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요재지이에 수록된 이야기 중 하나로, 천녀유혼으로 유명한 섭소천 편과 함께 요재지이에서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2. 줄거리
중국 섬서 지방에 있는 어느 작은 마을에 향시에 합격하여 진사 칭호를 가진 안유여라는 한 젊은 선비가 살았다. 안유여는 재물보다 의리를 더욱 중시하는 착한 선비로 동물들을 매우 아끼고 사랑하여 사냥꾼들에게 동물들을 사서 그들을 자연으로 방생시키며 공덕을 쌓았고 수많은 동물들이 그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다.어느 날, 안유여는 지인과 만나고 집으로 가던 중 화산을 넘다가 날이 저무는 바람에 길을 잃었다. 한참을 헤매던 중 등불 하나가 깜빡이며 오고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한 노인이 등불을 들고 오고 있었다. 노인은 유여를 보고 어디에서 온 누구냐고 물었고 유여는 자신은 안유여로 선비인데 길을 잃고 헤매는 중이라고 얘기했다. 노인은 지금은 날이 어두우니 자신의 집에 하룻밤동안 지내라고 제안했고 유여는 노인을 따라 노인의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해서 노인이 문을 두드리자 노인의 아내인 노파가 문을 열고 남편을 반겼다. 노파는 남편이 손님과 같이 오자 손님을 반기며 두 사람을 들어오게 했다. 노인이 아내에게 은인인 유여를 모셔왔으니 술과 안주를 내오라 부탁하고 딸에게 술을 따르게 얘기했다.
잠시 후 부엌에서 노부부의 딸인 듯한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대청에 있는 아버지와 유여에게 술과 안주를 가지고 왔다. 유여는 그녀를 보자 한 눈에 반해버렸으며, 노인에게 얘기를 들어보니 여인의 이름은 화고자로 노부부의 딸이라고 하며 슬하에 자식이라고는 그녀 하나뿐이라고 한다.
아직 시집을 가지 않은 독신 여성으로 유여는 자신과 좋은 짝이 될 것이라 속으로 생각했다. 대청에서 한참 얘길 나누다 아내의 부름에 남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유여는 화고자에게 자신은 이미 당신에게 반했으며 언제 시간을 내서 중매쟁이에게 정식으로 청혼할 생각인데 당신의 생각은 어떻냐고 물어보았다. 화고자는 부끄러워 말을 하지 못했지만 잠시 일련의 소동으로 이미 유여에게 마음을 정한 듯 했다.
유여는 집으로 돌아갔지만 사랑하는 화고자만 생각하면 마음의 불이 뜨겁게 타올랐다. 중매쟁이를 불러 청혼을 하려 했으나 그녀의 집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근방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지만 화고자란 이름을 가진 여성은 없다는 실망스러운 대답뿐이다.
어디에도 단서를 찾을 수 없자 유여는 큰 실망에 빠져 집으로 돌아가 몸져누워버리고 말았다.
사랑하는 여인을 찾지 못하자 그는 점차 야위어갔고 식음까지 전폐할 정도로 상심한 듯 했다. 가족들은 걱정이 되어 의사를 불러 치료까지 해 보았으나 유여의 병은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질 뿐이었다.
그렇게 벙어리 냉가슴 앓으며 병으로 누운 지 며칠이 지났을까. 밤중에 간병인이 잠시 졸고 있던 사이 화고자가 몰래 안유여의 방으로 들어왔다.
유여가 겨우 눈을 뜨고 보니 사랑하는 화고자가 자신의 눈 앞에 있는 것이 아닌가! 화고자는 그의 머리를 지압해준 뒤 가지고 온 따뜻한 떡을 그의 침상머리에 둔 뒤 눈을 피해 몰래 밖으로 나갔다. 아침이 되자 유여는 그 떡을 먹고 몸이 완쾌되었다.
3일 뒤 화고자가 사실 여기 온 것은 예전에 아버지를 구해준 유여의 마음씀씀이에 감동하여 보답하기 위하여 온 것이나 자신과 유여는 사는 곳 자체가 달라 부부가 될 수 없는 운명이라고 슬퍼했다.유여는 속으로 상심했으나 내색하지 않고 아버지에게 부탁해달라고 간청했고 화고자는 내일 자신의 집으로 와달라고 부탁했다.
이튿날, 유여는 화고자의 집으로 갔다. 노부부가 마중을 나왔고 주안상을 내온 다음 화고자가 어머니의 일을 도우러 부엌으로 들어가고 술을 한 잔씩 나눈 뒤 노인은 유여에게 그동안 만나면서 당신과 정이 들었는데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가야 한다고 아쉬워했다. 유여는 이 소식을 듣고 크게 상심했으나 일단은 내색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
그러나 집으로 오자 결국 마음의 병이 다시 도져버리고 말았다.
유여는 사랑하는 화고자를 잊고 싶어했지만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녀를 잊을 수 없었고 결국 다시 그녀의 집을 찾아 나섰지만 어디에도 그녀의 집은 없었다.
이런 유여의 모습을 본 사악한 백사정이란 흰 뱀 요괴는 유여를 잡아먹기 위해 화고자로 변신하여 유여를 끌어들인다. 그러나 유여가 진짜 화고자는 몸에서 향긋한 꽃향기가 나는데 비해 가짜는 비린내를 풍기는 것을 알아차리고 백사정은 정체를 드러낸다.
5년 전 화산에 가던 안유여가 우연히 꽃사슴 한 마리를 사서 방생한 적이 있었는데 그 꽃사슴의 정체가 바로 화고자의 아버지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자신을 희생하여 유여를 구하고 죽었지만 안타깝게도 유여가 반신불수가 되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고 했다.
화고자는 유일한 치료법은 오직 백사정의 피 세방울을 술에 타서 마시게 하는 것이나 천년의 도력을 쌓은 정괴가 생명을 해치면 그동안의 수행이 물거품이 되어 두 번 다시 변신할 수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것을 무릅쓰고 그녀는 백사정의 소굴이 절벽 위에 있으며 그 뱀이 짐승을 사냥하러 올 때 활을 쏘면 피를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쳐주었다.
유여의 하인들은 서둘러 화고자가 얘기해 준 곳으로 가 백사정을 잡아 죽였고 피를 세 방울 얻어 술에 타서 마시게 했다. 유여는 그 술을 마시자 점차 회복되었다.
유여의 병이 다 나을 무렵, 화고자가 어머니와 같이 와 작별인사를 하면서 자신의 뱃속에 유여와 자신 사이에 난 아이가 있다고 얘기하며 아이가 태어나면 그에게 남겨 주겠다고 약속한 뒤 어머니와 어디론가 사라졌다.
몇달 뒤,유여가 산을 지날 무렵, 화고자와 그녀의 어머니가 와서 어린 아이 둘을 유여의 품에 안겨주었다. 자세히 보니 사내아이와 계집아이였다. 유여는 어린 남매를 안고 꽃사슴 두마리가 산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본 뒤 아이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 아이들을 돌보며 일평생 화고자를 기억하며 독신으로 살다가 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