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고정화(高貞華) |
생몰 | 1881년 6월 8일 ~ ? |
출생지 | 황해도 신천군 군내면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고정화는 1881년 6월 8일 황해도 신천군 군내면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8년 황해도 안악군의 서북학회(西北學會) 회원으로 참여했고 화산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그러던 1910년 3월 말 순종의 탄신일인 건원절(乾元節)을 맞아 개최된 경축 연설회에서 연설을 한 후 신천군 헌병분견소에 체포되었다가 풀려났다. 이 일로 같은 해 5월 재령경찰서(載寧警察署)에 다시 체포되어 오랫동안 구금을 당하였다. 이후 1910년 11월 하순 양기탁, 김구 등의 서간도 이주 협의에 참여하여 동포들을 서간도 안동현 등지로 이주시켜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는 서울에서 임치정 등과 함께 구체적인 실행 방법에 대해 협의한 후 신천에서 직접 이주민 모집 담당자가 되어 활동하였다. 또한 양기탁으로부터 이주 계획 실행 준비를 위해 먼저 서간도를 시찰하고 오라는 지시를 받고, 1910년 12월 하순 추진 중이던 신천군 내 이주민 모집에 대한 업무를 유문형(柳文馨)에게 인계하고 서간도로 출발했다.그러나 도중에 양기탁 등과 함께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11년 7월 22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고, 9월 4일 경성공소원에서도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12년 10월 다이쇼 칙령 제24호에 의해 특별 사면을 받아 감형을 받았다. # 그러나 출옥 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고정화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