歌 壇
1. 개요
1. 개요
조선 후기에 등장항 가객의 동호인 모임. 조선 후기에는 시조창이 크게 발달하면서 중인 서리층 출신의 가객들이 도시의 문학과 풍류를 주도했다. 이들이 일정한 모임을 갖고 함께 활동한 흔적은 기록에 남아 있지만, 본격적인 활동을 했다는 뚜렷한 기록이 없어 그 양상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해동가요〉의 장복소 서문에 "김수장과 김천택이 경정산으로 상대한 사이인데, 두 사람이 당대의 노래에 통달한 사람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에 의거해 학자들은 김수장과 김천택이 중심이 되어 활동한 가단을 '경정산 가단'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김수장과 김천택은 각각 별도의 가단 활동을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김수장은 말년에 서울 화개동에 노가재( 老 歌 齋)를 짓고, 여러 동료, 후배 가객들과 함께 활발한 시조 창작과 가창• 가집 편찬 활동을 했다. 학자들은 이 모임을 '노가재 가단'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 이세춘 가단', 19세기 후반 박효관과 안민영이 중심이 된 가단인 '승평계', '노인계'도 활발한 활동을 했을 것으로 추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