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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립 및 왕립 전쟁성

<colbgcolor=#8da9c5><colcolor=#191919> 황립 및 왕립 전쟁성
k.u.k. Kriegsministerium
파일:오스트리아 황제, 헝가리 국왕, 총사령관의 기.svg
황립 및 왕립 전쟁성기
전쟁성 장관 <colbgcolor=#fff,#191919> 프란츠 폰 욘(1866.11.30 ~ 1868.1.18)
프란츠 쿤 폰 쿠넨펠트(1868.1.18 ~ 1874.6.14)
알렉산더 폰 콜러(1874.6.14 ~ 1876.6.20)
아르투어 막시밀리안 폰 빌란트라이트(1876.6.20 ~ 1888.3.16)
페르디난트 폰 바우어(1888.3.16 ~ 1893.7.22)
루돌프 폰 메르클(1893.7.24 ~ 9.22, 임시)
에드문트 폰 크리크하머(1893.9.22 ~ 1902.12.17)
하인리히 폰 피트라이히(1902.12.18 ~ 1906.10.24)
프란츠 크사버 폰 쇠나이히(1906.10.24 ~ 1911.9.20)
모리츠 아우펜베르크 폰 코마루프 보병대장(1911.9.20 ~ 1912.12.12)
알렉산더 폰 크로바틴 제국원수(1912.12.12 ~ 1917.4.12)
루돌프 슈퇴거슈타이너 폰 슈타인슈테텐 제국상급대장(1917.4.12 ~ 1918.11.11)
파일:오헝 상급사령부 본부청사.jpg
1. 개요2. 조직 구성
2.1. 일반참모부(Generalstab)
2.1.1. 정보국(Evidenzbüro)2.1.2. 부서
2.2. 해군부(Marinesektion)2.3. 전쟁문서보관소(Kriegsarchiv)
2.3.1. 부서
2.4. 기술군사위원회(Technisches Militärkomitee)
2.4.1. 부서
2.5. 군의위원회(Militärsanitätskomitee)2.6. 전문부서(Fachabteilungen)
2.6.1. 부서
파일:2519619_default.jpg
제1구 슈투벤링에 위치한 황립 및 왕립 전쟁성 청사. 황립 및 왕립 군사령부와 건물을 같이 공유했다. 1913년 건설되었다. 현재는 오스트리아 연방정부 청사(Das Regierungsgebäude)로 이용 중이다. 정문 앞의 동상은 요제프 라데츠키 원수의 기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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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황립 및 왕립 전쟁성(K.u.k. Kriegsministerium)[1] 1867년부터 1918년까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합동 육군 해군에 대한 최고 행정기관이었다. 제국의 중앙 군사 업무는 1867년 대타협으로 인해 설립된 빈의 전쟁성에서 관장하였다. 오스트리아 제국군 시절의 중앙전쟁위원회(Hofkriegsrat)를 계승한 전쟁성은 평시에는 합동 육군과 해군에 대한 군정권만을 가지고 있었으나, 전시에는 모든 방위군을 표괄했다. 이후 1911년까지는 제국전쟁성(Reichskriegsministerium)이라 불렸다. 전쟁성은 에 위치했으며, 공동군(Gemeinsame Armee)과 해군(Kriegsmarine)의 관리를 담당했다.

전쟁성은 오스트리아 제국 오스트리아 국방성(k.k. Ministerium für Landesverteidigung)이나 헝가리 왕국 헝가리 국방성(k.u. Honvédministerium)과는 별개의 조직이었다. 전쟁성 장관은 황제가 직접 임명했으며, 공동 각료회의(Ministerrat für gemeinsame Angelegenheiten)의 구성원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1914년 7월 31일 최고사령부(Armeeoberkommando)가 설립되면서, 전쟁성은 주로 황립 및 왕립 군사령부의 군수, 보급, 행정 등 후방 지원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그 역할이 변화했다. 1918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면서 전쟁성도 해체되었으며, 1920년 4월까지 청산 업무를 담당했다.

