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6 13:15:09

마마스 앤 파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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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스 앤 파파스'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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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5ARYZvK4L2afx8AcWcf6kF-1.jpg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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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마마스 앤 파파스
THE MAMAS & THE PAPAS
헌액 부문 공연자 (Performers)
멤버 캐스 엘리엇, 미셸 필립스, 데니 도허티, 존 필립스
입성 연도 1998년
후보자격 연도 1992년
후보선정 연도 1997년, 199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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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클레임드 뮤직 선정 1960년대 아티스트
7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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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6C6C6C><colcolor=#fff> 마마스 앤 파파스
The Mamas & the Papas
파일:external/m.wtae.com/OTD-March-18---John-Phillips-jpg.jpg
결성 1965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전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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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 도허티 (1940~2007)
캐스 엘리엇 (1941~1974)
존 필립스 (1935~2001)
미셸 필립스 (1944~)
질 깁슨 (1942~)
스콧 매켄지 (1939~2012)
장르 포크 록, 사이키델릭 팝, 선샤인 팝
활동 1965년 ~ 1968년
1971년
링크 공식 사이트

1. 개요2. 경력3. 멤버
3.1.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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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표곡 California Dreamin'

1965년 캘리포니아에서 결성된 4인조 혼성 포크 록 그룹.

여성 멤버인 캐스 엘리엇, 미셸 길리엄, 그리고 남성 멤버인 데니 도허티 존 필립스로 구성됐다. 1965년 말에 < California Dreamin'>과 < Monday, Monday>, 1966년에는 <I Saw Her Again>을 던힐(Dunhill) 레코드사에서 발표해 크게 히트시켰다. 이들의 마지막 히트곡 Dream A Little Dream of Me도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곡이다.

60년대 말, 히피 세대를 대표하는 그룹으로 꼽힌다.

2. 경력

이들은 마마스 앤 파파스를 결성하기 전에 각자가 연예계에 발을 들여 놓고 활동을 했었는데, 캐스 엘리엇과 데니 도허티는 함께 더 머그웜프스라는 그룹에서 활동을 했고, 존 필립스는 쟈니 맨(Johnny Man)이라는 그룹에서 노래를 불렀으며, 미셸 길리엄은 모델로 독자적인 활동을 벌이던 인물이다.

매끄러운 포크 록 사운드와 항상 강한 인상을 주는 보컬 하모니가 이들의 성공 비결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존 필립스의 작곡 솜씨는 수준급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스콧 매켄지가 히트시켰던<San Francisco(Wear Some Flowers In Your Hair)>와 비치 보이스의 < Kokomo>를 작곡한 장본인이다.

이러한 그들의 명성은 존과 미셸의 애정 문제로 어려움에 직면하였다. 그룹이 데뷔하기 전인 1962년 12월 31일, 존 필립스와 미셸 길리엄은 결혼을 하였으나 1964년 잠시 갈라졌다가[1] 재결합하여 마마스 앤 파파스를 결성하였다. 그러나 그룹 활동을 하면서 미셸 길리엄의 연속된 불륜으로 두 사람은 파경에 이르렀다.[2] 1965년 미셀은 같은 그룹의 멤버 데니 도허티와 불륜을 저질렀고[3] 데니와의 관계가 마무리 된 직후 미셸 길리엄은 다시 버즈의 멤버 진 클라크와 불륜을 저질렀다. 결국 이에 폭발한 존에 의해 미셸은 2집 레코딩과 앨범 커버 촬영이 완료된 직후 밴드에서 쫓겨났다.

이후 그룹은 미셸 대신 프로듀서 루 애들러의 여자친구인 질 깁슨을 고용하였으나 얼마 못가서 질이 그룹에서 나가고 2집 앨범 발매 일주일 전인 1966년 8월 23일에 미셸이 그룹에 복귀하였다. 그러나 사실상 존과 미셸의 관계는 이미 끝난것이나 다름없었다. 이후 존 필립스는 대놓고 그루피들과 불륜을 저질렀으며[4] 미셸을 폭행해서 병원에 입원시키기도 하였다. 결국 미셸은 존이 작곡한 3집의 수록곡 "String Man"의 작사와 리드 보컬을 맡아서 대놓고 존의 이러한 행각을 비난하기에 이른다.

