해서 회사 선배들에게 알려지게 됐다고 한다.[19] 야노 본인에게 사실인지 확인하고 나서 선배들의 반응은 (도저히 못 믿겠다는 투로) "네가?"라는 반응이었다고(...).
  • ## 대회 14타수 8안타의 맹타를, 결승전에서 장타 2개를 포함한 4타수 3안타를 치는 등 구마모토 공고 공격의 선봉장이었고, 대회 2도루를 기록한 준족에 8회말 1득점까지 따놓고도 마지막 태그업 때 홈에서 아웃당하며 웃지 못했던 구마모토 공고의 3루주자 호시코 타카시(星子崇)는 현재 구마모토에서 '터치 업' 이라는 이름의 바를 운영하고 있다. 2013년에는 지인을 통해 자신의 가게에서 야노와 17년만에 재회하기도 했다고.
  • 2015년, 아사히 방송(ABC)에서 이 내용을 다룬 프로그램이 나왔다. 여기서 밝혀진 사실에 따르면, '터치 업'에 걸려있는 마츠야마 상고의 유니폼은 야노가 1년 전에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 2019년 ABC 공식 유튜브에 올라온 클립도 있다. # 고시엔 역사에 남을 임팩트있는 장면이다 보니 개최사인 TV아사히/ABC가 방송소재로 꾸준히 쓰는 듯.[20] 게다가 기적을 일으킨 당사자는 같은 식구인 에히메아사히방송에 근무하고 있으니...
  • 야노의 명함에는 "저는 언제나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는 사람입니다"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 본 항목의 일화와는 별개로 2022년에 아사히 방송 테레비에서 마미야 쇼타로 주연의 기적의 백홈 이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방영됐었는데, 주인공은 한신 타이거스 출신의 외야수 요코타 신타로의 뇌종양 투병기를 바탕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 드라마다. 요코타는 2017년에 수술을 받은 후 2019년에 은퇴했지만 안타깝게도 2023년에 암이 재발해 2023년 7월 18일에 28세라는 너무나도 젊은 나이를 뒤로한 채 세상을 떠났다.

5. 관련 문서




[1] 위의 사진 좌측 중단에서 가장 왼쪽의 모자를 벗고 있는 키 큰 선수가 '기적의 백홈'의 주인공 야노 카츠시. [2] 이제나 저제나 고시엔의 대표 강호교들은 야구 특기생들을 끌어모은 사립학교들이다. 하지만 대도시지역이 아닌 작은 현에서는 고시엔에 단골로 출전하는 야구명문 공립학교들도 더러 있기는 하다. 대표적인 예가 1980년대 초반 전국 최강자로 군림하던 "메아리 타선"의 이케다 고등학교( 도쿠시마). [3] 이 대회 이후로 10년동안 공립고교는 여름 대회 결승에 오르지 못했고 11년 후인 2007년에야 공립고교에서 결승 진출팀이 나오는데, 바로 사가키타 고교 되시겠다. 그리고 그 사가키타 고교 이후 공립학교가 결승전에 오르는데 또 11년이 걸렸는데, 그 팀이 여름 고시엔 100회 대회의 주인공 취급을 받으며 선풍을 일으킨 요시다 코세이 가나아시 농업고교(아키타현)이다. 그럼 다음 공립학교가 결승전에 진출하는 건 2029년이란 말인가? [4] 新田浩貴, 등번호 10번, 2학년으로 마츠야마 상고의 에이스 [5] 渡部真一郎, 등번호 1번, 3학년 [6] 園村淳一, 등번호 10번 [7] 등번호 16번, 2학년생. 그에게는 이것이 대회 첫 타석이었다. [8] 당시 스타팅 멤버 중 유일한 1학년이었고, 1984년 갑자원의 오가타 고이치(전 교진 외야수, 현 카프 감독과는 동명이인) 이후 최초로 1학년 스타팅 멤버였다고 한다. [9] 마츠야마 상고의 포수 이시마루(石丸)는 바깥쪽 볼을 요구하며 우타자 바깥으로 빠져 앉았다. 그러나 닛타의 직구는 정가운데에, 그것도 타자의 눈높이로 몰려버렸다. [10] 이 타구에 호시코는 3루를 노렸다가 중견수-2루수-3루수로 이어지는 마츠야마 상고의 중계 플레이에 3루에서 아웃되었다. [11] 이것으로 닛타는 경기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12] 4강까지 16타수 4안타 2타점 1도루, 이날 4타석은 2루 땅볼 - 삼진 - 투수 직선타 - 1루 직선타 순으로 기록하고 있었다. [13] 9회말에 동점포를 쏘아올린 그 타자. [14] 니시모토는 4강까지 12타수 2안타, 이날도 삼진 2개를 당하는 등 4타수 무안타로 부진을 겪고 있었다. [15] 이 결승전 재시합은 2006년에 다시, 37년만에 열리게 된다. 그 때의 매치업은 손수건 왕자 vs 마군의 대혈전으로 유명한 와세다 실업고교(서도쿄) vs 코마다이 토마코마이(남홋카이도) [16] 일본은 번호로 포지션과 역할을 지정해놓는다. 영상에서 보면 야노의 등번호는 9번이다. 즉 봄 대회에선 주전 외야수였지만 가을대회때는 벤치멤버로 떨어져 있었다는 뜻인데 그만큼 송구미스가 잦았다는 뜻 [17]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팀원들은 물론이고 그렇게 지시한 사와다 감독도 야노에게 그런 지시를 내렸다는 걸 까먹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터무니없는 홈송구를 날렸을 때 다들 저질렀구나! 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18] 원래 홈송구를 하는 상황에도 높게 송구하는걸 자제시킨다. 송구가 벗어나면 끊을 수 없고 포물선으로 한방에 가는것보다 낮게 깔린 송구를 내야수가 이어받는게 더 빠를수도 있기 때문이다. [19]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에히메아사히TV는 여름 고시엔 대회를 주최하는 아사히 신문계열 방송사다. [20] 중계는 보통 NHK가 하지만 여름 고시엔 개최 주관사는 아사히 신문과 그 계열 방송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