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족보명 | 국채준(鞠埰準) |
본관 | 담양 국씨[1] |
출생 | 1901년 10월 9일 |
전라남도
담양군 서면 백동리 (현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 백동리 신기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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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45년 3월 11일 |
전주형무소 |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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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국채준은 1901년 10월 9일 전라남도 담양군 서면 백동리(현 담양군 담양읍 백동리 신기마을)에서 아버지 국진렬(鞠珍烈, 1855. 10. 21 ~ 1915. 8. 31)과 어머니 담양 전씨(潭陽 田氏) 전영신(田永申)의 딸 사이의 4형제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그는 1931년경 전라북도 부안군 산내면에 정착한 후 홍순옥(洪淳玉)과 친분을 쌓게 되고 그의 맏사위가 되면서 증산교(甑山敎)의 일파인 원군교(元君敎)의 간부로 활동하였다. 원군교의 교주인 홍순문(洪淳文)은 이전부터 현재의 세계정세는 강일순의 교리인 신도조리공사(神道調理公事)에 의해 세계전쟁이 발발하게 되며 가까운 장래에 이 대전은 끝이 날 것이며, 그때 교조 강일순은 현세에 재림하여 천지인 삼계(天地人三界)를 통리하는 삼황전하(三皇殿下)가 되며 조선은 독립하고, 세계의 선진국이 되며 우리의 신도들은 강증산의 수제자가 되어 후천오만년(後天五萬年)에 걸쳐 육신이 불로불사(不老不死)하는 복록(福祿)을 얻어 세계인류를 지도할 자격을 부여받게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강력한 결사를 조직하는 안건이 대두되었다.
국채준은 1941년 5월 26일 부안군 산내면에서 홍순옥, 홍순문, 김만암(金萬岩), 전봉균(田鳳均), 박승주(朴昇柱), 강재숙(姜在淑) 등과 회합하고, 홍순문의 제의에 찬동하여 그들과 함께 무명의 결사를 조직하였다. 6월 23일 결사의 담양책임자로서 강증산의 수제자가 되어 세계 인류의 선각자가 되기 위한 소양을 연마할 뿐 아니라 묵허라는 행사를 거행하였다. 1941년 7월 이후부터 1942년 2월경까지 부안군 산내면과 부령면 일대에서 결사의 목적이 실현, 성취되도록 묵도(默禱)와 기원제를 거행하는 등 조선의 독립 및 민족의식 함양을 기원하고 결사의 목적 수행을 위하여 활동했다.
그러나 1942년 6월 일제 경찰에 체포된 국채준은 1944년 1월 전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 1945년 3월 11일 전주형무소에서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국채준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담양-참판공파 28세 채(埰) 항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