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1 22:24:48

AC/DC(밴드)/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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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도약기 (1973 ~ 1978)3. 최전성기 (1979 ~ 1984)4. 침체기 (1985)
4.1. 부활 (1986 ~ 1990)
5. 이후 (1991 ~ )

1. 개요

오스트레일리아의 록밴드 AC/DC의 역사를 서술한 문서이다.

2. 도약기 (1973 ~ 1978)

파일:1974ACDC.jpg
결성 후 (1975년) 의 AC/DC.[1]
1973년 영 형제를 축으로 결성되었으며, 이름은 영 형제의 누나[2]의 재봉틀에 쓰여있던 AC/DC(교류/직류 겸용)라는 표시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항상 시끄럽게 연주하던 영 형제를 재봉틀에 비유한 거라고. 이들의 나이 많은 형인 조지 영이 프로듀서겸 매니저 역할을 했다.

1975년 발매된 첫 앨범 <High Voltage>가 호주에서만 판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40만 장이나 팔리자 연달아 <T.N.T>를 발매한다.두 앨범의 성공으로 AC/DC는 호주에서 인기있는 록 밴드가 되었으며 특히 앵거스 영의 독특한 스쿨룩 패션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앵거스의 부모가 밴드를 반대해 몰래 교복을 입고 활동하다 굳어졌다는 설이 있는데, 본인이 증언하기를 형제의 누나인 마가렛이 앵거스가 아직 학생 신분이니까[3] 옷은 교복을 입고 공연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한 뒤로 입었다고 한다. (그 전에는 스파이더맨이나 슈퍼맨 등 여러 코스튬을 착용했었다.) 앵거스 특유의 미친듯이 발을 구르며 뛰어다니는 퍼포먼스 또한 이 때 부끄러움을 떨쳐 내기 위해서 했다고. 또한 깁슨 SG와 마샬 앰프만을 사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1976년에는 <High Voltage>라는 앨범을 발매한다. (1975년 발매된 1집 앨범과 이름은 같지만 전혀 다른 앨범이다.) 이 앨범은 전작이자 호주에서 크게 히트한 <T.N.T> 트랙의 대부분이 비슷한데, 그냥 <T.N.T> 트랙 몇 개만 빼고 다른 히트곡들을 집어넣어 해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만들어진 비틀즈 Meet the Beatles! 같은 앨범이라고 보면 된다. 이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300만 장이 팔리며 호주 내에서만 인기 밴드였던 AC/DC가 해외로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전작의 세계적인 히트에 힘입은 밴드는 네 달 후 <Dirty Deeds Done Dirt Cheap>을 발매했다. 이 앨범은 미국 내에서 600만 장을 판매하고 전 세계적으로는 8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AC/DC가 미국에서 입지를 굳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Dirty Deeds Done Dirt Cheap>이 너무 히트하는 바람에 이후에 등장한 <Let There Be Rock>과 <Powerage> 앨범은 전작에 비해 크게 뜨지는 못했다. 그러나 전작의 그림자에 가려져 저평가되고 있는 것뿐이지 이 앨범들도 플래티넘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흥행을 보였다. 또한 이 두 앨범에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AC/DC의 음악 스타일이 정립되었고, 전체적으로 매끄럽고 완성도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음악적으로도 진일보했음을 증명했기 때문에 AC/DC의 역사에서 중요한 앨범들이다.

3. 최전성기 (1979 ~ 1984)

파일:Michaud-ACDC-1200.jpg 파일:ACDC1981.jpg
Highway to Hell 발매 당시의 AC/DC.[4] 새로운 보컬과 함께한 1981년의 모습[5]

전작은 음악적인 호응을 받았지만, <Dirty Deeds Done Dirt Cheap>에 비해 크게 저조한 판매고를 보였다. 이를 인지한 밴드는 모든 전작들을 뛰어넘는 성공작을 만드리라 굳게 결심한다.

그렇게 하여 1979년에 발매된 < Highway to Hell>이 1500만 장 이상 팔리는 대성공을 거두면서 AC/DC는 세계적인 톱밴드로 거듭나기 시작한다. 이때 영 형제가 보여준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리프와, 본 스콧이 보여준 색다른 보컬 스타일은 이후의 록 음악을 뒤틀어 놓았고, AC/DC만의 색깔을 확실히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이제 막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리게 된 이들은 1980년 2월 19일, 본 스콧이 전날부터 새벽까지 클럽에서 만취한 후 본인의 차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하며 엄청난 위기를 맞게 된다.[6]

영 형제는 크게 낙담하여 밴드를 해체할 생각까지 하였으나 스콧의 가족들의 격려로 일어섰고, 칭찬에 인색했던 본이 AC/DC의 백업 보컬로 삼고 싶다고 말하며 극찬을 했던 브라이언 존슨을 보컬로 맞이하며 그해 7월 < Back in Black>을 발매한다. 그런데 본 스콧을 추모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이 앨범이 현재 5000만 장 이상이 팔리며 전 세계적인 초대박을 치게 된다.

