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9f51 {{{#!wiki style="padding: 5px 0 0; margin: -5px -10px; background: linear-gradient(to right, #582d2d, #663334, #663334, #582d2d)"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 25%; min-height: 2em" {{{#!folding [ 20세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5px; word-break: normal" {{{#555,#aa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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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코뷔스 헨리퀴스 판트호프 | 헤르만 에밀 피셔 | 스반테 아레니우스 | 윌리엄 램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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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폰 바이어 | 앙리 무아상 | 에두아르트 부흐너 | 어니스트 러더퍼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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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오스트발트 | 오토 발라흐 | 마리 퀴리 | 빅토르 그리냐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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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사바티에 | 알프레드 베르너 | 시어도어 윌리엄 리처즈 | 리하르트 빌슈테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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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츠 하버 | 발터 네른스트 | 프레더릭 소디 | 프랜시스 윌리엄 애스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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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츠 프레글 | 리하르트 아돌프 지그몬디 | 테오도르 스베드베리 | 하인리히 오토 빌란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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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오토 라인홀트 빈다우스 | 아서 하든 | 한스 폰 오일러켈핀 | 한스 피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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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지오크 | 오토 딜스 | 쿠르트 알더 | 에드윈 맥밀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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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J. 크램 | 요한 다이젠호퍼 | 로베르트 후버 | 하르트무트 미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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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올트먼 | 토머스 로버트 체크 | 일라이어스 제임스 코리 | 리하르트 로베르트 에른스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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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크뤼천 | 프랭크 셔우드 롤런드 | 마리오 호세 몰리나 | 로버트 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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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스 스코우 | 월터 콘 | 존 포플 | 아메드 즈웨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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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히거 | 앨런 맥더미드 | 시라카와 히데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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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화학상 수상자 |
|
1951년 | |
글렌 T. 시보그 | 에드윈 맥밀런 |
출생 | 1912년 4월 19일 |
미합중국 미시간 이쉬페밍 | |
사망 | 1999년 2월 25일 |
미국 캘리포니아 라피엣 | |
국적 | 미국 |
학력 | 조든 하이 스쿨,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대학교 |
직업 | 화학자 |
자녀 | 데이비드 시보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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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글렌 시어도어 시보그(Glenn Theodore Seaborg)는 미국의 화학자이다.2. 내용
오랫동안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교수로 재직했던 그는 플루토늄, 아메리슘, 퀴륨, 버클륨, 캘리포늄, 아인슈타이늄, 페르뮴, 멘델레븀, 노벨륨, 로렌슘 등의 원소를 발견했다. 초우라늄 원소 발견에 기여한 공로로 에드윈 맥밀런과 함께 1951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106번 원소 시보귬의 이름은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1934년부터 1940년까지 우라늄원소보다 더 큰 원자번호를 가지고 있는 초우라늄 원소를 찾기 위한 노력을 했으나, 핵변환 실험으로는 너무 미소한 분량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화학적으로는 분리할 수가 없었다. 1940년 초 사이클로트론을 사용한 실험에서 최초로 93번 원소가 분리되었는데, 이 원소가 넵투늄이다.
시보그는 사이클로트론을 쬘 때 만들어지는 여러 가지 동위원소의 화학적 분리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그는 사이클로트론을 사용하여 간접적으로 만들어지는 중성자와 우라늄을 충돌시켜 넵투늄을 만들었다. 60인치 사이클로트론으로 중양자를 가속시켜 베릴륨 금속에 충돌시키면 중성자가 튀어나오고, 이 중성자를 감속시켜 다시 우라늄과 충돌시킨다. 1.2kg의 초산우라닐(uranyl)을 넣어 6시간 동안 충돌시킨 다음 우라늄, 핵분열물, 넵투늄, 그리고 플루토늄이 들어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 희토류화합물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이 희토류화합물에서 강한 알파입자가 나오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분리에 성공한 넵투늄의 양은 백만 분의 1g 정도지만 강한 베타선이 방출되고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플루토늄이 만들어졌다. 최초로 만들어진 플루토늄을 다시 사이클로트론으로 만든 열중성자와 충돌시켜 핵분열반응을 확인했다.
플루토늄이 핵분열반응을 할 것이라는 예측은 보어와 휠러의 이론적인 계산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제조법을 연구한 것은 페르미와 그의 제자 에밀리오 세그레였다. 세그레는 아직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43번 원소인 테크네튬을 확인하고 싶어 가속기가 있던 버클리를 방문한다. 그는 사이클로트론으로 42번 원소 몰리브데넘에 중수소를 조사하면 43번 원소인 테크네튬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제안했고, 1년 후 몰리브데넘 속에서 테크네튬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스어로 인조란 뜻에서 따온 테크네튬은 과학사 최초의 인조 원소이다.
초우라늄 원소에 대한 연구가 진척됨에 따라 플루토늄이 핵분열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원소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고, 플루토늄의 생산법이 연구되었다. 시보그와 세그레이는 버크레이의 사이클로트론으로 넵투늄과 플루토늄을 찾는 공동연구를 시작했다.
그들은 플루토늄-239가 우라늄-235보다 더 큰 핵분열 단면적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는데, 이것은 원자폭탄을 만드는 데 공업적으로 어려운 우라늄-235의 농축작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였다. 이로 인해 원자폭탄 제조를 위한 프로젝트가 급진전을 이루게 되었고, 플루토늄을 제조하기 위한 원자로가 계획되었다.
플루토늄과 핵분열의 발견에 참여한 핵심 과학자들은 후에 모두 노벨상을 수상했다. 시보그는 에드윈 맥밀런과 함께 넵투늄과 플루토늄을 발견한 공으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