2. 조직 구성

전쟁부는 다음과 같은 주요 조직들로 구성되었다:

2.1. 일반참모부(Generalstab)

실제 전략 기획 및 군령 업무를 총괄하는 일반참모부는 1758년 마리아 테레지아 황후의 지원으로 다운 백작 레오폴트 요제프 원수가 수립했다. 보오전쟁 패전 후 프로이센의 예를 따라 재조직되었다. 재정립 후 최초의 참모총장은 프란츠 폰 욘이었다. 19세기 후반부터 독자적인 지위를 확보했으며, 특히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군사 결정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일반참모총장은 황제에게 직접 보고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

2.1.1. 정보국(Evidenzbüro)

정보국은 일반참모부 산하의 군사정보기관이었다. 오스트리아군의 군사정보국으로, 1802년 테셴 대공 카를 루트비히 원수가 전쟁기록보관소 예하조직으로 수립한 등록실이 시초다. Evidenz는 '증거'라는 뜻의 단어이다. 1810년 이래로 카를 대공은 각국 대사관에 파견한 국방무관 및 국경 그렌처 대대와 예거 대대들이 수집한 군사 정보를 등록실을 통해 기록보관소에 저장하는 혁신적인 시스템을 마련했다. 1828년 해체되고 관련 업무는 전쟁사 부서로 이관되었다가, 1848년 혁명 이후인 1850년에 재창설되어 1918년 제국 해체까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정보수집과 방첩 업무를 담당했다. 프란츠 폰 욘 일반참모총장이 재창설을 주도했으며, 처음에는 군 정찰과 지도 제작을 위한 정보수집이 주 임무였다.

2.1.2. 부서

  • 관리국(Direktionsbureau)
  • 작전국(Operationsbureau)
  • 병참국(Etappenbureau)
  • 교육국(Instruktionsbureau)
  • 지형국(Landesbeschreibungsbureau)
  • 철도국(Eisenbahnbureau)
  • 전신국(Telegraphenbureau)

2.2. 해군부(Marinesektion)

해군 관련 업무를 총괄했으며, 비엔나 3구역 포더레 촐람츠슈트라세 9번지에 별도의 건물을 가지고 있었다.

2.3. 전쟁문서보관소(Kriegsarchiv)

18세기 말에 안드레아스 그라프 하디크 폰 푸타크 원수가 주도해서 세웠다. 당시에는 황립 전쟁위원회(Hofkriegsrat)의 산하였다가 총참모부 산하기관이 되었다. 오스트리아군이 수집한 대다수의 자료들은 이곳의 전쟁도서관(Kriegsbibliothek)에 저장되었다. 동시에 전쟁기록보관소는 군사역사 부서, 군사지리 부서 등을 두고 수집한 정보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총참모부에 제공하였으며 학회지 또한 펴냈다. 1차 대전 당시에는 전시 프로파간다 생산도 도맡았다.

제국 멸망 이후에도 폐지되지 않았다. 1945년 이후에는 오스트리아 국가기록보관소의 산하기관으로서 오스트리아의 전쟁사 자료들을 전부 관리하고 있다. 디지털화된 전쟁기록보관소 자료들은 인터넷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

군사 관련 문서를 보관하고 관리하는 기관으로, 다음과 같은 부서로 구성되었다.

2.3.1. 부서

  • 전쟁사과(Kriegsgeschichtliche Abteilung)
  • 문서과(Schriftenabteilung)
  • 지도과(Kartenabteilung)
  • 도서과(Bibliothekabteilung)

2.4. 기술군사위원회(Technisches Militärkomitee)

군사 기술 관련 업무를 담당했으며, 다음과 같은 부서로 구성되었다.

2.4.1. 부서

  • 제1과: 포병
  • 제2과: 공병, 개척병, 군사건설
  • 제3과: 통계 및 군수
  • 제4과: 기술

2.5. 군의위원회(Militärsanitätskomitee)

군 의료 업무를 총괄하는 기관이었다.

2.6. 전문부서(Fachabteilungen)

15개의 전문부서가 있었으며, 각각 인사, 법무, 교육, 보급, 회계 등 특정 분야를 담당했다.

2.6.1. 부서

  • 제1부: 현역 장교 인사
  • 제4부: 군 법무
  • 제5부: 작전, 요새, 통신
  • 제7부: 포병 및 군수
  • 제14부: 군 의료
  • 제15부: 회계 및 예산

이러한 조직 구조는 1914년 7월,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의 상태를 기준으로 한다.

[1] '부(部)'가 아닌 '성(省)'으로 번역하는데, 아무래도 일본어에서 번역한 단어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 굳어진 것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