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10:29

군도(독일 희곡)

1. 개요2. 줄거리3. 여담

1. 개요

군도(Die Räuber, The Robbers, [ruby(群盜, ruby=ぐんとう)])는 독일 환희의 송가라는 의 저자로 유명한 프리드리히 실러(Friedrich Schiller)가 1781년에 지은 희곡이다. 군도라는 이름 자체는 일본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 때문에 '도적떼'로 번역되기도 한다.

동생의 모함을 받아 아버지의 사랑을 잃고 애인을 빼앗긴 카를이 군도(떼도둑)의 우두머리가 되어 아버지를 구하고, 애인의 사랑을 되찾으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애인을 죽이고 당국에 자수한다는 내용이다.

프리드리히 실러가 젊은 시절 뷔르템베르크군 사관학교에 복무하던 당시에 몰래 써서 알려졌지만 그 덕분에 좌절과 여러 고생을 해야했던 작품이다. 뷔르템베르크의 군주였던 오이겐 공작의 강제적 명령으로 사관학교에 들어가 의학을 배우던 실러는 엄격한 전제주의적 생활에 치를 떨며 몰래몰래 이것을 쓰던 중에 존경하던 괴테를 멀리서나마 보면서 언제나 억압적인 폭군 오이겐 공작이 괴테라는 작가 하나를 정중히 모시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못했다. 글이 사람을 바꾸게 한다! 라는 걸 더더욱 느낀 실러는 이 희곡을 가명으로 써서 마침내 연극 무대에 올릴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나중에서야 이 군도의 내용을 안 오이겐 공작은 불같이 화를 내며 실러를 구금시켰고 나중에는 의학 서적 집필 외 그 어느 서적의 집필행위도 모두 금지시킨다. 결국 실러는 사관학교를 탈출하여 다른 영지로 달아나서 가명으로 살아가며 수배를 피하며 작가로 살아가면서 점차 극작가로 알려지게 된다. 오이겐 공작이 이 군도의 줄거리를 알고 격분하던 것이 이해가 갈 정도로 그 시대에선 엄청나게 파격적이었다.

2. 줄거리

영주인 모어 백작의 아들로 태어나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던 주인공 카를은 고리타분한 걸 싫어하고 대학에서도 술과 한량같은 생활을 보낸다. 그런 형을 시샘하던 못난 아우 프란츠가 형을 모함하는 통에 집안에서 절교를 당해 거리에 나오지만 가차없이 그런 생활을 즐기다가 빈민들과 어울리고 가혹한 세금에 시달리던 그들이 산으로 들어가 산적이 되자 그들을 도우면서 산적이 되어버린다.

비록 망나니같이 지냈으나 사실은 머리가 비상하여 기억력도 좋았던 카를은 대학시절 배운 여러 고위지식을 산적단에서 써먹으면서 산적단은 기세가 점차 오르고 나날이 세력이 커져간다. 결국 영주군이 엄청나게 파병되면서 신부를 보내 항복하지 않으면 다 죽인다는 경고까지 하는데 이를 무시하고 산적들은 20배에 달하는 병사들을 산으로 유인하고 군략에서도 소질이 있던 카를의 활약으로 영주군을 무찌른다. 하지만 그 와중에 카를을 아끼던 두목과 카를을 친구로 여기던 소중한 동료가 죽는다. 두목은 죽기 전에 카를을 새로운 두목으로 정하고,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산적들도 기꺼이 따른다.

한편 프란츠는 나이 든 아버지를 구금하고 형과 결혼할 약혼녀도 차지하고 새로운 영주가 된다. 그리고 가혹하게 영지민을 탄압하고 세금을 거둬들이는데 사람들은 견디다 못해 하나둘 카를의 산적단으로 들어온다. 점차 산적단 규모가 커지면서 이들도 일행을 먹고 살리고자 대담하게 귀족들 집을 공격하기에 이른다. 귀족들의 하소연에 프란츠는 새로 군대를 보내지만 연이어 산적들에게 패하고 카를은 아버지를 구금하고 프란츠가 가혹한 군주가 되어있다는 걸 알고 이를 간다. 결국 영주령 본토로 공격하여 아버지를 구출한다. 한편 약혼녀도 속으론 늘 카를을 사랑해왔고 그녀도 카를을 따르고자 찾아온다.

마지막에는 프란츠는 모든 걸 잃고 분노한 민중들과 산적들의 공격으로 자포자기하여 스스로 자살한다. 그 와중에 아들이 산적단 두목이 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던 아버지도 충격으로 죽고 이제 카를은 여러 곳에서 악명을 떨치면서 여러 영주들의 대규모 공격을 받는다. 하지만 갈수록 자신이 추구하던 모든 게 허무함과 슬픔으로 끝나는 현실에서 폭력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다고 번민하면서도 여지껏 자신을 충실하게 따르던 부하들과 자신을 사랑하는 약혼녀를 두고 고민하다가 결국 애인을 죽이고 당국에 자수하며[1] 이야기는 끝난다.

3. 여담

이러니 영주가 보고 격분하지 않으면 이상했으리라... 사실은 실러는 카를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초기 설정으로 글을 썼으나 연극감독이 충격에 빠져서 거부했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카를이 마지막에 아무리 그래도 민중이 무기들고 영주에게 맞서는 건 옳지 않다라는 당시 기득권인 귀족들 눈치를 봐주면서 끝내는 마무리로 고쳤다. 그럼에도 이게 연극무대로 오르자 사람들은 환호했고 탈영까지 하면서 연극을 보러온 실러는 감격에 겨워 무대에 나와 박수갈채까지 받는다.

프랑스 혁명( 1789년~ 1799년)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분석도 있지만, 실러는 귀족제 타파나 그런 과격한 면까지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실러는 1802년 귀족 작위를 얻어 폰(von)이라는 성씨 앞에 붙는 독일어 전치사를 얻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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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확히는 가난에 허덕이는 어느 농부(자식이 11명이나 되었다고)에게 자신의 목에 막대한 상금이 걸려있으니 날 죽이고 그 돈을 받으라고 농부에게 말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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