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호세 타피아 (José Tapia) |
생년월일 | 1905년 2월 19일 |
사망년월일 | 불명 |
국적 | 쿠바 |
출신지 | 산호세 데라스라하스 |
포지션 | 불명 |
신체조건 | 불명 |
소속팀 | 불명 |
국가대표 | 없음 |
감독 | 쿠바 대표팀 (1930-19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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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쿠바의 전 축구 감독. 쿠바 대표팀의 초대 감독이다.2. 생애[1]
2.1. 감독 생활
1930년 3월 16일, 쿠바 대표팀은 역사적인 첫 대표팀 축구 경기를 치렀다. 상대는 영국령 자메이카였고 쿠바는 3대1로 승리를 따냈는데 이 당시 쿠바 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던 사람이 바로 당시 25세의 타피아였다. 그리고 불과 4일 후의 온두라스전에서는 7대0의 대승을 따내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쿠바 대표팀은 1934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아이티를 상대로 1차 예선을 치렀고 3전 2승 1무의 성적으로 여유롭게 2차 예선을 치렀다. 상대는 멕시코. 하지만 쿠바는 멕시코에 3연패를 당하며 최종 라운드 진출에 실패했다.
1935년 중앙 아메리카 대회에서 타피아가 이끄는 쿠바는 최종 성적 4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4년을 기다려 다시 참가한 1938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유럽의 불안정한 정세를 이유로 쿠바를 제외한 모든 팀들이 기권, 쿠바가 본선에 무혈입성하는 행운이 따랐다. 상대는 루마니아. 루마니아 역시 이집트의 기권으로 쿠바와 같이 본선에 무혈입성한 팀이어서 두 팀 모두 본선이 1938년 월드컵의 첫 경기인 셈이었다.
쿠바는 루마니아와 1라운드에서는 3대3으로 비겼고 재경기끝에 루마니아를 꺾고 8강에 진출했다. 하지만 8강전 상대였던 스웨덴은 쿠바를 0대8로 박살내며 쿠바에 세계 축구계의 높은 벽을 실감케 해줬다. 이 경기가 쿠바 대표팀 역사상 최다 실점차 패배 경기이고 타피아는 대회가 끝나고 쿠바 대표팀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의 생애는 알려지지 않았다.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