마이클 잭슨 Thriller, 이글스의 Their Greatest Hits 다음으로 세계에서 세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이 되었으며, 이 앨범을 통해 AC/DC는 그동안 손대지 못했던 영국 TOP 10에도 진입했고, 미국에선 56주간 빌보드 차트를 차지하며 단순히 인기 있는 록밴드를 넘어 역사상 최고의 밴드 중 하나로 발돋움한다. 앨범 자체의 음악성과 영향력도 매우 높이 평가받지만 보컬의 죽음이라는, 밴드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상황이자 위기를 빠르게 극복하고 성공작을 만들어 냈다는 점도 상당히 높이 평가받는다. 앨범은 단순히 무식하게 뜨기만 한 게 아니라 올뮤직이나 롤링 스톤 같은 까다로운 잡지들에게서 5점을 따낸 음악적으로도 훌륭한 명반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1981년에 바로 다음 앨범인 <For Those About To Rock>은 데뷔 이후 최초로 빌보드 앨범차트 1위를 거머쥐는 쾌거를 거둔다. 이 앨범은 AC/DC와 브라이언 존슨이 만나 그 개성을 최대한 뽑아내 만든 곡들로 구성된 앨범이다.

4. 침체기 (1985)

엄청난 명반을 낸 밴드들의 상황이 그렇듯이 그 이후 앨범으로는 상당히 부진함을 보이는데 83년 <Flick Of The Switch> 앨범은 Guns For Hire, Nervous Shake Down 등 5곡 정도를 히트시키며 괜찮은 완성도를 보였으나 <Fly on the Wall> 앨범에서 최악의 슬럼프를 겪는다.[7] 이때 부진의 원인은 전작인 <Back In Black> 앨범이 워낙 버릴 것 하나 없는 명곡들로만 구성돼 있어서 그에 따라갈 음반을 만들기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 앨범을 들어보면 확실히 완성도가 떨어진다. 그 이유 중에 몇가지를 들자면, 보컬인 브라이언 존슨은 이전 보컬인 본 스콧보다 훨씬 스타일이 굳어있는 보컬이라 그의 영입 이후로 음악색이 갑자기 지나치게 단조롭게 변했기 때문이다.

4.1. 부활 (1986 ~ 1990)

이러한 단조로움은 앨범 <Who Made Who>에 들어서 비로소 극복되며, 이 앨범을 기준으로 AC/DC는 다시 부활기에 접어들게 된다. 사운드트랙 형식으로 발매되었지만 500만 장 이상이 판매되며 히트했다.

이후 1990년, <Razor's Edge>가 대박을 치면서 진정한 부활을 맞는다. 멤버들의 나이가 슬슬 40대에 접어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젊은 그룹들을 압도하는 피 끓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고, 이 덕분에 오늘날까지 팬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앨범 중 하나가 되었다. <Razor's Edge> 앨범 수록곡인 'Thunderstruck'은 여러 매체들에게 'Back In Black'이나 'Highway To Hell'보다 AC/DC의 최고 명곡으로 평가받는다.

5. 이후 (1991 ~ )

파일:acdc2018.jpg
2018년의 모습[8]

1991년은 AC/DC의 최고 라이브 중 하나인 Donington 라이브가 있었다. AC/DC가 노련함과 스태미너가 최고 정점에 달했던 라이브이기도 하다. 특히 필 러드 대신 들어온 브리티쉬 록의 베테랑 대머리 드러머 Chris Slade는 무지막지한 드러밍을 선보였다.[9][10] 'Whole Lottta Rosie' 'Let There Be Rock' 라이브를 보면 AC/DC에서 여태 듣지 못한 타이트한 스피디함을 보여준다.

이 앨범 이후로 한동안은 딱히 히트 앨범을 발매하지 못했지만, 여러 라이브 투어를 다니며 북미나 유럽에서 더 큰 인기를 얻었고, 멤버 전원이 할아버지가 된 후에도 꾸준히 투어를 다니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2003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2008년 새 앨범 <Black Ice>를 발매, 당시 비슷한시기에 발매 됐던 메탈리카 그린 데이 등의 앨범보다 많은 앨범 판매량을 보여주며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증명했고, <Black Ice> 는 2008년에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이 되었다.[11]

리듬 기타인 말콤 영이 치매로 인해 조카인 스티비 영이 리듬 기타로 대신 참여하게 되었다.

2016년, 브라이언 존슨이 밴드를 잠정탈퇴하고, 건즈 앤 로지스의 보컬 액슬 로즈가 영입되어 투어를 끝마쳤다.

