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2 02:34:36

1998 시드니-호바트 요트 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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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998 요트 레이스.jpg

1. 개요2. 시드니-호바트 레이스3. 참사가 된 경기4. 경기 이후5. 유사 사례

1. 개요

1998년 12월 26일부터 1999년 1월 3일까지 호주에서 열린 시드니-호바트 레이스.

2. 시드니-호바트 레이스

파일:시드니 호바트 요트 레이스.jpg 파일:시드니 호바트 요트 레이스 코스.jpg
호바트 레이스는 남태평양 최대 규모의 요트 경기로, 매년 호주에서 열린다. 블루 워터 클래식(Blue water classic)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요트를 즐기던 피터 루크(Peter Luke)가 친구들과 함께 동호회를 만들어 경주를 벌이던 것을 영국 해군의 존 일링워스(John Illingworth) 대령이 경기 규모로 확대하는 것을 제안하고 1945년부터 시작된 것이 해가 지나면서 점차 규모가 확대됐다. 아메리카스 컵, 볼보 오션 레이스와 함께 "세계 3대 요트 레이스" 로 불릴 정도로 규모가 큰 대회로, 매년 12월 26일 오후 1시에 시작해, 시드니 뉴 사우스 웨일스에서 출발해 태즈매니아 섬의 호바트로 약 1,170km를 훨씬 넘는 거리를 항해하는 70년 넘는 전통을 자랑하는 요트 레이스다.

중간에 건너는 태즈매니아 인근 해협이 거칠고 날씨를 예측하기 힘든데다 파도가 거센구간이 있어 난이도가 꽤 높아 '바다의 에베레스트' 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2016년 열린 제 71회 대회에 소닉(Sonic)팀이 최초로 참가해 완주에 성공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코로나 19로 인해 열리지 않았으나 2021년 부터 다시 열렸다.

3. 참사가 된 경기

경기 조직 위원회인 호주 크루징 요트 클럽은 경기 전날 기상예보를 입수, 경기 날에 날씨가 안좋아 질 수 있다는 소식을 접했으나, 경기 관행상 경기 참가 여부는 참가팀의 선장들의 판단에 따르도록 되어 있기에 경기는 취소하지 않았다. 경기 전에 코스를 소개하고, 날씨가 어떻게 예보되었는지 알려주는 자리가 있었다.

1998년 12월 26일 오전 1시, 제 44회 시드니 - 호바트 요트 레이스가 시작됐다. 배는 115척이 참여했다. 참여한 요트 중 가장 큰 요트는 사요나라(Sayonara)호로, 길이가 24.1m에 달했다. 반대로 가장 작은 요트는 10.1m의 베리밀라(Berrimilla)였다. 항해 첫날엔 4노트 정도의 약한 바람이 불었다.

그런데 다음날인 27일, 이례적으로 강한 저기압이 발달해 여름 날씨에[1] 눈이 내리는 등 날씨가 심상치 않더니 남서쪽에서 폭풍이 예고됐다. 가보 섬(Gabo Island) 해역에 들어서자 40노트에 달하는 강풍이 불었고, 배스 해협(Bass Strait)[2]에 들어서자 2배를 넘는 85노트(약 시속 157km) 까지 불었다. 엄청난 강풍에 파도는 12m 높이까지 올라갔고, 파도에 휩쓸려 돛이 부러지는 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몇몇 배는 항해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러 경기를 포기했다. 맨 앞을 달리던 요트도 경기를 포기하고 구조신호를 보냈다. 이 배를 포함한 36대에 달하는 배들이 경기를 포기하고 구조요청을 했다. 구조요청이 많이 들어오면서, 1,000명 넘는 사람들이 동원되어 군헬기와 민간 헬기 등 총 55대의 비행기와 호주 해군함 27척이 나서는, 호주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상 구조작전이 펼쳐졌다.

오후 4시 40분, 영국 소속 요트 소드 오브 오리온(Sword of Orion)이 24m 높이의 파도에 휩쓸리면서 360도를 돌았다. 1996 애틀란타 올림픽 요트 경기에도 참가했던 요트 선수 글린 찰스(Glyn Charles)는 소드 오브 오리온이 파도에 휩쓸리는 과정에서 바다에 빠졌고, 결국 향년 3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시신은 찾지 못했다. 요트에 탑승했던 다른 선수들은 구조됐다.

비즈니스 포스트 나이아드(Business Post Naiad)도 파도에 휩쓸리면서 항해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러 구조요청을 했다. 탑승 선수 중 브루스 가이(Bruce Guy)는 파도에 휩쓸릴 때 심장마비로 사망, 필립 스켁스(Phillp Skeggs)는 바다에 빠지면서 익사했다.

28일, 1회 시드니-호바트 요트 레이스부터 참가한, 참가 요트 중 가장 오래된 요트였던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도 파도에 휩쓸렸다. 선수들은 메이데이 신호를 보내며 구조요청을 했고, 구명정 2대를 빨리 펼친 뒤 탈출했다. 윈스턴 처칠호는 얼마 안가 가라앉았다. 구명정 2대는 간신히 물 위에 떠있나 싶더니 1대가 파도에 또 휩쓸리면서 탑승했던 3명 존 딘(John Dean)과 제임스 롤러(James Lawler), 그리고 마이클 배니스터(Michael Bannister)는 익사했다.

사고로 71대의 요트가 경기를 포기했다. 5대는 침몰, 7대는 상황이 심각해 선수들이 요트를 버리고 대피해야 했다. 그리고 6명이 사망했다.

참가한 요트 중 겨우 44대만 완주에 성공했다. 우승자는 사요나라(Sayonara)호를 운항한 선수 래리 엘리슨(Larry Ellison)이었는데, 2일 하고도 19시간 3분 32초만에 결승선에 도착했다. 가장 마지막으로 완주에 성공한 요트는 12월 31일에 도착한 미스티(Misty)였다.

4. 경기 이후

12월 30일, 희생자 6명을 기리는 합동 장례식이 열렸다.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경기 조직 위원회와 기상청이 날씨 정보를 직접 주고 받으며 상황을 관찰하기로 했다. 또한 참가하는 요트는 반드시 40노트의 바람을 견딜 수 있어야만 하도록 규정됐다.

호주 크루징 요트 클럽의 경기 디렉터였던 필 톰슨(Phil Thompson)은 사고를 계기로 사임했다.

호주 트라이번나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졌다. #

5. 유사 사례


[1] 호주는 남반구라서 북반구와 계절이 반대다. [2] 호주 본토와 태즈매니아 섬 사이의 해협. 바람을 막아주는 땅이 없다보니 바람이 굉장히 강하게 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