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05 21:58:58

R101호 추락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파일:R101 추락.jpg

1. 개요2. R1013. 사고 당일4. 사고 이후

1. 개요

1930년 10월 5일 에서 일어난 비행선 사고.

2. R101

파일:R101호.jpg

R101은 영국에서 실험차 만든 초대형 비행선으로, 영연방과 식민지에 최대한 빨리,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갈 수 있도록 만든 비행선으로, R100호와 함께 만들어졌다. 다만 검증된 기술로 민간 회사에서 만든 R100호와 달리, R101호는 정부의 지원 아래에 당시 상용화되지 않은 기술을 토대로 만든 실험작에 가까웠다. 비행선 최초로 디젤 엔진 5개가 설치됐고, 최초로 뼈대를 철골로 만들었다. 이러면서 무게가 좀 추가되어 최대 화물은 30톤 까지만 실을 수 있었다.

237m 길이의 R101호는 안에 공기는 헬륨이 아닌 수소로 채워넣었고, 객실은 최대한 고급스럽게 꾸몄다. 무게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화장실 내 변기도 최소한으로 설치했고, 승객들의 짐 무게도 제한했으며, 창문도 유리가 아닌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 의외로 안엔 흡연실도 존재했다. 흡연실은 석면으로 도배됐고, 라이터 또한 체인으로 묶여있어 들고 나갈수 없게 안전하게 만들었다. 층은 2개 층으로 나뉘어 침실과 식사실, 흡연실, 전망대 등 당시로서는 초호화 비행선이었다.

R101호가 대중에 공개되던 날에는 무려 10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다.

3. 사고 당일

R100호가 캐나다로 여행을 마친 가운데, R101호도 인도로 여행을 떠날 준비를 끝냈다. 이륙날인 1930년 10월 4일, 비가 많이 내리긴 했으나 비행선은 예정대로 출발했다. 이륙 날짜를 날씨를 보고 맞춘게 아니고, 대중에게 공개하기 위한 정치적 이유로 맞췄기 때문이다. 비행기는 처음으로 연료탱크를 가득 채워 최대 중량 상태로 이륙했다.

하지만 다음날 오전 2시, 프랑스 파리 상공을 지나던 도중 돌풍을 만나 동체가 손상됐고, 수소가 새어나오면서 빠른 속도로 추락 했다. 기장은 80도 각도로 추락하던 비행선을 균형잡고 긴급 착륙을 시도했으나, 비행기는 기운 채로 추락해 머리 부터 먼저 땅에 닿았다. 이후 꼬리가 닿으면서 수소가 더 세어나왔고, 수소가 엔진에 닿으면서 엔진 열로 불이 붙어 폭발했다.

탑승자 54명 중 6명만 간신히 생존했다. 48명은 사망했다.

4. 사고 이후

사고 이후 영국에선 비행선에 대한 지원이 끊기다시피 했고, R100호도 사고 이후 대중들의 관심이 끊겼다. 이후 R100호도 스크랩처리 됐다. 대신 영국에선 비행선이 아닌 비행기에 더 투자하기 시작했다.

헨리 제임스 리치(Henry James Leech)는 사고 당시 간신히 살아남고 탈출하면서 아서 디즐리(Arthur Disley)를 같이 끌고 나와 그의 목숨을 구했다. 당시 영국 국왕 조지 5세는 헨리의 용맹함을 칭송하며 그에게 앨버트 메달 #을 수여했다.

추락사고 현장에는 현재 사고가 일어났던것을 알리는 추모비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