게다가 이 시기에 마마스 앤 파파스 활동으로 번 돈으로 최신식인 8트랙 녹음기를 설치한 자신의 개인 스튜디오를 만든 존 필립스는 4집 녹음을 해당 스튜디오에서 진행하였는데 앨범을 녹음하면서 1곡의 보컬을 녹음하는데만 1달을 소비하는 등 완벽주의를 강하게 밀어붙였고 나머지 멤버들은 이에 크게 반발한다. 여기에 마마스 앤 파파스 멤버들이 곧 발매될 4집을 홍보하기 위해 유럽으로 떠났을 때 4집의 리드 싱글 <Dream a Little Dream of Me>의 단독 보컬을 맡은 캐스 엘리엇이 호텔에서 담요 2장을 훔친 혐의로 체포되어 4집 활동 계획이 무산되는 일까지 발생한다.

이후 존 필립스는 캐스 엘리엇을 공개적으로 비난했고 이미 자신의 솔로 1집 녹음을 끝마친 바 있던 캐스 엘리엇은 존 필립스와의 관계가 악화되자 미련없이 팀을 탈퇴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이렇게 이런저런 일이 맞물린 결과 마마스 앤 파파스는 1968년 4집을 발매한 직후 공식적으로 해체를 발표했다.

이후 존 필립스는 작곡가 겸 음반 프로듀서로, 미셸 길리엄은 영화 배우로, 캐스 엘리엇과 데니 도허티는 솔로 가수로 각각 활동하다가 1971년에는 잠시 재결합하여 「People Like Up」이란 앨범을 발표, 결성 초창기에 누렸던 인기를 만회하려 하였지만 결국 예전 만큼 인기를 얻지 못했다.

1974년에는 성공적인 솔로 커리어를 걷고 있던 캐스 엘리엇이 런던에서 비만과 마약 중독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1988년에 쓰여진 데이비드 크로스비의 자서전에 따르면 캐스 엘리엇은 마마스 앤 파파스 시절부터 이미 아편, 코카인에 중독되어 있었고 런던에서 솔로 활동을 했을 무렵에는 헤로인 중독에 빠져있었다고 밝혔다.

1990년대에 들어서 영화 중경삼림이 히트하여 데니 도허티와 존 필립스, 그의 딸과 함께 재결성해 활동하기도 했다. 그런데 2009년에 존 필립스의 딸 매켄지 필립스가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놓았다.[5] 사실이면 클라우스 킨스키의 사례와 유사한 막장부모.[6] 이외에도 존 필립스는 마약 중독이 굉장히 심각했던걸로 유명하다. 존 필립스에게 헤로인을 전파한 장본인인 키스 리처즈마저 존에게 너무 마약을 남용한다며 나무랐을 정도였다고 하니...

2001년에 존 필립스, 2007년에는 데니 도허티가 차례로 사망하면서 현재 생존 멤버는 미셸 길리엄이 유일하다.

