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의 정치인에 대한 내용은 고제철(1955) 문서 참고하십시오.
고제철 高濟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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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lack><colcolor=white> 출생 | <colbgcolor=white,#191919> 1930년 1월 1일 |
전라남도
광주군 (現 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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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2023년 7월 9일 (향년 93세)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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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기업인 |
학력 | 전남대학교 (학사) |
경력 |
금광기업 회장 ㈜어등산리조트 대표 학교법인 송원학원 이사장 국가대표여자배구선수단장 광주상공회의소 회장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 ㈜광주매일사 회장 송원문화재단 이사장 법무부 범죄예방위원 광주지역자문위원회 회장 백범 김구선생 기념사업회 고문 광주지방법원 조정위원회 회장 광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재단법인 광주한마음장학재단 명예 이사장 빛고을 결식학생후원재단 이사장 |
가족 |
배우자 장남 고경주[1], 차남 고혁주[2], 장녀 고경숙, 차녀 고경미, 삼녀 고경희 사위 정대훈[3], 사위 노도영[4], 사위 박석인[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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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2. 생애
그는 1929년 서창면 용두마을(現 광주 서구 용두동)에서 집안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전남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의 전신인 광주공립농업학교를 1949년 9월 입학했다.1957년 금광기업을 설립해 광주·전남을 대표하는 종합건설회사로 키웠다. 이후 송원그룹과 송원학원, 송원대학교를 설립해 후학을 양성했다. 그렇게 광주·전남지역 건설업계에서 수위를 다툴 정도의 재력가로 평가를 받던 금광기업 등 14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게 된 그는 1988년 고제철 박사 공덕비를 세웠다. 이후 1991년 신문사업에 뛰어들었고 언론계에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광주매일 창간은 당시 지역언론계에서는 큰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오랜 기간 건설업을 해온 모기업을 위한 ‘자사 방패용 신문‘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실제 호남지역을 기반삼아 4조원에 이르는 엄청난 재산을 치부했고 이를 보호하기 위한 방패막이로 광주매일을 창간 해 10년 동안 사유물로 삼았으며 자신의 경영능력 부족이 원인임에도 자본논리를 구실삼아 여러 부도덕한 행보를 보여 2001년 결국 폐업했다.
이후 2014년 어등산 관광단지 조성사업 가운데 골프장만 부분 단독 개장 조건으로 300억원대에 이르는 터를 광주시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정작 이를 거부해 논란을 빚었다. 2016년에는 금광기업 경영권 분쟁에서 세운건설에게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한편 2018년 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 생가에 동상을 제막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