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경상북도 영양군 청기면 일월산길 675 일월산 월자봉 아래에 위치해 있으며 한국 무속신앙의 중요한 성지이다. 월자봉 아래에는 관련된 무속신앙 도량이 몇군데 있다.차량으로 올라갈 수 있다. 주차도 가능하다.
2. 관련된 전설
황씨 부인당은 몇가지 전설이 있다.-
조선시대 순조 때 청기면 당리에 살던 우씨(禹氏)의 부인 평해(平海) 황씨(黃氏)는 남편과 혼인하여 금실 좋게 살았으나 딸만 9명을 낳아 시어머니의 학대가 극심했다. 황씨부인은 아들을 낳지 못하는 죄책감으로 시어머니와 남편을 대할 수 없어 아홉째 딸이 젖 뗄 무렵 갑자기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우씨댁에서는 황씨부인을 아무리 찾아도 찾지 못했다. 이 무렵 일월산에는 산삼이 많이 났는데, 산삼 캐는 사람이 산삼을 캐려고 자기가 지어 놓은 삼막(蔘幕)에 갔더니, 황씨부인이 자기의 삼막에 소복단좌(素服端坐)하고 있었다. 더럭 겁이 나서 되돌아서려는데, 황씨부인이 말을 하기에 자세히 보니 분명 살아 있는 황씨부인이었다. 황씨부인은 자기 시어머니와 남편의 안부며 딸의 안부를 묻고 는 자기가 여기에 있다는 말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산삼 캐는 사람은 그렇게 하겠다는 말을 하고 돌아섰으나, 어쩐지 마음이 섬뜩하여 그 길로 산에서 내려와 우씨댁에 가서 그 이야기를 전하였다. 금실 좋게 살던 우씨는 부인을 잃고 삶의 재미를 모르고 살던 중 부인이 살아 있다는 말을 듣고는 곧장 삼막에 가보니, 과연 부인이 앉아 있어, “여보!”하고 달려가 손을 덥석 잡으니 부인은 사라지고 백골과 재만 남았다. 남편은 탄식을 하면서 백골을 거두어 장사를 지냈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이 황씨부인의 한을 풀기 위해 그 자리에 당을 지어 주고 ‘황씨부인당’이라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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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순조 때 청기면 당리에 우씨 청년이 일찍 과부가 된 홀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오두막집과 적은 땅으로 농사를 지으며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았다. 이웃 마을 평해 황씨와 결혼하여 아내를 극진히 사랑하며 살았다.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고 사는데, 아들의 지극하던 효성이 약해지자 사랑을 빼앗긴 청상과부 시어머니의 시샘과 질투는 더욱 심해져서, 며느리의 조그만 실수도 용서하지 않고 학대했다. 그리하여 황씨부인은 차라리 저승에 가서나마 남편과 행복하게 살아보려고 남매를 집에 남겨 두고 우물에 가는 척 집을 나와 일월산으로 들어갔다. 그 뒤 산삼을 캐는 사람이 움막 안에서 목을 매고 죽어 있는 낯선 부인을 발견하고 놀라서 산을 내려왔다. 그때 이 마을에 살던 영천 이씨 명존이란 사람이 황씨부인이 현몽한 대로 남편에게 알리니, 남편이 황씨부인의 유골을 거두어 장례를 치렀다.
그 후 황씨부인이 다시 이명존의 꿈에 나타나 “여보시오. 나는 어린 자식을 두고 일찍 목숨을 끊은 죄로 저승에서도 방황하는 혼령이오니, 가난한 우리 남편을 대신해서 내 외로운 혼령이 쉴 수 있도록 당사를 세워 주시면 여한이 없겠나이다.”라고 말하여, 이명존이 황씨부인의 현몽대로 당사를 지어 그녀의 원혼을 위로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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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영양군 일월산 밑에 황씨라는 처녀가 살았다. 마을에는 그녀를 사랑하는 총각이 둘 있었는데, 그중 몸은 약하지만 마음이 고운 사람을 선택해서 혼례를 올렸다. 혼례를 올린 날 신랑은 뒷간에 갔다가 오는 길에 마치 칼을 들고 자신을 기다리는 듯한 사내의 모습(또는 칼날 그림자)이 신방에 언뜻 비치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연적인 다른 총각으로 여겨 그 날로 타관으로 도망쳐 버렸다. 칼날 그림자란 실은 문 앞에 있던 대마무잎의 그림자에 대한 착각이었지만, 신랑은 그것을 알 길이 없었다.신랑이 타관으로 도망간 사실을 모르는 신부는 녹의홍상에 족두리 화관을 쓴 채로 하루 이틀 기다리기를 오 년여 계속하다가 결국 그 자리에서 눈을 감고 말았다. 낯선 마을에 정착한 신랑은 머슴살이를 하면서, 그 지방에 있는 처녀에게 새장가를 들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백일을 채우지 못하고 죽기를 네 번이나 했다. 무당을 찾아가 사연을 물어보니, 죽은 귀신이 아직도 너를 기다리기 때문에 자식이 모두 죽었다는 것이다. 모두가 사는 방법은 귀신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 사내는 무당의 말대로 고향의 옛집을 찾아가서 폐가가 된 신방에 들어가 보니 신부는 초야의 모습 그대로 시체가 되어 풀더미 속에 앉아 있었다. 사내가 툇마루에 앉아 있다가 잠이 들었는데, 신부가 나타나 “나를 업어다가 일월산 산마루에 앉혀 달라”고 부탁하였다. 꿈에서 깨어나 신부의 부탁대로 하자 죽은 신부는 “이제는 하직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이에 사내는 산에 있으면서 바위를 쪼아 족두리를 쓴 신부 모양의 석상을 만들고, 작은 사당을 지어 조석으로 봉양하다가 돌신부 옆에서 눈을 감았다. 그러나 산사태로 사당이 무너지고, 오랜 세월이 흘러 사당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1946년 부산에 살던 한 아낙네가 병에 걸려 상태가 점점 악화되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한 여자가 나타나, “나는 일월산 황씨부인인데, 나를 파내서 섬기도록 하라.”고 말하였다. 남편에게 꿈 이야기를 하고, 일월산으로 함께 가서 초막을 짓고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발이 닿는 대로 가다가 웅덩이에서 족두리를 쓴 석상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당집을 짓고 석상을 섬겼다. 그 이후 그 아낙네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고, 아울러 황씨부인당의 영험을 받아서 용한 무당이 되었다고 한다.
