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8:49:33

강성모(독립운동가)

<colbgcolor=#0047a0> 출생 1915년 11월 19일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
사망 1940년 8월 6일 (향년 26세)
만주 북간도 연길현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직업 독립운동가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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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1915년 11월 19일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나자 부여 일대에서 강일(姜日) 등과 함께 학생들의 궐기를 촉구했다. 이후 문맹퇴치운동에 가담해 금강공산협의회(錦江共産協議會) 조직의 일환으로 부여농민구락부(扶餘農民俱樂部)를 결성하여 활동했다. 이후에도 강일구(姜日求), 최재봉(崔在鳳), 장창선(張昌善), 전영철(田泳喆), 강병국(姜秉國), 조병철(曺秉喆), 허원범(許元範), 노명우(盧命愚)·강도형(姜道馨) 등 동지들과 함께 지하운동을 벌여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려 했다.

그러나 1933년 12월 7일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35년 11월 20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고, 출옥 후 형 강병덕(姜秉德)을 따라 만주 북간도 연길현으로 이주했다가 그곳에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6년 강성모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0년에 그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여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