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고려 후기의 낭장이자 필현보의 난을 주도한 반역자.2. 생애
1217년 몽골 제국에 쫓긴 거란족[1]이 서경을 공격하던 중 서경병마사 상장군 최유공이 성 안의 백성들을 수탈하자 병사 최광수가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 때 정의가 최광수와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 최광수의 머리를 도끼로 내려침으로써 반란을 무마시켰다.제2차 여몽전쟁 이후인 1233년에 홍복원과 서경에서 서경에 남아 있던 몽골군과 합세해 반란을 일으켰고, 조정에서는 일찍이 정의가 필현보를 부렸다고 해서 정의를 보내 필현보를 설득시키려 했지만, 필현보는 정의를 얻은 것을 기뻐해 모주로 삼기 위해 달래거나 위협했다.
정의는 이를 따르지 않았고, 필현보는 정의, 박녹전을 비롯한 선유사 일행을 죽였다.[2] 서경을 점령한 뒤, 몽골에 투항하였으며, 서경을 몽골에 고스란히 바쳤다. 하지만 최우가 그 해 12월 북계병마사 민희로 하여금 가병 3천 명을 보내 반란을 진압하게 하였고, 난이 진압되자 필현보는 강도로 압송되어 요참형을 당하는 실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러나 홍복원은 몽골로 도주한다.[3]
3. 창작물에서
소설 항몽전쟁 그 상세한 기록에서는 소매 속에서 도끼를 꺼내 최광수를 죽였고, 홍복원이 조정이 힘도 없으면서 몽골군에게 싸움을 건다면서 싸움이 나면 몽골군의 통로가 되어 전쟁에 말려들어 우리 지역의 인명과 재산이 손실되니, 언제까지 참아야 하냐고 불평하자 필현보는 자기네들만 강화도로 들어가 있으면 되는 줄 안다면서 백성을 떠난 임금이 무슨 임금이고 백성 없는 조정이 무슨 조정이냐며 홍복원에게 동조했다.홍복원이 반역을 제의하자 이에 동의해 홍복원과 함께 살리타이를 찾아가 성을 바쳤으며, 살리타이가 죽고 몽골군이 물러나면서 고려 조정에서 설득을 위해 정의를 파견하자 필현보는 우리를 잘 지도해달라면서 정의를 주군으로 삼으려 했다. 정의를 설득하고자 했으나 거부하면서 최광수를 함께 진압해 공신이 되었지만 그 공신이 최광수의 일을 반복하는 것 뿐이라 하자 필현보는 말을 하지 못했다.
말을 하지 못하는 홍복원이 대신 정의를 협박하면서 필현보도 정의에게 헛된 죽음을 택하지 말라 했으나, 거부하면서 정의는 살해당하고 최우가 토벌군을 보내자 붙잡혀 요참형으로 죽였다.