3. 멤버

  • 캐스 엘리엇: 1941년 9월 19일 ~ 1974년 7월 29일 (향년 32세)
    팀의 여성 메인 보컬.
  • 존 필립스: 1935년 8월 30일 ~ 2001년 3월 18일 (향년 65세)
    팀에서 기타와 작곡을 담당하는 인물이자 리더였다.
    본명은 존 에드먼드 앤드류 필립스.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패리스에서 출생했으며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에서 간경화로 사망하였다. 음악활동을 하기 전에는 1942년부터 1946년까지 버지니아 주 브리스토우에 있는 린턴 홀 군사학교에 다녔는데[7] 이곳에서 10대 소년들로 구성된 음악그룹을 결성하였으며 복무를 마친 뒤에는 쟈니 맨을 시작으로 하여 더 조르네이먼[8], 비치 보이스에서 활동하였다.[9] 1967년에 미국의 캘리포니아에서 유명한 음악축제인 몬트레이 팝 페스티벌을 창시하여 미국의 캘리포니아를 밤문화의 중심지로 만든 인물이다.
  • 데니 도허티: 1940년 11월 29일 ~ 2007년 1월 19일 (향년 66세)
    팀의 남성 메인 보컬.
    본명은 데니스 제라드 스티븐 도허티.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핼리팩스에서 태어나 온타리오 주 미시사가에서 타계했다.
    컬럼비아 레코드사 소속의 록 밴드인 헬리팩스 3세[10] 출신으로 나중에 던힐 레코드로 이적하여 캐시 엘리엇과 함께 더 머그웜프스에서 활동한 후에 필립스 부부를 만나 마마스 앤 파파스를 결성하였다. 또한 캐시 엘리엇의 경우 그녀가 빅 3의 멤버로 활동하던 시절에 이들의 작곡을 해줌으로써 각별한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그룹을 해체하고도 음악활동을 계속하다가 1982년에 필립스 부부의 딸인 멕켄지 필립스와 밴드 Spanky and Our Gang 출신의 일레인 맥팔레인으로 구성된 뉴 마마스&파파스를 결성하여 명맥을 잇게 하였다. 1993년에는 성우로 데뷔하기도 했으며 1999년에는 아예 배우로 전업을 하여 CBC TV의 드라마 시리즈안 Pit Pony에서 주인공인 찰리 맥기니스를 연기하기도 하였다. 캐나다 TV 드라마인 '트레일러 파크 보이즈'에서 FBI의 특수요원인 라이언 찰크 역을 맡아서 열연하던 도중에 복부 대동맥류 파열로 인해서 수술을 한후 병세가 악화되어 시즌 7의 10화를 끝으로 하차하여 이듬해 1월에 신장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사망 후에는 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인 '나는 여기에 있다!'가 2007년 5월에 개봉했다.
  • 미셸 필립스: 1944년 6월 4일 ~ (현재 77세)
    서브 보컬 및 코러스를 담당했으며 그룹의 얼굴마담이자 작사가이기도 했다.
    본명은 홀리 미셸 길리엄. 캘리포니아 주 롱비치 출신이며 현재까지도 가수 겸 작곡가이자 배우로 활동중이다.
    멕시코 시티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였으며 특기는 스페인어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미셸의 어머니가 죽은 후 무려 다섯번이나 재혼을 했다고 한다. 본래 청소년기 때부터 모델로 독자적인 활동을 하다가 18세라는 어린나이에 존 필립스와 결혼한 후 음악을 공부하기 시작하여 1965년에 마마스 & 파파스의 멤버로 합류하였고 그룹의 히트곡인 캘리포니아 드림을 데니 도허티와 공동으로 작사하였다. 1967년 8월에 마지막 공연을 가진후에 1969년 5월에 존 필립스와 이혼을 한후 1971년부터 영화배우로 전향하여 데니스 호퍼 감독의 영화인 마지막 영화 (1971)에서 여주인공으로 출연하는 등 많은 작품에 출연하여 연기자 활동을 하다가 1977년에 잭 니츠쉬라는 A&M 레코드의 프로듀서와 재혼하였으며 솔로 앨범인 로맨스의 희생자를 발매했다.
  • 스콧 매켄지: 1939년 1월 10일 ~ 2012년 8월 18일 (향년 73세)
    본명은 필립 왈라흐 블론드하임 3세. 플로리다 주 잭슨빌 출신이며, 어릴 적부터 존 필립스와 친분이 있었다. 엄밀히 따지면 멤버는 아니지만, 1980년대에 사실상 재결성인 필립스와 도허티가 있던 뉴 마마스 앤 파파스에서 1987년부터 1998년까지 활동했다.