- 청기면 당리 자시목에 사는 신랑이 진보에 사는 평해황씨와 예(혼례)를 쳤어요. ......거게 대나무 밭이 있는 줄 몰랐는데 이 신랑 눈에 보기에는 밤에 뭐가 칼이 얼찐얼찐 그러니까 날 잡으러 오는가 싶어 가지고 고만 도망을 해 부렀어.... 7, 8월 다 지내고 몇 개월만에 나물하러 가이께내 그 부인당 돌바위 위에 있는 황씨부인을 발견했어. 그래 남편이 혼자 가기 머쓱해서 여럿이 가서 반갑다고 고마 만지까네 고마 소로시 씰어졌부랬어(쓰러져버렸어)...... 그래서 돌무더기를 모다 놓고 그 후 이쪽의 신랑은 장가를 갔어요. 장가를 가가주고 아들인 동 딸인 동 여덟까지 낳아도 하나도 못 길렀어요. 본부인이 못 얻그러 해가지고서. 그래 인제 아홉 번 째 아들을 하나 낳은 거라. 그래 본부인이 남편의 꿈에 나타나서 말하기를, 너는 나를 이래 배반하고서 너는 이래 잘 살줄 알았느냐. 너는 이 아들 하나 붙들고, 나를 이래 너는 천추만대로 나를 갖다가 만세계 이래 만인이 우리나라에 알두룩꿈(알게끔) 해주면은 자식 하나는 붙들어 주겠다고 하드래. 그래가지고서 이제 죽은 딸 여덟은 전부 골매기로 보내고 아들 하나 인제 붙들어서 그 신주 전했다 이런 얘기지.
위의 내용 중 최소한 2편은 KBS 전설의 고향에서 방송되었다.
2.1. 황씨부인당의 전설과 관련된 시
이와 관련된 시는 조지훈과 서정주의 시가 있다. 서정주의 시는 모티브가 다른 이야기라는 설도 있으나 내용은 동일하니 그렇게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참고로 조지훈의 고향이 영양이다.석문 石門
조지훈
당신의 손끝만 스쳐도 소리 없이 열릴 돌문이 있습니다. 뭇 사람이 조바심치나 굳이 닫힌 이 돌문 안에는, 석벽 난간 연두 층계 위에 이제 검푸른 이끼가 앉았습니다.
당신이 오시는 날까지는, 길이 꺼지지 않을 촛불 한 자루를 간직하였습니다. 이는 당신의 그리운 얼굴이 이 희미한 불 앞에 어리울 때까지는, 천 년이 지나도 눈감지 않을 저의 슬픈 영혼의 모습입니다.
길숨한 속눈썹에 항시 어리운 이 두어 방울 이슬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남긴 푸른 도포 자락으로 이 눈썹을 씻으랍니까? 두 볼은 옛날 그대로 복사꽃 빛이지만, 한숨에 절로 입술이 푸르러감을 어찌합니까?
몇 만리 굽이치는 강물을 건너와 당신의 따슨 손길시 저의 목덜미를 어루만질 때, 그때야 저는 자취도 없이 한 줌 티끌로 사라지겠습니다. 어두운 밤 하늘 허공 중천에 바람처럼 사라지는 저의 옷자락은, 눈물 어린 눈이 아니고는 보이지 못하오리다.
여기 돌문이 있습니다. 원한은 사무칠 양이면 지극한 정성에 열리지 않는 돌문이 있습니다. 당신이 오셔서 다시 천년토록 앉아 기다리라고, 슬픈 비바람에 낡아가는 돌문이 있습니다.
신부 新婦
서정주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 다리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곤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사십년인가 오십년이 지나간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지나가다가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스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폭삭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