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222><colcolor=#fff> 강영우 姜永祐 | Young Woo K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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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44년 1월 6일 |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1] | |
사망 | 2012년 2월 24일 (향년 68세) |
미국 버지니아 주[2]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복수국적) |
직업 | 교수, 공무원 |
학력 |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교육학 / 학사) 피츠버그 대학교 대학원 (교육학 · 심리학 / 석사) 피츠버그 대학교 대학원 (철학 / 박사) |
경력 |
노스이스턴 일리노이 대학교 특수교육학 교수 (1979) 유엔 세계장애인위원회 부의장 미국 백악관 종교 · 사회봉사부문 자문위원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 (2001~2009) |
배우자 | 석은옥 ( 1942년 ~ [age(1942-01-01)]세, 1972년 결혼)[3] |
자녀 |
장남 강진석 (폴 강) (
1975년 ~ [age(1975-01-01)]세) 차남 강진영 (크리스토퍼 강) ( 1977년 ~ [age(1977-01-01)]세) |
종교 | 개신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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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인 출신 미국 관료.2. 생애
강영우는 1944년 1월 6일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시절이 매우 불우했는데, 13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고, 이듬해 중학교를 다니던 중 학교에서 축구를 하다가 축구공에 눈을 맞아 망막 박리를 앓았으며, 당시 국내 의료 기술이 뒤쳐졌던 까닭에 결국 시력을 잃고 말았다.[4]그 충격으로 어머니까지 세상을 떠났고, 몇 년 후에 의지하던 누나까지 죽는 바람에 졸지에 고아가 되었으며, 10대 시각 장애인 가장으로 불우한 청소년기를 지냈다. 동생 둘 중 하나는 친척 집에서 데려가고 다른 한 명은 고아원에 갔다. 10대 후반에 시각장애인들이 다니는 학교에 다니며 기술을 배우고 있었는데, 그는 대학교에 진학하고 싶어하였으나 주변의 반대가 심하였다. 그럼에도 온갖 노력 끝에 연세대학교 교육학과에 입학했다. 이 때 나중에 부인이 된 연상의 여인인 석은옥을 만나게 되었다.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1972년 국제 로터리 재단으로부터 장학생으로 뽑혀 미국 유학길에 올라 피츠버그 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당시 문교부(교육부의 전신)는 장애를 해외 유학의 결격 사유로 규정하였으나, 그의 유학으로 이 조항이 폐지되었다. 그리고 그는 대한민국에서 장애인 최초의 정규 유학생이 되어 대한민국 최초 장애인 박사라는 타이틀을 얻기도 했다.
이후 일리노이 대학교 교수, 일리노이 주 특수교육국장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2001년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의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에 임명되었다. 이는 당시 한국인 100년 미국 이민사에서 최고위 공직이었다. 그야말로 아메리칸 드림 중의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어 낸 것.
2011년 10월에 담석증으로 검사를 받았는데 당시에는 이상이 없었으나 1달 후에 이상을 느껴 다시 검사한 결과 췌장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고, 2012년 2월 23일에 별세하였다. 시한부 선고에도 의연하게 지인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편지를 쓰고 언론과 인터뷰했다. 두란노서원과 가진 인터뷰
그는 죽기 전에 그를 장학생으로 선발해 준 국제 로터리 재단에 감사의 뜻으로 평화장학금 25만 달러를 기부하였다. # # # # #
3. 여담
1994년 MBC에서 특집극으로 그의 인생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제작하였는데, 제목이 눈먼 새의 노래다. 강영우 역은 안재욱, 석은옥 역은 김혜수가 연기하였다. 동시에 안재욱의 데뷔작이기도 했다. 2002년 느낌표의 코너 <경림이의 길거리 특강>에서도 명사로 출연하였다.독실한 개신교 신자였으며,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을 바탕으로 다수의 자서전을 남기고 간증 집회를 많이 했다. 아들 폴 강(한국명 강진석)은 시각장애인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적 부터 안과의사가 되기로 결심해 이후 안과의로 실력을 인정받아 워싱턴 DC지역 안과의사협회장의 자리에 올랐다. 그야말로 인간승리의 표본. 둘째 아들 크리스 강(한국명 강진영)은 오바마 대통령의 입법특별보좌관이 되어 아버지의 뒤를 따라 차관보가 되었다.
2009 개정(2015년~2018년도) 초등학교 6학년 2학기 국어 교과서에 본인의 이야기가 나와 있다. 2009년 개정판 금성출판사의 중학교 도덕1에도 본인과 관련 내용이 실려있다.
[1]
송윤정, "
“내 장애는 축복이었다”던 그… 양평사람 고(故) 강영우", 「양평시민의소리」, 2013.8.8.
[2]
"... 생애 마지막 시간을 아내와 함께 보내겠다며 지난 주 병원에서 퇴원한 강 박사는 버지니아주 자신의 집에 머물고 있다." / 박승희, "
강영우 박사 “한 달 남은 삶 … 여러분 은혜에 감사”, 「
중앙일보」, 2011.12.27.
[3]
고미혜, "
'백악관 한인 父子' 조력자, 석은옥 여사", 「
연합뉴스」, 2011.10.3.
[4]
현재의 의료기술로 망막박리는 충분히 치료할 수 있고, 최소한 양쪽 실명은 충분히 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