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발
미 해군은 1925년에 육상기지와 함재기로 모두 이용할 수 있는 견고하고 믿을 만한 신형 관측기에 관한 소요 제기를 일으켰다. 이 새로운 계약에 도전장을 내민 챈스 보우트(Chance Vought Corporation) 사는 1917년에 설립된 신규 메이커였으나, 1925년에 복엽 훈련기 보우트 VE-7을 해군에 납품하면서 이제 막 신뢰를 얻기 시작한 업체로 2대의 시제기에 대한 계약을 따내기에 이른다. 해적이란 의미를 가진 커세어(Corsair)라는 별명이 붙여진 이 복엽 수상기는 당시 막 출시된 최신예 공랭 엔진인 프랫&휘트니 와스프(Pratt & Whitney Wasp)를 중심으로 설계된 최초의 실용 항공기이기도 했다. 410마력을 넘어서는 와스프 엔진은 기존의 수랭식 리버티(Liberty) 엔진과 커티스-히스파노(Curtiss-Hispano) 엔진의 성능에 필적하는 최초의 공랭식 성형 엔진으로, 그 무렵 육군과 해군의 기대를 모으고 있었다. 만들어진 보우트 커세어는 결국 그때까지 생산된 해군기 중에서 가장 유용하고 다목적인 탁월한 성능을 가진 것으로 판명났다. 해군에 의해 O2U-1로 지정된 새로운 복엽기는 원하는 것 이상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커세어는 와스프 엔진이란 탁월한 성능을 보인 새로운 심장에도 힘입었으나, 여러가지 측면에서 그 무렵 첨단 기술을 적용시킨 수상기였다. 당시 보우트 기술진들은 자전거 프레임으로 쓰이기 시작한 크로몰리 강관으로 동체의 뼈대를 용접해 만드는 기술을 빠르게 받아들였고, 결과적으로 이 수상기는 놀라운 내구성을 가진 비행기로 태어났다. 그 시절의 저출력 엔진으로 날으는 복엽기들은 연료 탱크의 위치 선정은 까다로운 문제였다. 금속제 항공기 시대에나 가능한 인테그럴 텡크가 어렵기 때문에 가급적 조종석 뒤로 바짝 당겨 설치하거나 날개의 스파 중앙에 무거운 휘발유를 담도록 했지만 이 경우 연료가 줄면서 무게 중심이 변하는 문제가 있었다. 보우트 개발진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경이 큰 성형 엔진 뒤쪽으로 뺀 가상선에 동체를 맞춰 디자인하고, 조종석과 그 동체 사이의 공간에 개솔린을 주입하도록 만들었는데 그걸 가리켜 치크 탱크(cheek tank)라고 했다. 가장 무거운 부품인 엔진의 바로 뒤에 연료를 배치하자, 안정성과 기동성이 모두 올라가는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었다.
2. 미국제 항공기의 약진
1926년에 평가를 위해 처음 해군항공대에 인도된 커세어 시제기는 관측기로 불렸지만, 그밖에 많은 역할도 능숙하게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빠르게 증명했다. 고정식 랜딩기어와 플로트로 쉽게 전환 가능한 구조를 가진 이 비행기는 함대에서 즉각 호평을 받기 시작했고 추가 배송을 위한 정부 계약을 맺었다. 해군항공대에 취역한 커세어는 얼마 안가 고도와 속도 분야에서 유럽 열강의 난다긴다하는 기체들을 제치고 4개의 세계신기록을 달성했고, 미국제 항공기의 우수성이 두각을 나타나게 한 기종으로 거듭났다. 이와 같은 호평은 결과적으로 멕시코, 쿠바, 페루, 아르헨티나, 브라질 같은 신대륙 국가들은 물론 독일과 영국, 일본 같은 강대국에서도 주문이 이어지면서 그 시대의 해군기로는 상당히 많은 숫자인 580대를 납품하고 생산면허권도 팔게 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O2U 커세어의 생산형은 1927년 12월에 해군과 해병대에 인도가 시작되면서 즉시 작전 태세를 갖추었다. 1928년에 니카라과 전역에서 해병대의 커르세어는 요새화된 진지에 대하여 탄착 관측과 정찰 같은 지원 임무를 시작으로 기총소사, 수평 폭격, 그리고 당시만 해도 시도되지 않던 강하 폭격 같은 작전을 수행하면서 더 높은 명성을 얻었다. 1,500명의 니카라과 반군을 공격한 4대의 커세어 편대는 대공화기까지 갖춘 진지 위로 낮게 날면서 기총소사와 후방석의 기총으로 지상군을 사격했고, 날개 아래 매단 116파운드 폭탄 4발을 떨구며 종횡무진 휩쓸었다. 이 작전에서 해병대 중위 프랭크 실트(Christian Frank Schilt : 1895~1987)는 커세어를 조종하면서 명예훈장을 받기도 했다.
3. 만능 수상기
개량형에 실린 출력이 525마력으로 보강된 프랫&휘트니 와스프 엔진에 힘입은 커세어의 전술적 유연성은 순식간에 팔방미인을 의미하는 "잭 오브 올 트레이드(jack-of-all-trades)"라는 명성을 얻었다. 수륙양용 성능을 갖도록 바퀴 달린 플로트를 붙인 커세어는 육상 활주로는 물론 항공모함에서 이함할 수도 있었고, 전함과 순양함에서는 캐터펄트로 쏘아내는 수상 정찰기로 이용될 수 있으며, 그 상태 그대로 항모의 비행갑판에 착함할 수도 있었다. 보우트의 설립자 챈스 보우트(Chance M. Vought : 1890~1930) 대표가 손수 고안하고 설계한 그 수륙양용 플로트는 탈착식이어서 쉽게 떼어내 보관할 수도 있었다.
O2U 커세어 시리즈가 보여준 그 높은 성능과 다재다능한 탁월함은 슈나이더 트로피에서 활약한 커티스 레이서와 함께 곧 세계에 우뚝 선 미국제 항공기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 그래서 보우트 사는 커세어라는 이름을 한번만 쓰고 버리지 않고 1933년에 함상폭격기 SBU(Vought SBU Corsair)와 1938년에 등장한 F4U(Vought F4U Corsair), 그리고 1965년에 그들의 유작이 된 함상공격기 A-7( A-7 Corsair II)에도 붙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