3.1. 여담

  • 남진, 나훈아, 윤정희 등이 출연했던 국내 고전 영화 '어머님 생전에(1973년)'에 마마스 앤 파파스의 <California Dreamin'>이 나온다. 클럽에서 밴드가 이곡을 연주하는데 남진이 신나게 춤을 춘다.
  • 1995년에 개봉한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이 히트하면서 이들의 대표곡인 < California Dreamin'>까지 덩달아 인기를 얻었고 이때문에 원년 멤버가 없는 마마스 앤 파파스가 급조되어 1996년 4월 21일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내한공연을 가졌으며 그로부터 이틀 뒤에는 KBS 빅쇼에 출연해 이 노래를 라이브로 부른 일이 있었다.

    마마스 앤 파파스는 1968년에 해체된 이후 존 필립스의 주도하에 새 멤버를 들여 1982년부터 활동을 재개하였는데 예전만큼의 반응은 없었고 그 후로 멤버의 교체가 빈번한 상태였다. 1996년에 내한 공연이 이뤄질 당시에는 존 필립스마저 빠져 원년 멤버인 데니 도허티를 중심으로 재편된 상태였는데 막상 내한 공연에 참석한 멤버는 나중에 합류한 멤버인 스콧 매켄지 한 명뿐이었다. 나머지는 내한 공연을 위해 급조한 멤버였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당시 이들의 공연은 노래들이 뭔가 맥빠진 느낌을 주었다.[11]


[1] 이 때 존 필립스가 자신의 곁을 떠난 미셸을 그리워하며 노래를 하나 썼는데 바로 마마스 앤 파파스의 대표곡들 중 하나인 <Look Through My Window>이다. 당시 존 필립스는 미셸이 다른 동네로 가버렸다고 생각하며 슬픈 심정으로 이 곡을 썼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당시 미셸은 존과 단 1블록 떨어진 곳에 머물고 있었다고 [2] 다만, 실질적인 이혼은 1969년에 했고 미셸은 1968년, 존의 딸인 매켄지 필립스도 낳았다. [3] I Saw Her Again이 이 때의 일을 바탕으로 존 필립스와 데니 도허티가 공동으로 작사를 맡아 완성한 곡이다. [4] 마마스 앤 파파스의 마지막 히트 싱글 <Twelve Thirty (Young Girls Are Coming to the Canyon)>은 존 필립스가 젊은 여성 그루피들의 모습에 영감을 얻어 만든 곡이다. [5] 존 필립스는 딸 매켄지 필립스(당시 19세)와 마약에 취한 채 동침을 했고, 이후에 메켄지는 아버지와 함께 '뉴 마마스 앤 파파스'라는 밴드로 투어 활동을 하며 합의하에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었다고 했다. [6] 일단 매켄지의 어머니인 미셸 필립스, 존의 세번째 부인과 세번째 부인에게서 얻은 딸 비주는 부정했다. 반대로 매켄지의 이부 여동생인 시나와 데니 도허티 장녀 제시카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제시카의 주장에 따르면 데니 도허티도 사실을 알아차리고 충격을 받았다고. 워낙 민감하고 충격적인데다 교차 검증도 불가능한 사항이라 이후 언급은 없는 상태. [7] 참고로 영화 대부로 유명한 미국의 저명한 배우인 말론 브란도와 동기라고 한다. 나이는 말론 브란도가 한참 위였으며 존 필립스는 자서전에서 말론 브란도를 항상 인상이 거칠었던 사나이라고 회고했다 [8] 스콧 매켄지, 딕 웨이즈먼을 주축으로 결성하였다. [9] 비치 보이스의 경우에는 객원멤버로 아주 잠시동안 활동했다. [10] 더 머그웜프스의 질 야노프스키, 리처드 번, 팻 라크로이스 (1938.8.4~)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11] 데니 도허티는 오지 않았고, 존 필립스는 작곡가로 활동 무대를 옮겼으며 미셸 필립스는 아예 음악을 그만두고 배우로 전업했기 때문이다. [12] Will You Love Me Tomorrow Soldier Boy를 부른 미국의 R&B 걸그룹 더 셔렐스의 곡을 커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