밴드의 전성기를 함께한 베이시스트 클리프 윌리엄스가 2016년 'Rock or Burst' 투어를 끝으로 은퇴하겠다고 발표하였다.

2018년에 기존 멤버들에 새로운 베이시스트와 액슬 로즈를 멤버로 신보를 낸다는 기사가 나왔다. 브라이언의 복귀가 불투명해진 상황.

2019년 1월 31일 메탈 메거진 Loudwire에서 브라이언 존슨이 AC/DC에 다시 합류했다고 전했다!

결국 엔지니어의 증언으로 신보 작업 중임이 기정사실화 됐다. #

2020년 9월 30일, 브라이언 존슨과 필 러드, 그리고 클리프 윌리엄스의 복귀 소식이 전해졌다! 참조 이로써 클래식 AC/DC의 라인업이 다시 결성되었다!

2020년 10월 1일, 새 앨범 제목이 Power Up이라고 알려지고, 10월 7일에는 리드싱글 Shot in the dark가 발표되었다. 팬들은 30여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전성기 시절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며 새 앨범의 발표를 기대하고 있다. 신곡 전체는 앵거스 영과 현재는 치매로 사망한 말콤 영이 작곡했고 예전 앨범들을 작업할 때 탈락된 미공개 곡들을 모은 앨범이라고 한다.

PWRUP은 앨범 전체가 말콤을 위한 헌정반 격으로 제작되었으며, 공개되는 인터뷰나 뮤직 비디오 곳곳에서 그에게 바치는 헌사 및 이스터에그를 발견할 수 있다. 'Demon Fire' 뮤비 중 "THIS ONE'S FOR MAL"
6년만의 신보는 호주, 미국, 영국, 독일에서 발매와 동시에 앨범 차트 1위를 석권했으며, 한 해를 한 달 반 가량만 남겨놓은 11월 중순에 공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20년 최다 판매량, 최단 시간 최대 판매량 등의 기록을 단숨에 갈아치웠다. 특히 본토 호주에서는 2위부터 15위까지의 판매량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장수를 발매 첫 주에 팔아버리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2024년 2월, 새 투어를 앞두고 멤버 라인업 일부 교체가 이루어졌다. # 클리프 윌리엄스가 투어에 불참하게 되며 후배 록 밴드 제인스 어딕션(Jane's Addiction)의 전임 베이시스트 크리스 체이니(Chris Chaney)가 투어 멤버로 들어온 것. 이외에도 2023년 투어부터 필 러드의 자리를 드러머 맷 로그(Matt Laug)가 맡고 있기도 하다.

[1] 왼쪽부터 말콤 영, 필 러드, 폴 매러스(위), 앵거스 영(아래), 본 스콧. [2] 누나인데 막내인 앵거스 보다 20살이나 많다. 영 남매들 중 둘째이자 유일한 자매 [3] AC/DC가 처음 결성되었을 때 앵거스의 나이는 17살이었다. [4] 왼쪽부터 말콤 영, 본 스콧, 앵거스 영, 이 분은 정말 나오는 사진마다 똘끼가 넘치신다 클리프 윌리엄스, 필 러드. [5] 왼쪽부터 말콤 영, 새로운 보컬 브라이언 존슨, 사이먼 라이트, 앵거스 영, 클리프 윌리엄스. [6] 스콧이 죽기 전에 발매한 앨범의 이름이 '지옥으로 가는 길 (Highway to Hell)'이라서 이에 대해 본 스콧이 자살을 했다는 등 여러 소문들이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막 엄청난 인기를 누리기 시작한 밴드의 보컬리스트가 그랬을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우며, 당시 그가 기절했을 때 토사물이 기도를 막아 사망했다는 설이 제일 유력하다. [7] 그렇다고 완전히 망한 앨범은 아니다. 썩어도 준치라고 여전히 매우 재밌고 기발한 기타리프와 도입부를 가진 곡들이 많다. Hell Or High Water, Playing With Girls, 그리고 특히 Shake Foundation, Sink The Pink는 지금도 회자되는 명곡이다. [8] 왼쪽부터 크리스 슬레이드, 클리프 윌리엄스, 액슬 로즈, 앵거스 영, 스티비 영. 사실 윌리엄스는 은퇴한 시점이긴 해도 공석자리에선 함께해왔다. [9] 햇으로 미친듯이 박자를 쪼개 곡이 타이트해졌고, 양 옆에 추가된 3개의 베이스 드럼으로 웅장함이 더해졌다. [10] Thunderstruck 뮤비나 라이브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이런 식으로 양 날개 플로어 탐 자리에 베이스드럼을 세워놓고 스팟마다 힘차게 양팔로 두들겨주신다. 그래서 원래도 파워풀한 드러머였지만 Thunderstruck은 드럼셋의 묵직함부터 차원이 다른 파워가 나온다. [11] 1위는 콜드플레이 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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