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8:58:27

고제신

파일:고제신.jpg
성명 고제신(高濟臣)
자 / 호 문경(文京) / 맥파(陌波)
본관 제주 고씨 #
생몰 1883년 10월 27일 ~ 1943년 1월 30일
출생지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청호리[1]
사망지 전라북도 부안군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고제신은 1883년 10월 27일 전라북도 부안군 하서면 청호리에서 아버지 고항진(高恒鎭)과 어머니 반남 박씨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충혜왕을 내리 섬긴 문충공 고경(髙慶)의 19대손으로, 어렸을 때부터 영특하고 지혜가 총명했으며 기골이 장대해 '호남 7장 제일(湖南七將之一)'이라고 불려지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1915년 광복회(光復會)에 가담했고, 1917년 광복회원인 유장렬 등과 함께 전남 보성의 부호인 서인선(徐仁善)으로부터 독립운동 자금 일만원을 모집했다. 또한 192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령을 받고 귀국한 한우석(韓禹錫)이 임시정부 지원과 일제 고관 암살을 목적으로 암살단(暗殺團)을 조직하자, 그는 여기에 가담해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했다.

1920년 4월, 고제신은 한우석, 임성태(林聲泰) 등과 함께 전북 김제군 마경면의 박병한의 집에 침입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특파원임을 밝히고 238원을 수합했다. 이어 같은 달 전북 전주에서 지역 부호를 통해 군자금 400원을 받아냈고, 1921년 12월에는 전북 부안에서 58원, 1922년 음력 1월에는 전북 김제에서 400원을 받아냈다. 또 1923년 음력 3월 전북 김제에서 1,200원을 받아냈다. 그러다가 1924년 체포된 그는 1924년 8월 28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17년 서인선으로부터 1만원을 받아낸 사실이 밝혀지면서 4년의 형기가 추가되었다. 그렇게 12년간 옥고를 치르고 출소한 그는 1943년 1월 30일 자택에서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고제신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 제주 고씨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