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삼관마(幻の三冠馬)란, 일본 경마계에서 "출전한 경기에서 매우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으나 부상이나 급사 등 이런저런 이유로 모든 삼관 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했지만, 만약 출전했다면 삼관을 달성했을 가능성이 있는 말"을 뜻한다. 일반적으로는 후지 키세키[1]에 아그네스 타키온[2]( #), 드물게 미호 신잔[3]( # ##)을 더해 환상의 삼관마로 부르곤 하는데, 경마 팬들이 여기에 더해 삼관 달성 가능성이 있었을만한 다른 말에 대해 다루며 일종의 IF 놀이로 확장된 개념이다.
다만, IF 놀이의 특성상 실제로 해당 경기에 나가서 삼관 달성에 실패한 게 아니고서야, 어느 정도 강력하다고 생각만 하면 아무 말이나 갖다 붙일 수 있기에 객관성은 무척이나 떨어진다. 당장 모두가 공인하고 있는 타키온조차 G1 1승(사츠키상)에 G2 1승, G3 1승이라는 성적이고, 후지 키세키는 더 심해서 아예 G1 1승, G2 1승으로 그나마 있는 G1조차 마일이지 중거리가 아니다.
아그네스 타키온과 후지 키세키가 은퇴 직전까지 강력한 모습을 보여줬던 자체는 사실이나, 실제 경마의 역사를 보면 저 둘 보다 훨씬 이전에, 훨씬 더 삼관에 가까웠던 명마들이 많았다. 당장 저 둘의 먼 선배인 토키노 미노루가 대표적이다. 2024년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는 11전 무패의 쿠리후지의 기록보다 딱 1승 모자른 10전 무패의 기록에, 클래식 2관(사츠키상, 도쿄 우준)을 레코드 갱신으로 1착한 당대 최강의 명마였다. 토키노 미노루가 도쿄 우준 이후 파상풍으로 급사하지 않고 킷카상에서 이겼다면 달성했을 기록만 전후 최초 삼관마[4], 최초 무패 삼관마[5], 11전 무패 삼관마[6] 등이다. 하나 하나가 단순 삼관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거대한 타이틀이다.
문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토키노 미노루가 발굽 부상으로 제대로 조교도 마무리하지 못한 상황에서 도쿄 우준의 레코드를 부숴버렸던 것이다. 도쿄 우준에서 당시 레코드를 갱신하고, 이후 킷카상(교토 농상성상전 4세 호마)에서 2착마를 대차로 발라버린 쿠리후지의 사례만 생각해 봐도 토키노 미노루가 킷카상에서 1착할 것이라 보는 것이 당시에는 당연한 시각이었다.[7] 그래서 지금까지도 토키노 미노루는 현창마 원년 멤버로 선정되는 등, 다른 2관들과는 격이 다른 대우를 받고 있다.
당장 아그네스 타키온, 후지 키세키와 격이 다른 명마로 취급되는 토키노 미노루만 봐도 그런데, 다른 강했던 2관들까지 언급하며 가능성을 놓고 다투면 예시가 난립하게 된다. 때문에 본 문서에서는 '환상의 삼관마'라는 개념 자체를 단순한 IF놀이의 산물이 아니라 저 셋에게 붙은 고유 칭호 정도로 취급하기로 결정했으며, 그 외 예시는 서술하지 않기로 하였다.
[1]
데뷔한 해에 패배없이 3연승을 달성하고
야요이상도 뛰어난 퍼포먼스로 승리했지만 굴건염이 발견되어 그대로 은퇴했다. 재활하면 복귀 할 수 있겠다는 전망이 있었지만, 1년이나 걸린다는 전망이 나와 진영 측에서 은퇴를 결정 했다고 한다.
[2]
신마전에서 현재도 유지 중인 마지막 1펄롱(200m) 신기록을 세웠으며
사츠키상까지 모두 압승을 했으나 그 후 굴건염이 도져 은퇴했다.
[3]
85년 클래식 삼관 중
사츠키상 및
킷카상 2관마. 일본 더비의 경우 골절로 회피했다.
[4]
1964년
신잔이 달성.
[5]
1984년
심볼리 루돌프가 달성.
[6]
쿠리후지는 사츠키상 대신 우준 빈마에 출주해 변칙 삼관을 달성했다. 그래서 원칙적으로는 삼관마로 인정하지 않는다. 우준 빈마는 암말만 출주할 수 있어서 수말이 출전하는 대회에 비해 수준이 떨어진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7]
발굽과 앞발 부상이 있긴 했어도, 도쿄 우준부터 킷카상까지는 약 5개월의 시간이 있다. 충분히 컨디션을 만회할 수 있는 시간이다. 당장 3번이나 다리가 부러진
토카이 테이오는 1년동안 재활해서 아리마 기념 1착을 달성했는데, 발굽 부상은 골절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부상이고, 실제로도 토키노 미노루는 금간 발굽을 가지고도 도쿄 우준을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