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일본의 사이키델릭 록,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불모지에서 배출된 세계적인 사이키델릭 뮤지션으로 알려져있다.2. 상세
일본의 저명한 아티스트 우치다 유야를 중심으로 1967년 결성된 '더 플라워즈'라는 밴드가 전신격 밴드다. 본인이 보컬로 참여하여 여성 보컬과 사실상의 세션 멤버들을 돌려가며 활동하던 밴드로서 당시로선 일본 내에선 꽤나 첨병격 뮤지션이었다고 한다. 당시로선 영미권에서도 구하기 힘들었던 기타 이펙터를 들여와 사이키델릭 어법을 강하게 담은 작품을 내놓기도 하고 더 플라워즈의 이름으로 앨범도 발매하던 이력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커버곡에 불과했던 한계에 부딪혔고 결국 드러머를 제외한 멤버를 전원 재편하면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된다.이윽고 우치다 유야는 프로듀싱, 매니저 역할로만 전념하면서 문서명과 같은 '플라워 트래블링 밴드'로 밴드명을 바꾸고 미국내에서 활동하게 된다. 현지에서 각종 영감과 연주력을 기르던 멤버들이 자작곡을 생산하기 시작하고 각종 뮤지션과 프로듀서를 접하며 음악적인 범위를 넓혀가며 현지에서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다.[1] 이는 1969년 당시로선 영미권에 희귀했던 일본인 뮤지션으로서 사실상 개척이나 다름없던 시도였다.[2] 캐나다에서 나름의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고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와도 협연을 갖는 등 이들의 활동 반경은 제법 넓었다.
그리고 1972년 일본으로 금의환향하며 현지 공연을 위주로 활동하며 국내 인지도를 쌓는 활동에 전념하게 된다. 이듬해 롤링 스톤스 일본 투어의 오프닝 밴드로도 발탁되기도 했지만 믹 재거의 약물 문제로 비자 거부와 이로 인한 투어가 최소되는 악재로 이름을 알릴 기회는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서 앨범 하나 발매하는 활동도 이어가긴 했지만 유야를 포함한 멤버 전원이 밴드 외적인 활동에 전념하면서 밴드는 와해상태에 이르게 된다.
일본 현지에선 요닌바야시, 사디스틱 미카 밴드, 카르멘 마키 등으로 대표되는 프로그레시브 록이 1970년 중반에서야 성행하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시대를 너무 앞질러갔던 셈. 이들의 연주력들은 기라성 영미권 뮤지션에게 뒤떨어지지 않았고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사운드 어법을 앞서서 일본에 이식했다는 점에서 후대 큰 평가를 받는 유산으로나마 남게 되었다.
허나 그런 이들에게 한계점이 있었다면, 전곡 가사가 영어로 되었다는 점. 핫피 엔도가 활약하기 이전에는 일본어 가요가 미진하던 이유도 있고 유야의 영어 자부심도[3] 이런 분위기에 한몫하기도 했다. 때문에 사운드적인 선구자와는 별개로 태동기에 활약했음에도 일본 가요의 아버지라는 평가로선 인색한 편. 우치다 유야가 일본 현지 이미지가 나쁜 것도 평가 절하에 한 몫했다. [4]
이렇게 허공을 맴돌던 밴드는 2007년이 되어서야 재결성 되어 황혼기의 마지막을 불태우게 되었다. 어느덧 각 분야의 거장이 된 멤버들끼리 일본과 영미권을 넘나드는 투어를 돌고 앨범도 하나 발매하는 창작활동도 이었지만, 보컬 야마나카 조가 폐암 투병을 맞고 활동은 중단되었고 2011년자로 별세하면서 밴드는 완전한 종지부를 찍게 된다. 주축이었던 우치다 유야 또한 2019년 폐렴으로 타계했다.
3. 멤버
- 더 플라워즈 시절
- 플라워 트래블링 밴드 시절
4. 디스코그래피
- Challenge! (1969)[5]
- Anywhere (1970, 라이브 앨범)
- Satori (1971)
- Made In Japan (1972)
- Make Up (1973, 더블 앨범)
- The Times (1975, 베스트 앨범)
- We are here (2008)
[1]
특히 첫 앨범
Satori는 영미권에서도 유명한 일본 사이키델릭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2]
이전에도
사카모토 큐의
엔카 음악 스키야키가 빌보드 1위를 달성했던 성과는 있었지만, 록밴드로서의 시도는 사실상 이들이 최초였다.
[3]
앙드레 김이나
쟈니 키타가와와 비슷하게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쓰는 괴상망측한 어투를 구사하기로 유명하다.
[4]
항목에도 나오지만 기행과 극우 성향은 그렇다 쳐도 스토킹 및 가택 침입, 가정 폭력 논란이 터졌던 인물이다. 오죽 했으면 키키 키린이 이혼 못 하게 억지로 잡아뒀다고 했을 정도.
[5]
더 플라워즈 시절 발매된 유일한 앨범으로 멤버 전원이 누드로 촬영된 커버 아트로 당대 일본에 적잖은 논란과 파격을 선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