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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E. 럭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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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b92db><colcolor=#fff> 제22대 유엔군사령관 게리 E. 럭 Gary E. Luc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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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게리 에드워드 럭 Gary Edward Luck |
출생 | 1937년 8월 5일 |
미시간주 앨마 | |
사망 | 2024년 8월 14일 (향년 87세) |
플로리다주 나이스빌 | |
재임기간 |
제16대
주한미군사령관 제22대 유엔군사령관 제7대 한미연합군사령관 |
1993년 6월 15일 ~ 1996년 7월 9일 | |
초대 미합중국 육군 특수작전사령관 | |
1989년 12월 1일 ~ 1990년 6월 | |
학력 |
캔자스 주립대학교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조지타운 대학교 |
복무 | 미합중국 육군 |
1959년 ~ 1996년 | |
최종 계급 | 대장 (미합중국 육군) |
주요 참전 |
베트남 전쟁 걸프 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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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미시간주 앨마에서 태어났고 캔자스 주립대학교 학군단 출신으로 1959년 졸업 후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합중국 육군 특수작전부대 소속 팀장으로 전투를 치렀으며 기갑학교 OBC, OAC를 수료하고 육군항공과정, 합동참모학교, 육군전쟁대학을 수료했다.준장으로 진급 후 제8보병사단 부사단장, 제101공수사단 부사단장을 거쳐 소장으로 진급했으며 주한미군 제2보병사단장, 합동참모본부를 거쳤다. 중장으로 진급하고 초대 육군 특수작전사령관으로 임명되었고 걸프 전쟁당시 제18공수군단장으로 사막의 폭풍 작전에 참여했다.
1993년 6월 대장으로 진급과 동시에 유엔군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재임당시 김일성이 사망했고 북한이 영변 핵시설에서 플루토늄을 개발하고 핵 확산 금지조약을 탈퇴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당시 전쟁이 일어나면 미군 8~10만이 전사하고 한반도가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 보고하고 추가 병력을 투입할 것을 요구했다.
유엔군사령관을 마지막으로 퇴역했으며 국방부의 자문으로 일했다. 이라크 전쟁당시 자문으로 참가했으며 2005년까지 자문으로 일했다. 2024년 사망했다.
3. 여담
- 황선용 APEC 기후센터 경영지원실장이 한미연합사령부에서 도어맨으로 복무하던 시절 같이 도어맨을 서던 후임병이 럭이 타던 차의 문을 닫던 도중 럭의 정강이뼈를 부러뜨렸다. 이에 럭은 괜찮다는 표시를 했고 자신의 다리를 부러뜨린 병사를 질책하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 며칠 뒤 후임병에게 "나가기 싫은 마라톤대회가 있었는데 덕분에 편안하게 소파에 앉아서 피자를 먹을 수 있었다. 땡큐"라는 말을 남기고 등을 두드리고 간 일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